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생활 주거비, 식비, 교통비, 병원비까지, 얼마면 될까?

by 사소한 질문들

누군가는 해외에 나가봤더니 서울 식비가 제일 비싸다고 하고, 또 한편으로 우리나라 의료보험이 최고라고 말합니다. 생활물가도 주거비용도 더 비싸고 대신 인건비도 더 높을 거라 기대되는 나라들에 실제로 살아보면 어떨까요? 수입과 지출을 고려한 체감 물가가 어떠한지 영국의 수민, 핀란드의 미나, 호주의 다영에게 물었습니다. 유튜브를 통해 일상을 낱낱이 공유하고 있지만, 한편으로 해외살이에 대한 환상만 심어주는 게 아닌가 싶어 마음에 걸렸다며 ‘현실을 다 알려주겠다, 떠나올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진심이 담긴 답변들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수민 / 영국 거주 7년 차  영국에서 디지털 마케팅과 콘텐츠 제작 일을 하고 있다. 2016년 영국에 와서 학사와 석사로 영화를 공부했고, 흘러가는 대로 살다 보니 취업과 결혼까지 하게 됐다. 올해 초 드디어 내 집 마련에 성공하며 파트너와 함께 맨체스터 주민으로 살고 있다. 유튜브 채널 ‘웰컴투수민’블로그에서 영국생활 정보를 전하고 있다.

미나 / 핀란드 거주 5년 차 2018년부터 핀란드 탐페레라는 작은 도시에 살고 있다. 한국에서는 중학교에서 교사 생활을 했고, 현재 핀란드에서는 한 기업에서 디지털 마케팅 업무를 담당한다. 유튜브 채널 ‘미나림’에서 핀란드 생활을 공유하고 있다.

다영 / 호주 거주 3년 차 영어를 좋아해 대학 진학 대신 워킹홀리데이를 떠나왔는데, 우연한 기회로 포크리프트(지게차)를 접한 이후 자격증을 땄고, 지금은 호주 건설 현장에서 머신 오퍼레이터 겸 팀 리더로 일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 ‘다이앤리’에서 호주 생활을 공유하고 있다.

Q. 어떤 계기와 마음으로 모국을 떠나 해외에 살게 되었나요?

수민: 캐나다로 어학연수를 다녀오고 나니 제 전공인 영상을 영어로도 배우고 싶었어요. 이후 영국 대학교로 편입할 기회를 잡았고, 졸업을 목표로 떠나온 게 지금 영국살이의 시작이에요. 한국에 살지 않겠다는 특별한 이유는 없었어요. 오히려 졸업 후에 한국으로 돌아가 취업을 하겠다는 생각이었기에 비장한 다짐 없이 침착하게 홀로 비행기를 탔던 기억이 납니다.

미나: 한국 학교 현장에서 근무하면서 핀란드 교육에 관심이 생겼고, 쾌적하고 안전한 환경일 거라는 기대로 석사 유학을 왔어요. 그때만 해도 처음 밟는 이 땅에 정착할 거라곤 생각도 못했고요. 그래서 정말 싱글벙글 웃으며 ‘와! 유학 간다!’ 하며 왔던 거 같아요.

석사 공부를 하면서 지내는데 낯선 이곳에서 편안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배려하는 사람들, 일과 생활의 균형을 중시하는 문화 등 삶의 질에 대해 깊게 생각할 기회였죠. 이런 삶을 선택해서 살아보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한국에 돌아가 퇴직하고 다시 핀란드에 왔습니다.

다시 올 때는 공부라는 목적도 없었고, 직업도 없고,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어요. 내가 한국에서 가지고 있었던 게 새삼 대단한 것들이었더라고요. 그래서 한편으로 막막하고, 한편으로는 홀가분했습니다. 뭐든지 될 수 있다는 생각과 실패하면 어떡하지?가 오가는 시간이었어요.

다영: 어머니께서 어릴 때부터 대학에 얽매이지 말고 정말 배우고 싶은 게 생겼을 때 배우고 싶은 곳에 가라고 하셨어요. 그 덕분에 제 가능성을 열어두고 있었는데, 고등학교 때 영어를 좋아하게 되면서 유학을 꿈꾸게 됐어요. 당시 영어학원 원장님을 통해 워킹홀리데이를 알게 됐고, 공부하려는 나라가 저와 맞는지 아는 것도 중요하다고 하셔서 유학보다 먼저 워킹홀리데이를 결심했죠.

그렇게 고등학교 때는 수능 준비하는 친구들만큼 영어 공부에 시간을 투자했고, 졸업 후에는 빵집 알바를 하면서 호주로 넘어올 초기 자금을 모았어요. 주변 사람들 반응은 “넌 어딜 가든 잘 살 거다”와 “가도 영어 안 늘고 돈도 별로 못 번다더라”로 나뉘었고요. 그때마다 “나는 다르다는 걸 보여줄게” 하고 다짐했어요.

올 때는 무섭거나 떨리는 것 없이 마냥 신났어요. 제가 3년 동안 기다리고 준비한 일을 드디어 시작한다는 게 기쁠 뿐이었습니다.

Q. 출국 과정에서 어떤 것을 준비했고, 돈은 얼마나 필요했는지 궁금합니다.

수민: 영국 대학교 입학에 필요한 영어 점수를 맞추고 비자 신청을 했어요. 대학별로 점수는 살짝 다르지만 평균적으로 아이엘츠 6.0(각 과목 5.5 이상)이 필요합니다. 대학교 입학 레터를 받은 뒤 비자를 신청할 수 있는데, 이때부터 본격적인 출국 절차에 필요한 비용이 청구돼요. 2022년 기준 비자 신청 약 60만 원, 영국의 병원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보험인 IHS 약 75만 원 x N년, 본인 명의의 통장 잔고 증명서 약 1천 2백만 원이 필요해요.

사실 가장 중요한 건 학비인데요, 영국 대학의 1년 평균 학비가 3천만 원이 훌쩍 넘어요. 제가 모았던 돈으로는 턱없이 부족해서 부모님 도움을 받았어요. 대신 영국은 학생 비자로 일주일에 20시간씩 일할 수 있고 최저 시급이 약 15,000원이라서 한 달에 100만 원 정도는 합법적으로 모을 수 있어요. 대학 시절 내내 카페에서 틈틈이 일한 덕분에 유럽권 배낭여행도 다녔었죠.

다영: 빵집에서 알바하면서 월급으로 100만 원 정도를 받았고, 그중 20만 원을 용돈으로 쓰고 나머지는 저축했어요. 호주 올 때는 비자 발급 42만 원, 비행기 티켓 50만 원, 신체검사비 16만 원, 워킹홀리데이 보험 20만 원, 호주 도착 후 3일 치 에어비앤비 예약 4만 원, 기타 물품 구매 10만 원 정도가 들었어요. 20만 원짜리 캐리어는 부모님이 사주셨어요. 하하.

미나: 처음에는 석사 유학을 위한 출국이어서 비자를 받기 위해 유학 생활을 위한 충분한 자금이 있다는 것을 증명해야 했어요. 핀란드에서 생각하는 유학생의 한 달 생활비는 등록금 제외하고 560유로(한화 약 78만 원)라서 1년 치를 따지면 약 천만 원 정도예요. 등록금은 장학금으로 지원을 받고 갔기 때문에 크게 들어간 돈은 비자 발급에 증명하는 용도인 천만 원과 비행기표 정도였다고 기억합니다.

그리고 졸업 후 학생 신분이 아닌 상태로 두 번째 출국을 할 때도 역시 천 만원 정도를 들고 갔어요. 학생 비자가 끝나면 1년간의 취업 비자를 주는데(현재는 2년으로 늘었어요) 한 달 생활비를 약 100만 원으로 잡고 열 달 치 천만 원 정도를 가져왔습니다. 정말 비자가 끝나기 직전까지 백수였기 때문에 가져온 돈은 홀랑! 다 썼어요.

이렇게 저처럼 무작정 해외생활을 계획하고 계신 분들은 최소 1년 치 생활비는 확보해서 나오시기를 추천드려요. 그리고 너무 최소한으로 잡으시면 힘듭니다. 정말 어이없는 일로 돈이 나가기도 하는 게 해외생활이거든요. 특히 초반에는 이것저것 사느라 돈도 많이 들고요.

Q. 지금은 어떤 일을 하면서 ‘나를 먹여 살리고’ 계신가요? 그 일을 하게 되기까지 노력한 것과 준비한 것, 준비 비용 등을 디테일하게 알려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수민: 대학교 졸업 작품으로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제출한 것이 제가 부모님으로부터 경제적 독립을 할 수 있었던 계기예요. 영화를 전공했기에 모든 학생들이 단편 영화를 만들어 제출할 때, 혼자서 프리 프로덕션, 프로덕션, 그리고 포스트 프로덕션까지 소화하고 그 결과로 영업이익까지 낼 수 있다는 걸 유튜브라는 플랫폼으로 증명한 거였어요.

현재 유튜브 순이익은 월 최소 30만 원에서 최대 200만 원이고요. 채널에 콘텐츠가 어느 정도 쌓인 뒤로는 브랜드 협업으로 최대 500만 원까지 부가 수익을 내기도 해요. 하지만 수입이 들쑥날쑥하고 영국에서 유튜버라는 직업으로 대출을 받기는 힘들기 때문에, 9 to 5 풀타임으로 근무하는 직장에 디지털 마케터로 취업했어요.

8년 전부터 꾸준히 해온 블로그 포스팅, 졸업 과제로 시작한 유튜브 채널이 이제는 퍼스널 브랜딩과 콘텐츠 제작업으로 네이밍되어 디지털 마케팅과 이어져 있다는걸 깨달았고, 덕분에 신입이지만 인플루언서 마케팅 경력직으로 일을 시작할 수 있었어요. 취업 준비 비용은 딱 5만 원이었습니다. 링크드인 프리미엄 한 달 구독료였죠. 이때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영국에 뿌리 내려야겠다는 확신이 섰어요. 사진이나 자기소개서 없는 한 장짜리 이력서, 학력보다는 할 줄 아는 것(경력)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고용 시장에 신뢰가 갔거든요.

Q. 한국에서 중학교 선생님이었다가 핀란드에서 마케터로 새 출발한 미나 님의 여정도 궁금해요.

미나: 현재 저의 본업인 마케터로 들어오기 전까지 다양한 일을 하며 저를 먹여 살렸습니다. 정말 닥치는 대로 했다는 표현이 맞아요. 유학생들이라면 많이 해봤을 법한 단기 행사에서 통역도 다니고, 번역일이 들어오면 마다 않고 꼬박꼬박 했습니다. 매체에 기고하는 원고 집필은 이 모든 것들과 동시에 함께하는 삶이어서 항상 마감일에 시달렸던 기억이 있어요. 그 와중에 유튜브도 꾸준히 올렸고요. 그렇게 이것저것 다 해본 것들의 점을 이어 보니까 마케팅이 제가 해볼 만한 분야겠다 라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저는 거의 10년을 교육 전공으로 학사, 석사, 교사 생활을 한 뒤에 취업 시장에 뛰어든 거라 처음엔 정말 쉽지 않았어요. 비전공이고, 심지어 무경력으로 보는 데도 있었어요. 그래서 관련 지식을 쌓기 위해 디지털 마케팅 관련된 코스를 듣고 자격증을 받고, 정부에서 지원해주는 핀란드어 수업도 열심히 들었어요. 이렇게 새로운 것들을 쌓아가는 동시에 이미 제가 이뤄온 일들에서 어떤 점이 장점으로 어필될 수 있는지도 연구를 많이 했어요. 계속 새로운 스펙을 추가해서 능력을 키우려고 했는데, 알고 보니 제가 도전해온 길에 많은 장점이 있었더라고요. 그걸 알게 되니 자신감이 생기고, 지원했을 때 승률이 높아졌습니다.

Q. 다영 님은 호주에 오자마자 뜻밖의 정보를 접해 포크리프트 기사로 일하게 되셨죠. 눈물의 솔라팜 구직기 살짝 들려주세요.

다영: 처음에 여윳돈은 3000호주달러(약 270만 원) 가지고 왔고요, 제가 시골로 취업하러 떠나게 되면서 차가 필요해져 부모님께 200만 원 지원받았어요.

베이비시터 일을 하고 있었고 앞으로도 도심에 머물 줄 알았는데… 신입도 가능하고, 고소득이라는 정보를 경험자에게 듣게 돼 포크리프트 기사로 일해보기로 결심했었죠. 포크리프트 자격증 따는 데는 교육 2주, 수령까지 2주로 총 한 달 만에 실물 자격증을 받았어요. 나머지 관련 자격증 CPR, White Card(건설직종근무 필수카드)은 이수 개념이라서 하루 수업 듣는 것들이었고요. 필수는 아닌데 인맥이 없는 상태에서 어필해보려고 이것저것 따기도 했어요.

취업까지 과정은 사람마다 다른데, 저는 시기를 잘못 골랐어요. 코로나로 해외에서 자재가 들어오지 못한다는 걸 모르는 상태로 외딴 지역에 있는 솔라팜(태양광발전소) 현장에 갔거든요. 모든 공사가 중단되었을 때 구직하려 했던 거라 시간 낭비도 많이 했어요.

호주에서는 60, 70대 어른들도 페이스북을 많이 사용해요. 마을마다 페이스북 그룹도 있는데 거기서 중고 거래도 일어나고, 잃어버린 강아지를 찾기도 하고, 무엇보다 룸 렌트를 구할 수 있어요. 저도 그 그룹에서 운 좋게 간단한 잡일을 돕고 숙식을 제공받는 방을 구했고요. 미리 방 사진도 받아봤고, 그 집에서 살다가 나간 백팩커와도 연락해 어떤 곳인지 알아본 뒤에 들어갔죠. 그렇게 2주 동안 숙식 비용이 들지 않았는데 집주인 아저씨가 또 저와 잘 맞는 성향이라며 쾌활한 호주 언니를 소개해줬어요. 그 언니가 일을 구할 때까지 숙식을 제공해주겠다고 제안해서 또 어려운 시기를 넘겼고요.

저는 현장에 직접 컨택을 위해 시골로 이사 오면서 비용을 써야 했던 케이스라서 온라인으로만 지원하는 분들은 또 다를 거예요. 하지만 직접 컨택을 원하시면 부디 넉넉한 자금을 가지고 시골로 오시길 바라요. 저는 2000호주달러 남은 상태로 왔는데 수입이 없으니 마음이 너무 불안했어요.

Q. 지금 하는 일과 수입에 만족하시는지요? 같은 일을 한국에서 했다면 어땠을까요?

수민: 최근 다니던 직장은 짧게 다니고 퇴사해서, 첫 직장을 예시로 말씀드려 볼게요. 디지털 마케팅은 제게 덕업일치였어요. 회사에서는 인플루언서를 고용하는 입장에서 일하고, 퇴근 후에는 인플루언서의 입장에서 콘텐츠를 제작했기 때문에 콘텐츠 업계의 양쪽을 모두 경험할 수 있어서 시너지가 정말 좋았습니다. 그만큼 만족도와 업무 결과도 좋았구요.

그 회사에서 이직 전 마지막 연봉은 한화로 세후 4천 500만 원 정도였어요. 한국 디지털 마케터 1년 차의 평균 연봉을 몰라 비교하긴 어렵네요. 다만 유튜버 활동과 겸업이 가능했고, 100% 재택 근무라서 워라밸이 정말 좋았어요. 유튜브 수입 없이도 이 정도면 월세와 생활비를 감당하고도 돈을 좀 모을 수 있는 정도이고요.

미나: 현재 하는 일과 수입에 만족하는 편이에요. 일단 저도 100% 재택 근무에, 직무에 있어 자율성이 크다는 점이 좋아요. 처음 계약서 쓰던 날은 신이 나서 날아가는 줄 알았어요. 세전 연봉만 비교하면 한국에서 받던 연봉 대비 두 배 이상이 됐거든요. 이런 날도 오나? 하면서 좋아했는데 세금 등 각종 공제로 월급의 거의 40%를 떼어가더라고요? 이건 지금도 받을 때마다 당황스러워요. 그래도 제가 핀란드에서 생활비를 한국에서보다 적게 쓰고 있기 때문에 생활비를 충당하는데 큰 문제는 없습니다. 핀란드는 외식은 비싸지만 장 볼 때 식료품 물가가 낮고, 중고 문화가 발달해서 그런가 봐요. 그럼에도 요즘 인플레이션이 날로 심해지는 중이라 앞으로는 어떨지 모르겠네요.

다영: 건설 현장 머신(포크리프트와 대형 트랙터) 오퍼레이터로 일하다가 지금은 다른 팀에서 일하기 시작했어요. 태양광 패널들 뒷면의 케이블들을 전기공이 연결하기 전에 밑작업을 해주는 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수입은 제가 한국에서 빵집 알바하며 벌던 금액의 최소 5~7배 이상 벌고 있어요. 원래 금액을 유튜브에서 솔직하게 밝혔었는데요, 수입 공개 이후 악플이 많이 달려서 요즘은 말을 좀 아끼고 있어요.

Q. 일하는 과정에서 ‘와, 이게 이방인의 현실이구나’ 현타 맞은 순간이나 위기가 있었나요?

미나: 저 최근에 이 위기가 왔어요. 저희 회사 공용어가 핀란드어거든요. 재택할 때는 구글 번역기의 힘으로 못 느끼다가 가끔 회사에 나가 사람들이 핀란드어로 대화하면 ‘여긴 어디? 나는 누구?’ 이런 순간이 찾아와요. 특히 농담은 알아듣기 힘들잖아요. 사람들이 신나게 웃고 있을 때 저도 하하 웃기는 하는데 현타가 세게 오더라고요. 영어로 받아치며 바꾸려고 해도 다시 핀란드어로 돌아가고요. 얼마 전에 섭섭함이 쌓이던 날 집에 와서 엉엉 울었습니다.

수민: 직장에서 제가 처음으로 맡아 이끌던 한국 팀원들에게 해고 소식을 전해야 하던 때가 있었어요. 회사에서 진행하던 한국 시장을 닫으면서 저만 영국 시장으로 흡수된 상황이었죠. 회사에서 비자를 지원받고 있던 팀원이 당장 두 달 안에 다른 회사에서 비자 지원을 받지 못하면 비자가 끊기는 그때 현실을 체감했습니다. 이방인은 워라밸, 연봉, 생활비 걱정을 떠나 비자라는 벽을 넘지 못하면 아무것도 소용 없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었어요.

Q. ‘오, 나 이 정도면 여기서 잘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아’ 한 순간도 있었나요?

수민: 처음으로 승진했던 순간은 아직도 떠올릴 때마다 짜릿해요. 인터뷰 보고 최종 합격 레터를 받았을 때는 영국에서 이방인으로 살 수 있는 작은 기회를 얻은 기분이었는데, 그 회사에서 승진하던 순간에는 드디어 영국 사회 구성원으로 인정받은 느낌이 들었거든요. 이방인/외국인이라는 꼬리표가 제 기회를 제한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서 앞으로는 이곳에 살면서 적응 못할 게 없을 것 같았어요.

미나: 최근 집을 마련했는데요, 그 순간에 ‘여기서도 잘 살아갈 수 있을 거 같아!’ 하는 자신감이 들었어요. 딱 1년 전만 해도 저는 아무것도 없이 비자가 끝나가는 외국인이었는데, 현재의 저는 이 핀란드에서도 신용이 생긴 사람이 되었다고 느꼈거든요. 사실 집을 사는 순간까지도 ‘나 같은 외국인을 뭘 믿고 은행에서 이렇게 큰 돈을 빌려준대?’ 싶기도 했지만요. 내 집에 이사 와서 지내며 훨씬 안정적인 기분이 들어서 또 뭐든 해낼 수 있을 거 같다는 기분도 들어요.

다영: 농담 따먹기나 말싸움도 가능할 만큼 영어가 늘었을 때 뿌듯했어요. 이곳에서 지내며 꽤 다양한 인종 차별을 경험했는데, 절대 그냥 넘어가지 않아요. 친한 동료가 모르고 하는 말이나 행동이 있다면 “네가 모를 것 같아서 말하는 건데, 그거 되게 모욕적일 수 있으니 하지 않는 게 좋아”라고 분명히 말해요. 그러면 다행히 몰랐다고 사과하더라고요. 영어가 늘면서 내가 나 자신을 위해 맞설 줄 알게 됐고, 지금 회사에서 유일한 아시안이지만 당차게 팀 리더로서 일도 잘하고 있답니다.

Q. 현재 주거를 위한 비용은 얼마나 쓰고 있나요? 동네 분위기도 궁금해요.

다영: 지금은 주당 150호주달러(약 14만 원)를 내고 한 가정집의 하우스메이트(하숙생)로 1인실을 쓰고 있어요. 혼자 쓰는 화장실과 욕실이 있고요. 동네는 한적해요. 위험하지 않은 그냥 한갓진 시골 동네인데 그렇다고 굳이 밤에 밖에 나다니진 않아요. 일하는 곳은 마을 바깥 쪽에 위치해 있어서 아침마다 모든 워커들이 버스 픽업 포인트까지 운전해서 가고, 현장까지는 회사 버스로 출퇴근합니다.

다영: 고양이 ‘Shadow’도 함께 살고 있어요!

Q. 핀란드에서 내 집 마련, 부러워해도 되나요?

미나: 이 집은 당연히 은행이 마련해준 집입니다. 하하. 제 월급의 30% 이상을 매달 원금과 이자로 갚아나가고 있어요. 재택 근무를 하고 있고, 앞으로도 100% 재택하는 회사로만 이직을 고려할 거라서 일자리 많은 헬싱키가 아닌 제가 공부를 시작하고 정이 든 탐페레라는 도시에 첫 집을 마련했어요.

한국 기준 약 15평으로 방 하나, 거실 하나 있는 집이에요. 제가 유학 오고 나서부터 항상 지나갈 때마다 입맛을 다시던 동네에 매물이 나와서 엄청 기쁘게 계약했죠. 집 앞에 호수가 있는 조용한 동네예요.

부동산 거래할 때 한국과 다른 점은 일반적인 집 거래인데 입찰 과정이 약간 경매와 비슷했다는 점이에요. 한 집이 리스트에 올라오면 여러 명이 연락하고 방문해요. 그러고 나서 가장 높은 가격을 부르는 사람에게 집주인이 집을 주는 형식이라 처음에 얼마를 불러야 하나 너무 고민됐었어요. 사실 이 집이 인기 없는 집일 수도 있고 네고를 해서 낮출 수도 있는데, 반대로 인기 있는 집이면 돈을 더 불러야 하니까요. 엄청난 눈치 게임을 했었죠. 내 돈 주고 집을 산다는데도 이렇게 애타는 경험을 하게 될 줄 몰랐어요.

미나: 요즘 제게 가장 안정감을 주는 공간은 저희 집 거실이에요.

Q. 수민 님은 집을 매입하기까지 부동산 공부도 열심히 하셨죠. 왜 맨체스터였나요?

수민: 저와 파트너가 함께 사는 2인 가구인데, 집을 사기 전에는 한 달에 숨만 쉬어도 나가는 금액이 무려 300만 원이었어요. 월세만 200만 원이 훌쩍 넘었거든요. 부동산에 관심 가진 이유가 바로 영국의 주거 비용 때문이었습니다. 월세도 아깝고, 계약 기간이 끝날 때마다 보증금을 떼이지 않기 위해 안절부절하는 게 지겨워서 내 집 마련을 결심했어요.

현재는 매달 대출금(원금+이자), 아파트 관리비, 통신비 포함한 공과금 등을 모두 더한 고정 지출이 200만 원 정도에요. 이 중 140만 원이 대출금이고요. 물론 2인 가구니까 반반씩 나눠 내고 있어요. 영국은 집을 구매해서 매달 갚는 대출 금액이 월세보다 저렴해요. 요즘은 영국도 금리가 3%대까지 올랐지만 저희가 집을 샀을 때 받았던 금리는 다행히 1.8%였답니다.

한국 사람이 느끼는 영국 부동산 거래의 특징은 크게 두 가지예요. 첫 번째는 집을 구매하기까지 정말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 원하는 집에 오퍼를 넣고 잔금을 치르고 집 키를 받는 순간까지 최소 3개월에서 6개월이 걸립니다. 이것도 해당 집에 거주하는 사람이 없을 경우인데요, 만약 누군가 거주하고 있다면 거주자가 다른 집을 구해 나갈 때까지 한없이 기다려야 해요. 두 번째는 집을 구매하는 모든 과정이 양쪽 변호사를 통해 진행된다는 거예요. 구매자와 판매자가 직접 대화하는 일은 없고, 양쪽 모두 필수로 부동산 변호사를 고용해 모든 과정에서 내 변호사를 통해 소통해야 합니다. 대출도 은행에서 직접 받는 것보다 대출 브로커를 고용해 대출 과정을 맡기는 것이 더 편리하고요. 이 때문에 소통하는 데 시간도 더 걸리고 돈도 더 들지만, 저 같은 외국인이 영국에서 집을 구매하는 과정에 전문가의 도움이 더해지니 오히려 든든했어요.

잠시 주택 생활을 해보고서 저는 신축 아파트로 눈을 돌렸는데요, 요즘 영국의 아파트 트렌드는 ‘력셔리 레지던스’예요. 모던한 주거 공간에 헬스장, 프라이빗 디너룸, 코워킹 스페이스, 수영장, 스파, 사우나, 테니스 코트, 영화관 등 거주민이 사용할 수 있는 시설들이 추가된 아파트라 현대인들의 수요가 굉장히 높아요. 런던에서 이런 럭셔리 레지던스를 구입하면 좋았겠지만, 저희 예산으로 커버할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런던 다음으로 큰 도시인 맨체스터가 답이었습니다. 실제로 맨체스터는 현재 고층 아파트 붐이 불고 있어서 시티 중심가의 스카이라인이 매달 달라지고 있는 수준이에요. 영국의 부동산 업체들이 계속해서 맨체스터로 분점을 내고 있기도 하고요. 저희가 영국 타임즈와 인터뷰했을 때 기사의 타이틀도 “30대 이하 젊은이들이 맨체스터로 모이는 이유”일 정도로 런던 집값에 치인 사람들이 인프라는 갖추되 비교적 집값이 저렴한 맨체스터에 관심을 갖고 있어요.

런던보다 맨체스터가 부동산 투자 면에서 더 큰 기회라고 생각한 건 아니에요. 다만 저희는 런던에 살고 있다는 그 상징성과 1년에 한두 번 경험할까 말까인 문화시설 때문에 같은 조건의 부동산을 두 배로 비싸게 구매하고 싶지 않았어요. 집에 있는 걸 워낙 좋아하고, 맨체스터 중심부에 디지털 마케팅 일자리도 많은 편이라 커리어와 라이프스타일이 저와 제 파트너에게 딱 맞는 도시라고 판단해 맨체스터를 선택했습니다.

수민: 저희 집 거실과 침실이에요. 맨체스터는 비와 안개가 많은 지역이라 창문 보며 멍 때리기 좋아요.

수민: 인건비가 워낙 비싼 영국이다 보니 웬만한 건 셀프로 고쳐서 사는 일상입니다.

Q. 너무나 중요한 식비, 얼마나 들까요?

수민: 파스타, 카레, 연어구이 덮밥, 감자튀김을 자주 해먹어요. 집밥이라 한 끼로 나누면 물값, 전기값 포함해도 1인분에 3천 원이 안 될 거예요. 2인 가구인 저희는 한 달에 두 번 2주 치 큰 장을 보는데요, 장 볼 때 돈을 아끼지 않는 편인데 한 번에 적게는 15만 원, 크게는 25만 원 정도 들어요. 최근에 본 장이라 상승된 물가가 적용된 금액입니다. 매주 사먹는 2L짜리 우유 한 통이 3700원 정도고요.

영국판 배달의 민족인 ‘딜리버루’에서 4만원 이상 시키면 항상 무료배달이에요. 한식, 일식, 중식, 패스트푸드를 막론하고 항상 둘이서 시켜먹는 금액이 5~6만 원쯤 됩니다. 좋은 식당에 갈 때는 1인당 5~6만 원 들고요.

맨체스터와 런던 생활비가 드라마틱하게 차이 나지는 않아요. 맨체스터도 힙한 레스토랑이나 펍은 런던과 마찬가지로 쓸데없이 비쌉니다… 집밥 좋아하는 편이면 생활비에 들어가는 비용에서는 차이가 없을 거예요. 다만 집값에서는 큰 차이가 있어요. 런던에서 셰어하우스 방 하나 빌리는 비용으로 맨체스터에서는 원룸 하나를 빌릴 수 있어서, 런던 살던 직장인들이 맨체스터로 오면 혼자 살 수 있는 걸 최대 장점으로 꼽아요.

수민과 파트너가 집에서 해먹은 미트볼 파스타.

미나: 핀란드는 마트에서 사는 식료품은 한국보다 저렴하고, 외식비는 한국과 비슷하거나 더 비쌉니다. 이전에는 일주일 치 장을 보면 이것저것 담아도 30~40유로(약 4~5만 원)를 넘지 않았는데, 요즘은 인플레이션 때문인지 거의 50유로(7만 원) 이상 나오는 것 같아요. 우유 1리터, 계란 12구에 1유로대니까 한국에 비하면 저렴한 편이지만 식생활에 필수가 아닌 것들-달달한 디저트, 주류 등은 세금이 더 많이 붙어서 비싸요.

그리고 외식을 한다면 런치 메뉴는 12유로(17,000원), 일반 메뉴는 18유로(25,000원) 정도 들어요. 좀 근사한 식사를 한다 하면 1인당 십만 원 정도는 잡아요. 왜냐면 메인 음식이 30유로(42,000원) 정도에 술도 몇 잔 마시게 될 테니까요. 배달음식은 배달비가 5유로(7,000원) 정도 들고, 저는 1인 가구라서 1인분에 붙는 배달비로는 부담스러워서 최소한으로 시키려고 하고 있어요.

미나가 해먹은 토마토 파스타.

다영: 하루 10시간씩 주 6일 일하다 보니 밀 프렙(음식 미리 만들기)을 해둬요. 주로 일요일 저녁에 세 가지 음식을 준비해서 일주일 동안 먹어요. 주로 마트에서 구매하는 식재료들 가격을 살펴보면, 쌀은 10kg짜리가 36호주달러(약 3만 원)인데 가끔 가다 18달러로 반값 세일해요! 식빵은 1800원, 우유 2리터는 2700원, 파스타면과 파스타 소스 합쳐서 4400원 등등이에요. 장 보는 건 일주일에 5만 원, 한 달이면 20만 원 정도겠네요. 하지만 한인마트에 나가면 라면, 군만두, 냉동 닭발 사오느라 5만 원 넘게 더 쓰곤 해요.

다영: 집주인 아저씨께서 요리를 즐기시기도 하고, 저와 아르헨티나인 하우스메이트를 딸처럼 생각하셔서 저녁밥을 거의 매일 챙겨주세요. 추가 차지는 없어요. 저녁 시간과 메뉴를 칠판에 써놓는 센스까지!

Q. 교통비는 얼마나 쓰고 계세요? 자차 끄는 데 필요한 비용, 혹은 출근길 1회 택시비 같은 것 궁금합니다.

수민: 출퇴근을 위해 한 달에 드는 비용은 2인 자동차 보험 월 15만 원, 주유비 5~6만 원 정도 들어요. 그런데 영국에서는 차량 유지비보다 주차 비용이 더 비쌀 거예요. 아파트와 주차장을 따로 구매해야 하거든요.(눈물) 주거 비용 외에도 매달 주차장 월세가 맨체스터 기준으로 평균 30~40만 원이고, 거리 주차는 보통 한 시간에 5000원 정도예요.  전 직장이 집에서 13km 정도 떨어져 있었는데, 우버 택시 비용이 편도 35,000원 나왔고, 같은 거리를 트램이나 기차로 다니면 편도 6000원 들었어요.

미나: 저는 주로 버스를 타는데, 1년간 사용 가능한 무제한 카드를 약 50만 원 정도 주고 사서 한 달 4만 원 정도에 타고 다녀요. 무제한 카드를 사용하지 않으면 1회 버스비는 정말 비싸요. 3.5유로니까 한국 돈으로 거의 5,000원이네요. 춥지 않은 4~10월에는 20유로(약 28,000원)를 내면 공유 자전거를 탈 수 있어요.  택시는 정말 가끔 버스가 없고 밤에 늦게 들어갈 때 타는데 저희 집이 시내 중심과 1.5km 정도밖에 안 떨어져 있는데도 한 번 타면 18유로(25,000원) 정도 나와요. 타자마자 내리는 것 같은데 너무 비싸지 않나요? 그래서 회사 용무로 비용 처리가 될 때만 택시를 타요.

다영: 대중교통이 발달하지 않은 동네라 자가용으로 이동하고요, 한 번 주유 시 30L에 60호주달러(약 53,000원) 정도 쓴 것 같아요. 보통 2주에 한 번 주유하니까 크게 부담이 되진 않습니다. 특별한 일이 있지 않은 이상 굳이 다른 마을로 나가지 않거든요.

Q. 세 분 모두 유튜브에 아팠던 에피소드가 올라와 있어 안쓰러웠어요. 한 번 아프면 얼마나 들고, 어떻게 충당하셨나요?

수민: 영국은 관광비자를 제외한 모든 비자로 무료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요. 제가 학생 비자, 워킹 비자, 배우자 비자로 모두 살아보았는데요, 비자를 신청할 때 IHS라는 보험금을 미리 내기 때문에 비자 기간 동안에는 영국의 국립 병원을 무료로 이용할 수 있어요. 대신 약을 처방받을 때 15,000원 정도 처방비를 내야 해요. 치과도 정부에서 관리하는 국립 치과라면 금액 카테고리가 3가지로 나뉘어요. 엑스레이, 스케일링을 포함한 Band1은 38,000원, 발치 등의 기본 치료는 Band2로 10만 원, 크라운 등 더 복잡한 시술을 포함한 Band3은 45만 원이에요.

국립병원, 국립치과 모두 응급 시술은 받을 수 없어요. 국립병원 의사를 만나려면 미리 등록해둔 GP앱을 통해 담당 의사를 미리 예약해야 하는데, 코로나 이후로는 일주일 뒤 의사를 예약하는 것도 힘들어요. 급할 때는 영국의 응급실인 A&E로 워크인을 하면 응급 정도에 따라 2~6시간을 기다린 뒤 당일 의사 진료를 받을 수 있습니다. 국립 치과도 예약하기가 많이 힘들어요. 저도 한 달을 기다려 시린 이를 진료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이 때문에 사립 병원을 찾는 한국 분들이 계시는데, 15분 의사 진료에만 13만 원이 청구된다고 해요. 의료 시스템은 한국이 최곱니다…

미나: 핀란드는 직장을 다니고 있으면 직장 건강보험으로 100% 치료비가 커버돼요. 그래서 대부분의 병원은 병원비 걱정없이 바로바로 예약해서 갈 수 있어요. 하지만 치과는 예외예요. 치과는 직장에서 최대 얼마 한도 내에서 보장해주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 해당이 안 돼서 본인이 부담해요. 그래서 가장 공포스러운 곳이죠. 최근에 이를 때운 부분이 떨어져서 사립 치과에 가 그 부분을 다시 메우는 데 162유로(약 20만 원) 들었어요. 충치 치료 한 것도 아니고 정말 의사 선생님을 보러 들어가서 10분 만에 하고 나온 거라 벙쪘죠. 일단 치과 선생님을 만나는 기본 단위는 10만 원 이상부터 시작한다고 보면 될 것 같아요. 응급 상황이라고 판단될 때는 공립 치과에 갈 수 있어요. 대기가 길지만 비용이 사립 치과보다는 저렴하다고 해요.

다영: 제가 중학교 때부터 가끔가다 갈비뼈 쪽에 알 수 없는 통증이 있었는데 한때는 너무 심해서 응급실까지 갔었어요. 받을 수 있는 모든 검사는 다 받았지만 원인 불명이라는 결과만 듣고 잊고 지냈는데 호주에서 갑자기 그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더니 호흡에 문제가 가는 상황까지 나타나 급하게 병원을 찾았었어요. ‘곧 나아지겠지’ 하고 며칠 버텼더니 상태가 너무 심각해져 바로 입원을 했습니다.

호주 병원은 호주의 메디케어(영주권자, 시민권자만 가질 수 있음)를 가지고 있을 시 무료예요. 하지만 저는 외국인이라서 하루에 200만 원 돈을 내며 6일을 입원해 있었네요. 정말 다행히 한국에서 들고 간 보험에서 대부분의 비용이 커버되었어요.

Q. 또 공통적으로 등장한 것은 ‘이사는 숙명’이었어요. 한국에서는 20평대에 사는 2인 가구가 포장 이사할 때 100만 원이 훌쩍 넘게 들어요. 대신 빠르고 편하죠. 영국, 핀란드, 호주는 어떤 편인가요?

수민: 보통 시간당 6~12만 원에 짐을 옮겨주는 분들을 고용할 수 있어요. 단, 한국처럼 빠르고 야무지게 해주는 포장이사는 존재하지 않아요. 그래서 보통 타도시로 이사할 때 큰 밴을 빌려 모든 짐을 구겨넣고 이동해요. 저희는 맨체스터 올 때 저희 차로 짐을 여러 차례에 걸쳐 옮겼습니다. 차가 없던 학생 시절에는 큰 캐리어 2개와 이케아 가방으로 몸을 갈아넣어 옮겼던 기억이 있네요.

미나: 아마 다른 유럽 국가도 그렇겠지만 핀란드에서 이사는 기본적으로 ‘셀프’더라구요. 회사 전체가 이사를 가거나 하는 경우는 이삿짐센터를 쓰지만 가정이 이사할 때 이삿짐센터를 많이 이용하지는 않아서 한국처럼 발달되어 있지도 않아요. 가족들이 이사하는 풍경을 보면 본인 자동차 뒤에 짐 싣는 캐리어를 연결해서 직접 싣고, 옮겨 가요. 또는 큰 차량을 렌트하거나, 회사에서 복지 차원에서 빌려주기도 하더라고요.

처음 이사할 때는 셀프로 친구들과 함께 옮겼고, 두 번째 이사할 때는 급한 상황이라 페이스북으로 일당 주고 하루 도와줄 사람을 구했어요.

다영: 저도 제 차로 다 옮겨서 이사 비용이 들지 않았어요. 들어간 비용이라면 저의 체력과 약간의 주유비 정도?

Q. 그밖에 한국이 아니라 ‘지금 여기’ 살기 때문에 돈을 더 많이 쓰는 영역과 덜 쓰는 영역이 있나요?

미나: 유튜브에서도 한국 직장생활 때와 지금 생활비 비교를 해봤는데, 식재료, 외식비, 교통비, 쇼핑, 병원비 할 것 없이 모든 영역이 다 줄었더라고요. 이곳의 라이프스타일이 영향을 많이 미치는 것 같은데요, 특히 옷을 한국에서만큼 안 사게 됐어요. 핀란드 거리를 걸어다니다 보면 뭐가 유행하는 옷인지 알 수가 없어요. 그냥 자기한테 멋진 옷, 편한 옷, 따뜻한 옷을 입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러다 보니 이미 내가 가진 옷 외에 또 옷을 사고 싶다는 욕구가 엄청 줄었어요.

다영: 돈을 더 많이 쓰는 영역은 역시나 병원비, 그리고 미용비였어요. 시골이라 마음에 드는 헤어드레서가 없어서, 그렇지 않아도 긴 머리 스스로 잘라보려고 가위를 구매해 두었답니다. 이렇게 하나둘씩 살아가는 방법을 배워가는 거죠.(웃음)

Q. 정착했다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어디론가 또 떠날 계획 중이신가요? 앞으로 삶을 꾸려갈 계획이 궁금합니다.

수민: 최근 둘만의 결혼식을 올리고 파트너와 법적으로 부부가 된 뒤에 제 인생에 새로운 챕터가 찾아온 것 같아요. 늘 어디론가 떠나 새로운 걸 하지 않으면 불안했는데 어느새 잔잔하고 조용한 하루를 기대하게 됐어요. 우리 집까지 뜯어 고치고 나니 이제 진짜 영국에 산다는 게 피부로 느껴지기도 하고요. 하지만 파트너도 저도 맨체스터에 내 집 마련을 했다고 해서 여기 정착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나’가 아니라 ‘우리’의 미래를 생각한다는 게 달라진 점이지만, 저희가 잡을 수 있는 또 다른 기회가 있다면 언제든지 떠날 준비를 할 거예요.

미나: 제가 지금 느끼는 안정감으로 말한다면 여기 핀란드에 정착했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지만 언제든 가고 싶은 곳에 갈 수 있는 가능성은 열어두고 싶어요. 해외에서 제가 해보고 싶은 것들을 다양하게 도전하고, 한국에 가서 이 경험들을 나누는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도 해봐요. 이제는 여기는 안 된다거나 여기 아니면 안 되는 게 아니라 어디에 있어도 제가 행복한 삶을 찾아나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다영: 2024년에는 대학에 진학할 예정이라서 2023년에는 다른 나라들도 다녀올 생각이에요. 제게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쓰면 잘 썼다고 소문이 날까 행복한 고민을 하고 있어요.

Q. 아끼는 사람이 “내가 살아보고 싶은 곳에 가서 살기로 했어”라고 한다면, 현실적으로 꼭 해주고 싶은 얘기가 있으신가요?

수민: 블로그, 유튜브에서 찾아본 것만으로 이민이나 유학, 해외 취업을 계획하지 말 것. 생각만 하면서 질질 끌지 말고 일단 그 나라에 직접 가서 내가 지낼 환경을 눈으로 확인할 것. 외국에도 전기장판 파니까 짐은 최대한 심플하게 챙기고 필요한 건 현지에서 해결할 것. 해외생활을 시작한 이상 한국과의 장단점 비교는 멈출 것. 한국인 커뮤니티를 멀리할 것. 세상에는 나 말고도 집 떠나온 외국인이 많으니 스스로를 이방인이라고 정의 내려 출발점을 제한하지 말 것… 이렇게 잔소리만 계속할 것 같아요.(웃음)

다영: 그저 친구의 결정을 지지해주고 싶어요. 그 장소가 위험하지 않다는 전제하에요. 이곳에서 떠나온 사람들을 많이 만나요. 아일랜드 증권가에서 일하던 친구, 칠레에서 학교 역사 선생님을 하다 온 친구, 이탈리아에서 셰프를 하다 온 친구, 아르헨티나 패션 회사에서 디자이너 일을 하다 온 친구, 대학을 다니다 전공이 자신과 맞지 않는 것 같아 휴학을 하고 온 친구… 저는 늘 사람들 이야기가 궁금하거든요.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에게 삶의 목표, 미래 계획 이야기를 물어왔고 작은 이야기들이 모여 지금의 저를 만들었어요. 어디든 가보고 싶은 곳에 가서 부딪치는 것, 잘되든 안 되든 그 과정에서 배우는 것, 그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믿어요. 저에겐 이게 가장 현실적인 이야기랍니다.

미나: 사실 최근에 제 친구가 그랬어요. 핀란드에서 사귄 친구가 여길 떠난다니 한편으로는 마음이 되게 허했는데, 친구가 느끼는 설렘과 행복을 보니 정말 100% 지지해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내가 지내던 곳을 떠나는 게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소중한 사람들이랑 멀어진다는 것인데, 몸이 멀어져도 더 가깝게 되는 사람들이 생기더라고요. 그러니 그런 걱정은 말고 꼭 그 꿈을 실현하라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한 번 사는 인생인데 내가 살아보고 싶은 곳에 가서 살아보는 거 한 번 정도는 해봐야 하지 않겠어요? 두 번 세 번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Interview・Edit 주소은 Graphic 이은호, 조수희 Photo 수민, 미나, 다영 제공

– 해당 콘텐츠는 2022. 12. 14.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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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질문들

세상의 중요한 발견은 일상의 사소한 질문에서 태어납니다. 작고 익숙해서 지나칠 뻔한, 그러나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를 조명하며 금융과 삶의 접점을 넓혀갑니다. 계절마다 주제를 선정해 금융 관점에서 풀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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