서울 밖에서 산다는 것

by My Money Story

지방 소도시 출신의 자칭 시골쥐로 서울에 상경한 지 어느덧 10년이 흘렀다. 나는 이 거대한 도시의 빠른 속도와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나만의 삶을 꾸려왔다.

분주한 일상에서도 서울에서만 누릴 수 있는 특권을 마음껏 즐기며 살았다. 독립영화를 보고 싶을 때는 광화문 씨네큐브로 향했고, 세련된 편집숍을 찾고 싶을 때는 압구정 로데오 골목을 거닐었다. 좋아하는 음악 공연과 예술 전시회를 찾아다녔고, 낭만이 가득한 도심 속 작은 카페와 식당에서 여유를 만끽하기도 했다.

서울에 대한 동경은 실제 서울 사람이 되어 언제든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다는 만족감으로 이어졌고, 그것은 내가 서울로 상경한 이유이자 자부심 같은 것이었다.

대한민국의 중심지 서울. 정치, 경제, 문화가 뒤섞인 이곳에서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는 움직임은 70~80년대 산업화 시절부터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쯤 되면 짐작할 수 있다. 나는 지방 소도시에서 서울로 올라와, 대한민국의 정석적인 경로를 따라 살아온 또 한 명의 서울에 정착한 지방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서울에서 벗어나 지방으로 향하는 움직임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탈서울’이라는 단어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서울의 인구는 천천히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탈서울…? 요즘 서울 사람들은 귀촌을 꿈꾼다고? 도대체 왜? 취재를 통해 만난 이들의 이야기는 이 질문에 몇 가지 답을 던져주었다.

첫 번째로 꼽을 수 있는 이유는 취업난이다. 나 또한 지방 대학을 졸업했기에, 학창 시절 ‘인서울’에 성공한 친구들이 부러웠던 적이 많았다. 이미 서울에서 대학 생활을 시작한 친구들은 그만큼의 시간을 아낀 셈이었으니까.

하지만 서울의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서 서울에 정착한 것으로 보기엔 어렵다. 대학 졸업 이후 생계가 해결되어야만 서울에서 자리를 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문턱에서 좌절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는 친구들을 여럿 보기도 했다.

이번 취재에서 만난 김동환, 김태균 역시 광주광역시에서 대학 진학을 위해 서울로 상경했지만, 졸업 후 서울의 취업난과 높은 물가에 부딪쳐 결국 귀향을 택한 사례다.

“가장 컸던 건 역시 높은 물가와 부족한 생활비였던 것 같아요. 월세, 밥값, 학원비, 책값 같은 기본적인 생활비 부담이 컸죠. 부모님께 손을 벌리는 것도 쉽지 않아,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겨우 생활을 유지했던 기억이 있어요.”

지방 출신으로서 나 역시 극히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였다. 서울의 삶은 많은 기회와 가능성을 제공하지만, 그만큼의 비용 부담도 따른다. 생업에 뛰어드는 시기가 늦어질수록 서울에서 버티는 일은 점점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김동환과 김태균은 각자 공무원 준비와 사업 준비를 이어가던 중, 결국 고향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기로 결심했다.

서울 생활을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선택이 아니다. 고향 사람들의 “서울에서 잘 안됐나?” 하는 시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동환과 김태균은 고향에서 새로운 시작을 하며, 남들의 시선보다는 자신들의 비전에 더욱 집중하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환경으로 고향을 선택한 모습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뛰놀던 곳이라 이곳의 사람들 성향이나 시장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거든요. 또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도움이나 조언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라는 점도 큰 장점이었고요.”

고향으로 돌아가는 가장 큰 이점은 새로운 삶의 터전을 구축하는 데 드는 부담을 덜 수 있다는 점일 것이다. 이들은 수도권에서는 이미 성황을 이루고 있지만 고향에는 없었던, 캠핑과 피크닉을 접목한 ‘캠크닉’이라는 독특한 사업 아이디어를 구상했다. 귀향 후 이를 실현하며 ‘메타포레스트’라는 이름의 유원지를 창업했다. 관광도시로 주목받는 고향의 특색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낸 것이다.

서울의 취업난과 생활고로 인해 귀향을 택하는 주변인들을 보며, 나 역시 이들의 선택이 합리적으로 느껴졌다. 고향의 강점을 활용해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는 이들의 이야기는, 지금 귀촌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도 좋은 힌트가 될 수 있다.

서울 사람들은 지방으로 이주할 때, 지방에서는 기회가 비교적 적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에 망설이곤 한다. 하지만 자신의 꿈을 위해 지방 이주를 결정한 인물도 있다.

박우린은 서울에서 건축학을 전공하고 건축사로서 경력을 쌓았다. 당시 새로 맡게 된 외주 일을 계기로 충남 공주에 가게 되었는데, 공주 원도심에 빈집과 유휴 공간이 많은 것을 발견하고, 평소 자신의 펼치고 싶었던 사업을 계획하게 된 사례다.

“마을호텔은 도시와 건축을 업으로 삼던 친구들과 ‘우리가 좋아하는 공간을 직접 만들어보자’는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어요. 커피와 책을 좋아하는 우리가 매일 드나들고 싶은 공간을 만들어 운영해 보자는, 대책 없이 순진했던 도전이었죠.”

누구나 살면서 우연의 기회를 만나게 되지만, 그것을 단단히 붙잡아 실행에 옮기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그는 공주의 빈집과 유휴 공간을 자신의 비전을 실현하는 토대로 삼아 주도적으로 도전했다.

나는 박우린에게 서울 바깥의 삶은 단순한 환경적 변화가 아니라, 자신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갈 가능성을 넓혀주는 삶이라 느꼈다. 그의 이야기는 서울 바깥의 삶을 고민하는 이들에게, 지방에서도 충분히 새로운 기회를 만들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 같다.

최근 확산한 재택근무는 많은 이들에게 서울 바깥에서의 삶을 고려하게 한 원인 중 하나다. 서울 중심이었던 일의 방식이 유연해지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지방에서 삶을 고민하게 된 것이다.

해남에서 만난 김지영은 서울에서 잘나가던 회계사였다. 코로나19 시기에 닥친 여러 어려움과 함께 번아웃을 겪었고, 재택근무를 하던 중 해외여행에서 경험했던 워케이션 숙소에서 영감을 받아 친구들과 무작정 시골로 내려가 창업을 결심했다.

“재택근무를 계속하다 보니 문득 ‘굳이 서울에 있을 필요가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과 쉼을 동시에 누릴 수 있는 워케이션 숙소를 찾아봤지만, 마땅한 곳이 없더라고요. ‘그래, 내가 한 번 만들어보자’ 싶어 퇴사 후 창업을 준비하게 됐어요.”

코로나19 이후 확실히 근무 환경과 업무 형태가 크게 바뀌었다. 특히 원거리에서도 업무가 가능한 직종에서는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지방 이주를 선택하는 사례를 쉽게 목격할 수 있다. 경제 활동은 서울에서 하고, 거주는 지방에서 하는 형태가 점차 확산하고 있다.

결혼을 계기로, 지방으로 이주한 스트릿 포토그래퍼이자 레몬샵 대표 임수민도 비슷한 과정을 거쳤다. 남편의 직업적 특성상 경남 통영으로 이주를 결정한 그는, 먼저 프리랜서로서 기반을 다지는 데 1년을 투자했다고 말했다.

“회사를 떠나서도 내가 혼자 자립할 수 있는지를 증명해 보자는 생각이 더 컸어요. 돈을 중시하는 사람이기에, 무작정 남편과 함께 통영에 내려갈 수는 없다고 판단한 거죠. 그래서 서울에서 프리랜서로 입지를 다지고, 통영에서도 안정적으로 일을 받을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려 했어요.”

한편, 서울 바깥의 삶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최근 주목받는 새로운 삶의 형태가 있다. 바로 ‘5도2촌’, ‘4도3촌’처럼 도시와 시골을 오가며 양쪽의 장점을 취하는 라이프스타일이다.

전라남도 구례로 이주를 준비 중인 요리 연구가 요나 역시 이런 방식을 실천하고 있다. 그는 서울에 거점을 두고 구례에 작은 오피스텔을 마련해 4도3촌 형태로 생활하며, 시골 정착을 미리 경험하고 천천히 적응하는 중이다.

“사실 바로 지방 정착을 결심하는 건 쉽지 않았어요. 살고 싶은 지역을 찾는 것도 막막했고, 현실적으로 고려해야 할 문제가 많았거든요. 그래도 언젠가 조용한 마을에서 살겠다는 생각만큼은 한 번도 접은 적이 없어요. 그때를 기다리며 준비해 온 것 같아요.”

요나가 여러 지방 중 구례를 선택한 이유는 단연 자연이었다. 구례의 넓은 평야와 웅장한 산으로 둘러싸인 모습은 실제로 그곳 풍경을 직접 목격한 나의 마음마저 단숨에 사로잡았다.

“구례의 풍경은 정말 압도적이에요. 이런 모습을 매일 볼 수 있다면, 10년 뒤 제 모습은 서울에서 살 때와는 완전히 달라져 있을 것 같았어요. 마음속 화도 사라지고, 자연이 주는 웅장함이 제게 안정감을 주더라고요.”

요나는 구례에서 자연이 주는 평온 속에서 새로운 삶의 가능성을 발견했고, 이는 그에게 있어 귀촌을 결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였다. 복잡한 도시의 빠른 속도감은 중심부에서 살고 있다는 안도감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녹색갈증’을 느끼게 한다. 도시의 삶에서 느끼는 피로감은 요나뿐만 아니라 취재를 통해 만난 다른 인터뷰이들에게도 공통으로 나타나는 탈서울의 동기였다.

나 역시 지방에서 서울의 삶을 동경하며 상경했지만, 고향의 한적함, 자연과 가까운 삶이 종종 그리워지곤 했다. 그래서 서울에서도 북적이는 중심부를 피해 한적하고 산과 가까운 지역에 집을 마련했다.

하지만 집을 구하는 문제는 서울 생활 내내 가장 큰 고민거리였다. 높은 주거 비용은 나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탈서울을 고민하게 만드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서울 밖의 삶을 탐구하며 가장 궁금했던 점 중 하나는 지방의 집값이 서울과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였다. 많은 사람들이 서울의 집값 부담으로 경제활동은 서울에서 유지하면서 외곽으로 거주지를 옮기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해남에서 살고 있는 김지영은 단독주택에서 월세 10만 원을 내며 거주하고 있었다. 이는 오래된 구옥을 고쳐 쓰는 조건으로 집주인이 월세를 낮춰준 덕분이었다. 서울의 평범한 오피스텔 월세와 비교하면 믿을 수 없는 금액이었다.

서울과 구례를 오가며 ‘4도 3촌’의 삶을 실천 중인 요나는 구례에서 월세 35만 원으로 오피스텔을 얻어 생활하고 있었다. 취재를 마친 후에는 완전한 이주를 위해 오래된 집을 매매했다는 소식도 들려왔다.

통영의 임수민 역시 이주하면서 처음으로 내 집 마련에 성공한 사례다. 수리가 필요한 구옥을 매매해 직접 고쳐 살고 있다. 그는 사정상 집값을 자세히 말하지는 않았지만, 대략 1억 원 아래로 구매했다고 귀띔해주었다. 이 대목에서 나는 정말 솔깃했다. 취재하며 처음으로 ‘나도 탈서울을?’ 하고 생각해 볼 정도였으니까. 이 정도라면 내 집마련의 꿈도 꿔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들의 공통점은 오래된 구옥을 고쳐 사용한다는 점이다. 구옥을 고치며 살아가기 위해선 손이 많이 가지만, 비교적 낮은 가격에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렇다면 다음으로 자연스럽게 드는 생각은, 과연 집을 고치는 데 어느 정도의 비용이 들까 하는 점이다. 아마 취향과 안목이 뚜렷하고 다양한 사람일수록 적지 않은 비용이 들 것이다. 실제로 요나는 집을 고치는 비용까지 합하면 서울에서 전세를 얻는 것과 비슷한 목돈이 들어갈 것 같다고 말했다. 임수민 같은 경우도, 집 인테리어 인건비를 절약하기 위해 직접 DIY로 집을 완성했을 정도다.

하지만 서울에서 전세 자금으로 20평대 아파트에 사는 것보다 지방에서 내 집을 마련해 단독 주택에 사는 것은 분명 큰 매력이 아닐까? 아무렴, 이들은 하나같이 서울에서보다 삶의 질이 훨씬 나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그래서 지금, 이 시점에서 탈서울을 시도해볼 만한 가치가 있냐고 묻는다면, 결과가 성공이든 실패든 자신이 원하는 길을 믿고 따라가 보라고 말하고 싶다. 조금 무책임하게 들릴 수 있지만, 이번 ‘서울 바깥의 삶’을 취재하며 만난 사람들이 그렇게 자신의 길을 선택했다.

저마다의 이유로 서울을 떠나 각자의 터전을 꾸린 이들은 새로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었고, 한편으로는 서울에서 누리지 못했던 여유로운 삶을 만끽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들의 모습을 통해 하나 깨달은 게 있다. 서울 바깥의 삶은 단순히 도시의 피로감이나 생활환경을 피해 이주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이유와 방식으로 선택한 ‘나 자신을 찾는 과정’이었다. 그 결정은 때로는 큰 용기였고, 때로는 자연스러운 흐름이었다. 서울을 떠난다는 행위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더욱 충만하게 만들기 위한 하나의 선택이었던 것이다.

내게 가장 큰 여운을 남긴 임수민의 말을 끝으로 이 취재기를 마칠까 한다.

“통영에 사는 사람들은 서울을, 서울에 사는 사람들은 통영을 부러워하는 사고에 대해서 생각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그런 갈망이 인생에 있어서 유의미할까?’라는 생각이 문득 들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늘 지금 있는 곳에서 최대한 즐기려고 해요.”


Write A.R.E(All-Round Editors) Graphic 이은호 Edit 금혜원 송수아

My Money Story 에디터 이미지
My Money Story

토스피드 오리지널 콘텐츠 'My Money Story'는 사람들의 일과 삶, 그 사이에 담긴 돈 이야기에 주목합니다.

필진 글 더보기
0
0

추천 콘텐츠

연관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