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표와 가격표가 있는 이모티콘들

나도 저작권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by 주소은

알고 싶어요. 저작권으로 먹고사는 세상

영화 ⟨어바웃 어 보이⟩에서 주인공 윌 프리먼(휴 그랜트 분)은 풍족한 백수로 살아갑니다. 아버지의 크리스마스 캐럴 저작권을 물려받았거든요. 그때부터였을까요? 뭐 하나 터져서 저작권료로 먹고살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게… 내가 자는 동안 돈이 일하게 할 투자 재주는 없지만 창작물 하나가 열일해주면 얼마나 좋을까요?

현실은 물타기의 연속이라도, 파이어족처럼 뜨거운 자유를 꿈꾸는 우리를 혹하게 하는 직업은 자꾸 바뀝니다. 허언증 환자를 다수 발생시켰던 “유튜브 할 거야” 이후 창작 욕구를 자극한 건 바로 웹툰, 웹소설, 그리고 이모티콘이에요. 방구석에서 최소한의 장비와 상상력으로 시작할 수 있다는 공통점이 있죠.

또 한편 저작권료의 대명사로 언제나 등장하는 건 음악 저작권이에요. “BTS 작곡가 피독이 5년 연속 저작권 수입 1위”, “벚꽃 필 때마다 벚꽃엔딩으로 10억 원” 이런 뉴스를 볼 때면 단풍엔딩이라도 써보고 싶어집니다.

우리는 아직 모르는 저작권으로 먹고사는 세상. 실체가 너무 궁금한 나머지 ① 귀여운 이모티콘을 끊임없이 생산 중인 이모티콘 작가 김소희를 찾아가 “이모티콘 하나 터지면 경제적 자유가 시작되는지”, ② 좋아서하는밴드부터 ⟨뽀뽀뽀⟩ 음악감독까지 성실한 음악인으로 살아온 싱어송라이터 안복진을 찾아가 “BTS 노래 한 곡을 작사했으니 이제 먹고살 걱정이 없어졌는지” 묻고 말았습니다.

Part 1. 이모티콘 하나 잘되면 경제적 자유가 시작되나요?

이모티콘 작가의 일상은 어떻게 돌아가나요.

“작업실 없이 집이나 카페에서 일해요. 보통 오전 11시쯤 카페에 가서 일하다가 오후 네다섯 시면 퇴근하죠. 저녁에는 운동을 하고요. 집중해서 작업하는 건 일주일에 3~4일 정도예요. 평소에도 TV를 보든 뭘 하든 손에 잡고 있기는 하지만요. 이렇게 생활한 지 4~5년 정도 되었네요.”

첫 이모티콘을 출시하기까지는 얼마나 걸렸는지 궁금합니다.

“1년 걸렸어요. 1년 동안 이것만 잡고 있지는 않았고, 계속 미승인을 받으며 이게 과연 될까… 하는 심정으로 몇 달에 한 번씩 심사를 넣어보곤 했어요. 그러다 카카오 이모티콘 도전 8번째에 승인을 받으면서 본격 이모티콘 작가 생활을 하게 됐죠.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는데, 대학 졸업할 때쯤 건강이 안 좋아져서 취업을 할 수 없었어요.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을 고민하다가 일 구하는 플랫폼 통해서 PPT나 명함, 전단지 디자인해주는 알바를 했고요. 그러다 제가 어릴 때부터 캐릭터 그리는 걸 좋아했다는 것을 아는 친구가 이모티콘을 개인도 만들 수 있다고 알려줬어요. 그게 2018년이니까 이런 일을 아는 사람도 실제로 해보는 사람도 적을 때였고, 저는 바로 도전한 거예요.”

혹시 그 친구도 같이 활동하고 있나요?

“몇년 동안 하고 싶다곤 했지만 본업이 있는 상태로 도전하기 어려워했어요. 제가 주변 사람들한테 작업 프로세스나 프로그램 등 이 일에 대해 엄청 알려주거든요? 그런데 실제로 도전한 친구는 그중에 두 명뿐이에요. 아직 승인받은 케이스는 없고요.”

지금까지 몇 개나 출시하셨어요? 대표작 소개를 부탁드려요.

“지금까지 카카오 이모티콘에서 48개를 출시했어요. 그중에 제일 아끼는 건 쵸키푸키 시리즈예요. 그릴 때도 가장 재밌었고, 이 캐릭터를 좋아해주는 분들도 많이 만나서 마음이 좀 더 가요. 쵸키푸키 이전에는 일러스트레이터로 더 단정한 그림을 그렸어요. 그러다 단순하고 손맛이 살아 있는 캐릭터를 개발하고 싶어서 스케치북에 진짜 네임펜으로 그린 걸 파일로 만들었더니 좀 찌글찌글하지만 귀엽더라고요. 그래서 처음에 출시한 쵸키는 거친 느낌도 있어요. 그후 아이패드 프로크리에이트로 작업하면서 조금은 부드러워진 지금의 쵸키푸키가 완성됐어요.

제일 아끼는 쵸키푸키 시리즈가 돈도 제일 많이 벌어다줬나요?

“아뇨, 아이러니하게도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과격한 곰저씨'가 수익은 제일 높아요. 이게 이모티콘플러스✱에서 상단 노출이 됐거든요. 과격한 곰저씨의 경우 “얘는 진짜 나의 에이스다, 잘될 거야" 하는 게 아니었고 오히려 미승인받을 게 뻔하다고 생각해서 묻어놨었어요. 그러다 제안할 게 떠오르지 않던 날 뭐라도 해보자는 마음으로 넣었는데 승인도 받고 가장 큰 수익을 안겨줬네요. 그래서 이제는 혼자 예측하지 않고 그리기 시작한 것은 제안까지 꼭 하고 있어요.” ✱카카오톡의 이모티콘 구독 서비스. 예를 들어 ‘감사'를 검색하면 고마움을 표시하는 각종 이모티콘을 추천해줘서 키워드별로 골라서 쓸 수 있다.

이모티콘 하나 출시하는 데 걸리는 시간과 단계가 궁금해요.

“절차는 단순해요. 어떤 아이디어를 떠올렸다면 ① 3~4일 정도 제안 파일을 준비해요. 이때 멈춰 있는 이모티콘은 32개를 전부 그리고, 움직이는 이모티콘은 24개 중 3개 정도만 동작을 보여주고 나머지는 멈춰 있는 것만 일단 그려요. ② 심사는 보통 2주가 걸리고요, ③ 승인이 되면 신규 작가는 2주 이내에 계약 관련 메일을 받고, ④ 그후 검수가 꽤 오래 걸려요.

이모티콘 스튜디오에서 컬러 검수, 최종 검수로 단계별 검수가 이루어진 뒤에 최대 3개월의 출시 대기 기간을 가져요. 검수 단계에서 움직이는 이모티콘은 모션도 마저 만들고 섬네일과 아이콘, 선물 이미지를 추가로 만들어요. 총 4~6개월 예상하면 돼요. ⑤ 그 과정을 거치고 나면 출시입니다!”

4년 동안 48개면 한 달에 하나씩은 신작을 선보인 셈이네요.

“네, 의도적으로 한 달에 하나는 출시하는 걸 목표로 하고 작업해요. 이제 출시한 이모티콘이 많아졌지만, 그래도 제안하는 게 모두 통과하는 건 아니예요. 그래서 매주 1~2개 정도 제안하고요, 그러다 보면 한 달에 한두 개는 승인을 받아요. 하나도 못 받을 때도 있고요.

한 캐릭터가 아주 인기가 많으면 그 시리즈만 가끔 내도 충분한 수익을 얻을 수 있겠죠? 저 같은 경우는 그렇게 보장된 캐릭터까지는 없기 때문에 다양한 이모티콘을 계속 구상하다 보니 미승인을 자주 받는 편이에요. 대신 새로운 걸 계속 제안하고 있어요.”

잘 팔리는 이모티콘 하나로 쭉 먹고살기는 힘든 건가요.

“이모티콘 하나가 빵 터졌다고 해서 계속 먹고살 수 있는 건 아니에요. 전업 이모티콘 작가로 살아가기 위해 꾸준히 수익을 내려면 ‘꾸준히 신작을 승인받을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해요. 하나가 인기 있어도 시리즈를 계속 낼 수 있어야 안정적인 수익을 얻을 수 있어요.

이모티콘이 판매되려면 이모티콘 스토어에 노출이 되어야 하고, 보통 베스트 순위나 신작이 노출되니까요. 매일 15~25개씩 새 이모티콘이 출시되기 때문에 순위는 금방 내려오고 쉽게 잊혀져요. 제가 처음 시작했을 땐 매일 5개 정도 출시였는데 정말 많이 늘었어요. 당연히 출시 첫 달보다 두 번째 달 수익이 훨씬 낮아요. 제가 처음 이모티콘 하나 출시했을 때 첫 달 수익이 140만원이었는데, 두 번째 달에는 9만원이었어요. 그러다 저처럼 출시한 게 몇십 개에 달하면 기본으로 누적되는 금액이 매달 어느 정도 생기는 거죠.”

프리랜서로 활동하지만 정산 걱정은 없겠어요.

“맞아요. 대부분 거래처가 대기업이라서. 이모티콘 제안할 수 있는 플랫폼은 카카오 말고도 네이버 OGQ, 라인, 네이버 밴드, 모히톡 등이 있는데요, 다른 곳이 승인받기는 더 수월하다고 하지만 수익 차이가 많이 나서 저는 카카오에 집중하고 있어요. 경험 삼아 다른 플랫폼부터 시작하는 분도 많더라고요.

수익 배분이나 금액은 계약상 비밀인데, 많이 알려진 건 판매 금액에서 작가가 30%가량 받는다는 거예요. 이모티콘플러스로 인한 정확한 금액은 예측할 수 없고요. 정산 내역은 이모티콘 스튜디오에서 직접 확인 가능하고, 4월에 팔린 건 6월에 받는 식으로 두 달 뒤에 지급을 받아요. 지금은 두 달 뒤 나의 월급을 예측하면서 사는 게 익숙해졌어요.”

모두에게 열려 있는 만큼 붐비는 길 위에서

책에서 “그림보다 메시지가 중요하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대화 속에 얼마나 잘 쓰이느냐가 가장 높은 우선순위이니까요, 모든 컷이 메시지를 담고 있어야 해요. 그러다 보니 그림이 대충 그린 것처럼 보여도 메시지가 특별하면 승인되는 경우도 있고 유행한 적도 있죠. 저도 음슴티콘이라고 대충 그린 게 컨셉인 거 냈었어요. 물론 그럼에도 선의 스타일이나 색감 등 최소한의 통일성은 필요해요. 기본적으로는 나만의 메시지가 있어야 승인도 잘 되고 매력도 있는 거 같아요.”

이모티콘도 트렌드가 있나요.

“트렌드가 계속 바뀌기는 해요. 몇년 전에는 가족이나 커플 사이 쓸 만한 것들이 잘되다가 너무 많아지니까 지나가는 경향이 있었고, 대충 그린 거 많이 나오다가, 그림은 복붙하는데 대사만 달라지는 것도 한창 나왔죠. 최근에는 최고심 작가처럼 공감되는 솔직한 말 담긴 게 인기 많았고요.”

요즘은 움직이는 이모티콘이 승인율이 더 높은가요.

“공식적인 건 아니고 제 예상인데요, 멈춰 있는 것보다 움직이는 이모티콘 만들기가 더 어려워요. 그러니까 당연히 멈춰 있는 이모티콘 제안이 훨씬 많겠죠? 하지만 매일 새로 출시되는 이모티콘들을 보면 멈춰 있는 것과 움직이는 것 비율이 비슷하거나 움직이는 이모티콘이 더 많아요. 그래서 움직이는 이모티콘을 제안하는 게 더 경쟁력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처음 만들 때는 그림 하나 움직이게 하는 데 4시간씩 걸렸는데 지금은 20~30분이면 돼요.”

프리랜서는 대개 마감의 노예라 정말 프리하지는 않은데, 이모티콘 작가는 정말 프리해 보여요.

“그렇죠. 마감일도 스스로 정하면 되니까요. 업무 장비도 간단해서 일하는 장소도 시간도 제 마음대로 할 수 있어요. 동료나 상사나 클라이언트 눈치도 안 보는 거, 이게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이모티콘 작가는 어떤 때 괴로운가요.

“초반에는 ‘미승인' 때문에 미쳐요. 이모티콘 작가가 되기까지 수차례 미승인을 받고 포기하는 분들이 많을 정도예요. 저도 수없이 ‘나는 안 되나 봐'를 겪었어요. 지금도 미승인이 괴롭기는 마찬가지지만 멘탈이 많이 강해졌어요. 미승인을 뒤로하고 새로운 아이템을 계속계속 만들어가는 거죠. 아까 장점이라고 했지만 정말 마감이 없다는 점도 어떤 사람에게는 단점이고요. 늘어질 수 있어서요.

지금 제일 무서운 건 사람들의 반응이에요. 진짜 심혈을 기울여 만든 기대작인데 반응이 없을 때. 제품이나 작품을 세상에 내어놓는 분들은 모두 공감할 거예요. 이거는 정말 제가 더 할 수 있는 일이 없어요. 이모티콘 특성상 플랫폼에게 모든 게 달려 있다는 것도 무기력해지는 부분이에요. 이모티콘 작가들끼리는 “상단 노출 대체 얼마면 되냐!”는 농담도 자주 해요.

아까 수익 1위라고 말씀하신 곰저씨처럼 이모티콘플러스에서 많이 쓰이기를 노리는 방법도 있나요.

“플러스를 사용할 때 킥킥이라고 쓰면 킥킥에 해당하는 이모티콘 추천이 뜨는데, 곰저씨가 상단 노출이 많이 됐어요. 알고리즘이 공개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심플하면서 메시지가 한눈에 깔끔하게 잘 보여서 그런 게 아닐까 혼자 생각하고 있어요.”

이모티콘 작가라서 생긴 습관이 있다면요?

“이모티콘 스토어를 자주 모니터링하는 거? 메인 화면 큐레이션이 일주일에 한 번씩 바뀌는데 그것도 꼭 보고, 매일 신규 이모티콘 나오는 10시 30분에 들어가서 꼭 확인하고요. 그때 눈여겨본 게 있으면 추후 판매 순위가 어떻게 되는지도 봐요.

그리고 커뮤니티나 단톡방에서 유행하는 짤과 밈도 섭렵해요. 이게 언제 어떻게 아이디어가 되어 돌아올지 모르거든요.”

제가 지금 이모티콘 작가에 도전한다면 무엇을 준비해야 할까요.

“무료 프로그램과 마우스만으로도 가능한데요, 태블릿PC와 펜슬, 프로크리에이트나 클립스튜디오(그림 그리는 유료 프로그램)면 충분해요. 거기에 어떤 캐릭터를 그릴지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싶은지 기획부터 하고 실제로 그리기 시작하는 거죠!”

작가님은 미승인 받으면 뭘 고쳐보나요. 미승인 사유를 알려주는 곳도 있다고 들었어요.

“네이버 OGQ가 예전에 알려줬었는데 이제는 안 알려줘요. 제안한 이모티콘이 미승인을 받으면 한 세트 안에서 다양한 메시지와 컷이 들어갔는지 확인하고, 그림체 정돈해서 완성도도 높여보고, 내 캐릭터가 더 특별해 보일 수 있는 동작으로 바꿔보기도 해요. 5가지 색상을 쓰더라도 노란색 옆에 노란색 피하거나 동작도 겹치지 않게 하는 등 배치를 다시 해보고요. 그림 배치만 바꿔서 다시 승인된 경우도 있어요.”

미승인 받고 계속 고치기 vs. 새로 만들기 중 지망생에게 추천하는 방법은요?

“저 같은 경우 미승인된 걸 끈질기게 고치는 것보다는 새로운 아이템 제안이 더 쉬운데요, 그럼에도 꼭 내고 싶을 때는 이리저리 수정해서 재도전하고 있어요.

지망생이라면? 둘 다 해야죠. 일단 미승인을 몇십 번 받더라도 계속 해보셨으면 해요. 30번 미승인 받았어도 31번째에 승인될 수도 있는데 너무 아깝잖아요. 그런데 딱 하나를 가지고 몇십 번 고치지 마시고, 두세 번까지만 해보시고 안 되면 다른 아이디어로 넣으세요. 그리고 진짜진짜 아까우면 몇 개월 뒤에 다시 꺼내보면 좋겠어요. 계속 하나만 보면 객관적인 시선이 흐려지거든요. 그러다 시간이 흐른 뒤에 보면 ‘내가 이거 왜 이렇게 했지'가 보여요. 하나만 붙들고 있는 것보다는 다양한 시도를 권해요.”

지금도 창작물에 대한 저작권 사용료로 살아가는 건데요, 또 도전하고 싶은 분야가 있나요.

“지금은 한 캐릭터로 시리즈만 만들지 않고 계속해서 새로운 캐릭터를 만들고 있는데, 모든 캐릭터는 아니고 쵸키푸키처럼 사업적으로 끌고 가보겠다 싶은 친구들만 캐릭터 저작권을 등록해두고 있어요.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개발하다가 한 캐릭터가 인기를 얻고 팬덤이 생기면 캐릭터 사업을 이어가고 싶어요. 그러면 카카오 이모티콘 스토어에만 내 수익이 달려 있는 게 아니라 수익이 발생하는 루트를 다각화할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런 그림을 바라며 일하고 있답니다.”

작가가 제일 아끼는 캐릭터 쵸키와 푸키가 인사하는 장면.

Part 2. BTS 노래 작사하면 먹고살 걱정이 없어지나요?

“노래는 누구나 만들 수 있습니다. 그 시작은 무엇이든 적어보는 것입니다.” – 안복진, ⟪노래가 되지 못한 것들⟫ 중에서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작사 클래스'가 신기하고 반가웠어요. 어떤 것들을 알려주나요.

‘노래가 될 수 있는 것들'이라는 수업은 보통 4회차로 이뤄지는데요, 작사에 관한 기초를 알려드려요. 노래는 누구나 만들 수 있지만 어떤 태도로 임하는 게 좋은지, 창작과 관련한 여러 이야기를 들려드리고, 직접 쓴 가사로 노래를 녹음하는 것까지 해보는 시간이에요.

악기는 갑자기 다루기 어렵지만 글은 누구나 쓸 수 있어서인지 관심이 많으시더라고요. 동네책방뿐 아니라 요청해주는 기관들에서도 하다 보니 어느새 150명 가까이 만났어요. 보통은 호기심으로 오시는데, 가끔 아주 진지하게 음악의 꿈을 접어두고 살다가 다시 펼치고 싶은 분이 수업 다 끝나고 찾아오세요. 그러면 음악을 시작하는 법과 함께 제가 경험한 선에서 환상 깨지는 얘기도 다 해드리죠. 음악을 시작한 지 15년 됐고 작사뿐 아니라 여러 포지션을 경험하다 보니 데이터가 많이 쌓였거든요.

그러고 보니 인디밴드 ‘좋아서하는밴드' 활동부터 ⟨뽀뽀뽀⟩ 음악감독, BTS 수록곡 작사, 싱어송라이터로 음반 제작까지, 음악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종류별로 다 해보셨네요.

“아티스트와 성실한 직업인 사이를 열심히 오갔어요. 예술혼을 불태운 것과 돈 벌려고 하는 일이 잘 섞여 있죠. 좋아서하는밴드는 순수하게 음악을 만들고 들려드리는 일로 시작했지만 수많은 버스킹 공연에서 음반이 팔리고 음원도 많이 들어주시는 등 직접적 수입으로 이어졌어요.

작사, 작곡, 노래를 다 하니까 좋은 기회로 ⟨뽀뽀뽀⟩ 음악감독을 하게 됐고, 눈 깜짝할 새 7-8년이 지났더라고요. 그러면서 동요 작곡작사도 하게 됐고, 좋아서하는밴드의 ⟨달을 녹이네⟩ 가사 덕분에 하이브 엔터테인먼트의 제안도 받았죠. 또 그 경험 때문에 직접 솔로 음반을 제작하고 책까지 썼고… 주어진 일을 하는 것과 호기심이 만나서 길을 열어온 것 같아요.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650곡이나 등록하셨다고요?

“좋아서하는밴드로는 공동 작업 포함 130여 곡, 그리고 나머지는 영화, 방송 등 음악감독 일을 하다 보니 곡수가 많아졌어요. 아무래도 ⟨뽀뽀뽀⟩의 영향으로 동요가 제일 많아요. 방송 안에서 개별 트랙뿐 아니라 리메이크된 것도 있고, 시그널 및 연주곡으로 따로 쓰이기도 하면서요.

저작권 관리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에요. 매번 나오면 접수하느라. 퍼블리싱 업무를 대신 해주는 대행사도 있는데 몇 곡을 제외하고 저는 스스로 관리하고 있어요.”

저작권료를 받을 때 내 음악을 어디서 얼마나 들었다는 걸 알 수 있나요.

“네, 한 달에 한 번씩 저작권자에게는 성적표 같은 내역서가 오거든요. 메일로도 보내주고, 협회 웹사이트에 들어가 볼 수도 있어요. 스트리밍 사이트, 방송, 라디오, 노래방, 공연장, 카페 같은 매장 등 어디서 몇 번 틀었고, 그래서 얼마씩 들어온다는 걸 알 수 있죠. 매체마다 저작권 사용료 책정이 다 다르게 되어 있고요. (어디선가 노래방에서 부르는 게 최고라고 들었는데, 정말 그런가요?) 음… 제 경험에 따르면 라디오와 TV에서 틀어주는 게 더 좋아요. 프로그램에 나가서 뮤지션이 직접 노래 부르는 건 더 높고요. 아 맞다! 아무래도 광고에 사용되는 게 최고였던 거 같아요.”

650곡 정도면 풍요로운가요? 작업실이 근사해요.

“그게 참, 온 국민이 다 알 정도로 유명한 곡들을 만들었으면 그럴 텐데. 이 작업실을 얻을 때도 큰맘 먹고 저질렀어요. 남산 자락의 소박한 공간이지만 구옥이라 싹 고치는 데 대략 3000만 원 정도 들었어요. 그때가 아이 낳은 지 2년째였고, 밴드에서 오래 함께한 멤버가 나가게 되며 슬럼프일 때였거든요. 어느 순간 상실감과 우울감이 찾아오며 이제 뭔가 만들어내지 못할 것 같았는데, 남편의 제안으로 저만의 공간을 갖게 됐어요. 처음 세 달은 이곳에 와서 피아노만 쳤어요. 오롯이 나를 위한 그때의 연주가 저를 다시 일으켜줬는지도 몰라요.

그런데, 그러다 이 공간에 돈을 투자한 것에 대한 부채감이 밀려오는 거예요! 투자한 만큼 결과물을 생산해야겠다는 생각이 동력이 돼서 다시 음악도 만들고, 여기서 책도 쓰고, 처음으로 제 솔로 앨범도 제작했어요. 지금은 음악교육 사업을 시작해 매일 못 오는 게 아쉽지만 정말 고마운 곳이에요.”

직업 하나가 또 추가됐군요? BTS 노래 쓴 사람은 다른 일 안 해도 될 줄 알았는데…

“BTS의 ⟨FILTER⟩를 작사하고 그런 질문을 많이 들었어요. “월드클래스와 함께해서 이제 부자 되는 거냐"고요. 결론부터 말하면 그렇지 않아요. 이유는 음원 유통 수익 배분 구조를 보면 알 수 있는데요, 통상적으로 음반제작자가 약 50%, 서비스사업자가 30~35%, 저작권자가 약 10%, 실연자가 약 6%를 받아요. 저작권자의 10%를 작사, 작곡, 편곡이 통상 5:5:2 비율로 또 나눠 받죠. 게다가 타이틀곡도 아니고, 공동작사니까 제 몫이 얼마나 작은지는 예상이 가시죠. 원래는 이력에 쓰는 것도 무척 쑥스러워했는데 지인들이 엄청난 노력의 결과니까 대문짝만하게 써두라고 해서 자랑스럽게 얘기하고 있어요.”

⟨FILTER⟩ 이후 또 다른 작업도 하셨나요. 방금 말씀하신 엄청난 노력의 과정이 궁금해요.

“혼자 곡 쓰고, 가사 쓰고, 노래하다가 전업 작사가로 일하려니까 적응이 안 되더라고요. 엔터테인먼트사에서 어떤 곡이 나올 때 여러 안무 시안을 받아 채택하는 과정이 알려진 것처럼 작사도 비슷해요. 리드(가이드곡)를 받고 시안을 보내고 선택되지 않으면 없던 일이 되고… 철저히 경쟁하는 구조죠. 처음에 제 가사 받아보고 싶다고 연락받았을 때는 순진하게도 무조건 제 거 쓰는 건 줄 알았어요.

그런데 여러 번 시안을 써서 내도 마지막에 꼭 떨어지고, 그게 내가 24시간 잠 안 자고 쓴다고 해서 되는 일도 아닌 거예요. 게다가 저는 내 일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하니까 가사가 뭔가 마음에 안 들면 썼다가도 안 보내고 그랬어요. 그러면 안 되는 건데.

할수록 전업 작사가랑은 안 맞는다는 걸 깨달았고, 이제 그만해야겠다고 마음먹을 즈음 쓴 게 ⟨FILTER⟩였어요. 그러고 나서는 뭐 했냐면… 다시 좋아서하는밴드로 싱글앨범 6장 내고, 미뤄뒀던 첫 솔로앨범 ⟨ZERO ZERO⟩를 만들었어요. 10년 이상 쌓은 메모와 가사 사이의 글들을 ⟪노래가 되지 못한 것들⟫이라는 책으로도 내고요. 덕분에 음악을 지속하는 새 방법을 찾는 계기가 됐죠.”

음악하는 사람이 무슨 돈 얘기야?

제작자가 되기로 결심한 건가요.

“밴드를 할 때는 저희가 저작권자이자 제작자였지만, 대체로 대형 기획사에서 만드는 음원은 저작권자와 제작자가 달라요. 노래를 만든 사람은 영혼은 탈탈 털었지만 돈을 투자하지 않았고, 어쩌면 투자한 사람이 열매를 많이 가져가는 건 당연한 거 같아요. 다만 이런저런 일을 경험하고 나니까 홀로 제 앨범을 만들고 싶었어요. 제가 곡 쓰고 노래한 인건비는 제외하고, 음반 만드는 데 3천만 원 정도 썼더라고요. 프로듀싱비, 녹음비, 연주자 인건비, 피지컬 앨범 프레싱에 감사하게도 한국콘텐츠진흥원에서 지원받은 뮤직비디오 제작비까지 합쳐서요.

그리고 명확히 체감할 수 있었죠. 음악을 오래 했어도 다시 신인 뮤지션으로서 투자한 돈을 회수하려면 굉장히 긴 세월이 걸리겠다는 걸요. 좋은 작업을 매년 내지 않는 이상 제 이름은 계속 안 알려질 거고… 근데 이게 슬퍼하고 울 일이 아니고 그냥 경험해보고 싶었던 거예요.

안복진으로 처음 발표한 솔로앨범의 타이틀곡 ⟨Snoopy⟩의 뮤직비디오.

하물며 작사를 전업으로 하는 건 정말 험난하긴 하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런 수익 배분 구조 속에서 다른 일을 하나도 안 하고 작사만 하면서 일반적인 직장인만큼 벌기는 정말 어려워요. 월급도 월급 나름이겠지만, 만약 제가 월 400, 500만원을 벌고 싶은데 그걸 저작권료로 받으려면 정말 많은 노래를 썼거나 쓴 곡이 모두 히트곡이어야 해요. 누구나 들으면 아는 뮤지션이면서 자신의 곡을 쓰거나요. 일반인이 갑자기 부푼 꿈을 갖고 전업으로 뛰어들 일은 아니에요. 수업 때도 이런 부분은 냉정하게 말하곤 해요.”

이렇게 다양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먹고사는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하시는 거 같아요.

“저도 이제 와서야 하게 됐고 여전히 조심스러워요. 세상이 많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돈 이야기를 하라고 하면 예술가들은 불편해하고 어렵게 느끼는 경우가 많아요. 노래를 쓰는 사람들은 항상 세상에 없는 걸 좇잖아요. 결과물을 내놓아도 어떻게 될지 모르는 걸 하고 싶어서 하는 사람들이죠. 그래서 돈을 쉽게 못 봐요. 음악 산업에서 돈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누가 가져가는지, 이 구조가 어떻게 생겼는지, 무엇을 왜 바꿔야 되는지 잘 알았으면 좋겠어서 이야기를 조금씩 해보는 거예요.”

한 곡에 대한 저작권료도 각각 다른 경로로 발생하는데 그중에 특히 기억에 남는 것도 있나요.

“이것도 그동안 말할 일이 잘 없던 건데, 제가 쓴 동요 ⟨우리 동네 한 바퀴⟩가 초등학교 2학년 국정교과서 ‘가을’에 실렸어요. 그래서 그 또래 꼬마들 만나면 ⟨우리 동네 한 바퀴⟩ 만든 사람이라고 자랑해요. 그럼 아이들이 대단하다고 해줘요(웃음). 교과서에 악보가 수록되면 저작권료가 지급되는데, 재밌는 게 참고서에서도 저작권료를 줘요. 교과서 내용 해설하느라 거기도 악보가 들어가서요.”

다시 이야기를 앞으로 돌려서, 작사를 시작하려면 뭐부터 해야 하나요?

“음악을 모르면 기본적인 공부는 필요해요. 직접 연주자가 될 필요는 없는데 곡을 분석할 줄 알아야 하거든요. 음악의 구조, 리듬꼴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어떤 음악 장르에서는 어떤 문장이나 리듬감이 도움이 되는지 정도는 알아야 해요. 수학 공식처럼 규칙이 있는 부분도 있으니 사전 지식이 있으면 훨씬 즐겁게 작업할 수 있고 완성까지 걸리는 시간도 짧아져요.

시적인 표현은 한 곡에서 5~10%면 돼요. 저도 예술적인 표현에 흠뻑 빠져 있던 때가 있는데요, 멋진 표현으로만 이루어진 가사는 아무도 원하지 않아요. 나 혼자 들을 게 아니고 대중과 함께 듣고 싶어서 가사를 쓰는 거라면 멋있는 문장은 한두 줄이면 돼요.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지만, 모든 글이 가사가 되는 건 아니에요. 산문을 짧게 줄인다고 노래로 불러지지는 않거든요. 일반적으로 작사는 음이 먼저 존재하고 그 이후에 붙여져요. 작사가는 이미 만들어진 노래라는 몸에 가사라는 옷을 입히는 사람이죠. 음에 붙지 못한 글은 결국 가사가 아니에요. 제 책 제목처럼 ⟪노래가 되지 못한 것들⟫일 뿐.”

그럼 주변에 음악하는 사람이 없으면 작사가가 될 수 없나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을 텐데요, 스스로 노래를 만들거나 작곡하는 사람을 찾아 의기투합하면 되죠. 내가 쓴 가사를 붙이고 음원으로 발표하고 협회에 등록하면 음악 저작권자가 되는 거니까요. 인맥이 없을 때 가장 쉬운 방법은 작사 학원이 있어요. 혹은 유튜브나 사운드클라우드 같은 곳에서 곡 만드는 사람을 찾아 연락해볼 수도 있겠고, 작사 공모전도 있지요.

그럼에도 제가 수업 때 자주 하는 이야기는, 결국에는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 되자는 거예요. 저작권자이자 제작자가 되어보는 거죠. 현재의 구조에서는 선택받는 것보다 만드는 쪽이 더 가능성이 높거든요. 저는 욕심을 부려 앨범 제작에 3000만원을 썼지만 음원은 단돈 10만원으로도 만들 수 있어요. 물론 퀄리티는 본인이 선택하는 거죠. 돈을 쓰는 것도 버는 것도 투자한 사람의 몫이니까요. 게다가 남을 위해 만드는 것보다 언제나 내가 나를 위해 만드는 음악이 훨씬 즐겁답니다.”

음악을 오래 하기 위해 여전히 노력 중이신가요.

“저는 80대까지 음악을 만드는 사람이고 싶어요. 그러려면 창작자로서 버는 돈만으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벌 때는 많이 벌고, 안 벌 때는 너무 없는 편차에서 오는 불안함이 삶을 힘들게 만들더라고요. 그래서 우와아트랩이라는 아이들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예술 교육 콘텐츠 사업을 시작했어요. 그간 방송을 통해 쌓은 어린이 음악 제작 능력과 하루하루 성장하는 아들의 영향이 있었고요, 오랜 인연인 무용가 원은혜 님과 재회하면서 함께 이끌어가게 됐어요.

처음에는 공기관에서 아이들을 위한 음악수업을 진행해달라는 요청을 받고 시작했는데 점차 필요한 곳이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 예술은 인간을 건강하고 유연하게 성장시킨다는 믿음으로, 아이들이, 나아가 가족들이 행복하기를 바라며 열심히 하고 있어요. 이렇게 회사를 잘 운영해서 안정적인 수익을 만드는 사람이 되면 80대까지 음반을 내면서 살 수 있지 않을까요.”


Interview&Edit 주소은 Graphic 조수희 이은호 함영범

– 해당 콘텐츠는 2023.4.24.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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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스의 콘텐츠 매니저. 삶을 돌보는 데 필요한 금융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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