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소한 질문들⟩ 겨울호: 이방인으로 살아남기

by 사소한 질문들

나 빼고 모두 어학연수를 떠나는 것 같던 때도, 자조 섞인 탈조선이 화제일 때도, ‘이주민의 삶’은 제게 오랫동안 로망이었습니다. 그러다 한 스페인 생활기를 읽고는 내일이라도 비행기 티켓을 끊을 기세였어요.

이후 정말로 이주를 준비해 비자까지 받았으나 사정상 포기하고는 어쩐지 억울한 마음만 안고 있었지요. 그래서 생활감 없이 산뜻한 호텔방이 누덕누덕 추억과 상처 붙은 내 방이 될 때의 처연함을 짐작만 하는 저로서는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알았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세계 경제에 끼치는 영향력에 비해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퍼뜩 들었고요. 

1. 국제 이주민은 이제 3억 명에 달해 지구 총인구의 3.5%를 차지한다.

2. 한국 체류 외국인은 2022년 기준 217만 2천여 명으로 전체 인구의 4.2%를 차지해, 우리나라는 다문화사회(전체 인구 대비 외국인이 5% 이상인 사회)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3. 총고용에서 이주 노동자 수가 1% 늘어나면 5년 차까지 국내 총생산(GDP)도 1% 늘어난다.

4. 한국에서 2016년 외국인 노동자 99만여 명이 경제활동에 참여해 생긴 경제유발 효과가 74조 원에 이른다.

5. 국제 송금의 대부분은 상대적 빈곤국 출신 이주 노동자들이 부유한 나라에서 벌어들인 임금이다. ‘이주자 국제 송금’은 저개발국 빈곤층 가구 수입의 30~40%를 차지할 만큼 비중이 크며, 공적 개발원조나 직접투자보다도 더 효과적으로 국제사회의 부를 재분배하는 수단으로 평가받는다.

매년 12월 18일에 돌아오는 ‘세계 이주민의 날’은 전 세계 이주 노동자의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 국제연합(UN) 총회에서 제정됐어요. 크리스마스 일주일 전인 이 날을 마주하고서야 살아남아야 하는 이방인의 사정을 헤아려 보았습니다. 해외에 정착하려면 현실적으로 얼마가 필요할까? 한국에 온 이주 노동자의 금융생활은 어떨까? 선진국들은 왜 이민을 유치할까? 유럽으로 간 노동자는 더 행복할까? 수많은 작품에서 재외 한인들의 삶은 어떻게 변화해왔을까? 

와르르 쏟아진 물음표에는 영국 사는 수민, 핀란드 사는 미나, 호주 사는 다영, 한국에서 여러 노동을 경험하고 최근 자영업을 시작한 스리랑카인 차민다, ⟪이주하는 인간, 호모미그란스⟫를 집필한 조일준 기자, 독일에 살며 이방인의 삶을 콘텐츠로 전하는 차유진이 답해주었어요. 조일준 기자는 원고를 보낸 다음 날 캄보디아인 이주노동자가 2년 전 비닐하우스로 된 숙소에서 추위로 숨진 현장을 다시 취재했는데 여전하다며, 불편한 진실을 마주해줄 것을 당부하는 메시지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2022년에 전 세계 1억 명을 돌파한 강제 이주민(난민)과 관련해서는 사소한 질문조차 쉽사리 떠올리지 못했지만 ‘마주함’의 물꼬는 되어주기를 바라며… 땅에서 발 동동 떠오르는 로망으로 출발해, 두 발을 땅에 딛고 생존해내는 현실로 끝나는 ‘⟨사소한 질문들⟩ 겨울호: 이방인으로 살아남기’ 편을 시작합니다. 

주소은  기획 이지영, 정경화, 주소은  그래픽 이은호, 조수희, 엄선희, 이나눔, 함영범 사진 김예솔, 김예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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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질문들

세상의 중요한 발견은 일상의 사소한 질문에서 태어납니다. 작고 익숙해서 지나칠 뻔한, 그러나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를 조명하며 금융과 삶의 접점을 넓혀갑니다. 계절마다 주제를 선정해 금융 관점에서 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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