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팔러 나섰던 ‘파친코’ 선자는 끝내 행복해졌을까?

김치 팔러 나섰던 ‘파친코’ 선자는 끝내 행복해졌을까?

by 사소한 질문들

소설가 김영하가 말했습니다. 사람들은 타인을 하나의 이야기로 받아들인다고요.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떤 이야기를 가진 인간을 사랑하게 될까요? 실패하고 갈등하고 무지하며 여러 시련을 겪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없이 분투하는 이를 사랑합니다. 그런 사람을 매력적으로 여기고 절로 응원하게 된대요. 재미난 이야기 속 흥미로운 인물처럼요. 파친코

그의 장편 소설 ⟪검은 꽃⟫의 주인공 김이정이 그렇습니다. 망해가는 대한제국을 떠나 멕시코 농장에 내던져진 이정의 자취를 좇다 보면, 그가 척박하고 고단한 삶을 견뎌내고 행복해지기를 바라게 됩니다. 문학과 영화·드라마 속에 고향을 떠나 낯선 땅에서 삶을 일궈가는 이방인이 종종 등장하는 것도 같은 이유일 겁니다.

<사소한 질문들> 겨울호 마지막 편은, 소설 ⟪검은 꽃⟫처럼 재외 한국인이 주인공인 소설 ⟪파친코⟫, 드라마 <더 체어>, 에세이 ⟪H마트에서 울다⟫ 등을 통해 한인 이주의 변천사를 살펴봅니다. 이들은 시대에 따라 서로 다른 모양의 삶을 살지만, 공통점이 있더군요. 닥쳐오는 시련에 당당히 응전하며 자신의 인생을 꾸려간다는 점이었습니다.

검은 꽃: 기근, 빈곤, 압정을 피해서

파친코 - 검은꽃

110여년 전 멕시코에 도착한 조선인들이 일했던 대농장 아시엔다. 노동자들이 가시가 삐쭉한 에네켄을 수확하고 있다. /사진 : 연합뉴스 헬로아카이브

누가 먹을 것을 주거든 백을 세고 먹어라. 그리고 누가 네가 가진 것을 사려고 하거든 네 머릿속에 떠오른 값의 두 배를 말해라. 그러면 누구도 너를 멸시하지 않는다. 소년은 그렇게 하려고 했지만 그럴 일이 별로 없었다. 먹을 것을 주는 이도 없었고 가진 것을 사겠다는 자도 없었다. 선교사가 눈을 크게 떴다. 배고프지 않으냐? 소년의 입이 달싹거렸다. 여든둘, 여든셋, 여든넷. 더이상은 무리였다. 소년은 향긋한 건포도 머핀을 집어들고 입안에 쑤셔넣기 시작했다.

– 김영하, ⟪검은 꽃⟫, 문학동네

소년 이정은 부모 없이 떠돌던 그를 거둬준 장돌뱅이의 가르침을 기억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다 1905년 대륙식민회사라는 곳에서 신문에 낸 광고를 발견해요. 이름조차 낯선 멕시코에 일터와 돈과 따듯한 밥이 기다리고 있다는 내용이었어요. 기독학교의 선교사는 이정에게 ‘멕시코에서 돈을 벌어 미국으로 가라’고 조언합니다. 이정은 제물포로 달려가 긴 줄의 끄트머리에 서요.

소설 ⟪검은 꽃⟫은 구한 말 이정과 함께 멕시코 유카탄 반도로 건너간 조선인들의 이야기를 다뤄요. 이주를 알선한 대륙식민회사의 브로커는 농장에서 일하면 ‘장정에겐 하루에 35센타보, 큰 아이에겐 25센타보, 어린 아이에겐 12센타보’를 준다고 말했죠. 그런데 한 사람이 하루 먹거리를 사는데만 25센타보가 필요했어요. 하루 10시간 넘게 가시에 찔려가며 에네켄을 수확하고 번 돈을 모으기는커녕 먹고 살기에도 빠듯했던 거예요. 노예 신세로 전락한 것은 순식간이었어요.

몸이 아파 외상을 지거나, 식구가 죽어 장례를 치르는 경우, 예기치 않은 다툼에 휘말릴 때 등 수많은 이유로 조선인들은 농장주에게 돈을 빌려 씁니다. 계약 기간 4년이 끝나도록 돈을 모을 수 없었죠. 기록에 따르면 멕시코 에네켄 농장에 팔려간 조선인 1033명 중 140명은 농장을 탈출했고 49명은 세상을 떠났어요. 그 사이 일제에 강제 병합된 조선으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됐어요. 나머지 한인들 가운데 290명은 1921년 3월 쿠바로 떠납니다.

재외 한인의 역사는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1860년대부터 한일 강제 합병이 일어난 1910년까지, 대한제국의 농민, 노동자들은 기근과 빈곤, 압제를 피해 국경을 넘었어요. 중국 만주와 러시아 연해주 등에서 불법으로 농지를 개간하는 이들도 있었고요. 미국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으로의 이주도 수십차례에 걸쳐 이루어졌습니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이들은 후손들에게 한글을 가르쳤고 고국의 독립 운동을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파친코 : 차분하고 꿋꿋하게

파친코 - 드라마

드라마 <파친코> 속 선자와 노아를 품에 안은 이삭. / 사진 : AppleTV+

한인 이주의 두 번째 시기는 일제 시대, 즉 1910년부터 1945년까지입니다. 전세계의 주목을 받은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가 바로 이 시대를 배경으로 이야기를 시작해요. 부산에 살던 선자는 목사 이삭과 혼인해 일본 오사카로 건너 갑니다.

선자는 역경을 건널수록 더 차분하고 꿋꿋해지는 인물입니다. 남편이 정치범으로 투옥된 뒤, 선자는 장사를 시작해요. 요셉의 아내 경희와 같이 담근 김치를 수레에 싣고 시장으로 갑니다. 집에서 만든 파전과 초밥, 미소된장 등을 파는 조선인 행상이 즐비한 곳이죠. 그러나 이들은 일본인이 싫어하는 김치 냄새를 풍기는 선자를 반기지 않아요. 고기 냄새가 코를 찌르는 도축업자 옆에 가서야 자리를 잡을 수 있었죠.

선자는 옷소매로 얼굴을 훔치며 고향에서 제일 장사를 잘하는 시장 아주머니들이 어떻게 했는지 기억하려고 애썼다. “김치! 맛있는 김치! 이 맛있는 김치를 먹어보시고 이제 다시는 집에서 김치를 담그지 마이소!” 선자가 외쳤다.

– 이민진, ⟪파친코⟫, 인플루엔셜

소설을 각색한 애플TV+의 드라마 <파친코>의 마지막회 역시 선자가 김치를 팔기 시작하는 장면으로 끝납니다. 그날 저녁, 선자는 김치 항아리가 바닥을 드러낼 때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요. 그리고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얻어요. 선자와 경희의 김치는 오사카에서 가장 맛있는 김치로 소문 납니다. 한 주에 10~12엔씩 꾸준히 벌기 시작하고요. 급기야 큰 갈비집을 운영하는 창호로부터 주 70엔씩 줄테니 식당 전속으로 김치를 담가달라는 주문을 받기에 이릅니다. 두 여자는 그렇게 아들들을 키워냅니다.

일제 치하, 집도 땅도 잃은 조선인들은 일본으로 이주했습니다. 처음에는 많은 조선인이 일자리를 찾아 스스로 도일했어요. 이후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벌어지자 더 많은 이들이 광산과 전쟁터에 강제로 끌려갔지요. 일본이 항복을 선언한 1945년 8월, 재일 한인의 수가 230만명에 이르렀다고 하니 그 규모가 엄청났습니다.

파친코 - 파친코

일본 도쿄의 몬젠나카초에 있는 파친코 내부 모습 / 사진 : 연합뉴스 헬로아카이브

한편, 선자의 큰아들 노아는 조용하고 묵묵하게 공부합니다. 일본인들을 제치고 도쿄의 와세다대학에 들어가죠. 반면 둘째 아들 모자수는 ‘냄새나는 조선인’이라는 모욕을 당하면 참지 않고 주먹을 휘두르는 아이입니다. 그러다 파친코 사장의 눈에 들어 일자리를 얻어요.

모자수는 토요일 저녁마다 어머니에게 두둑한 봉급 봉투를 건네면서 뿌듯해했다. 어머니는 모자수의 용돈을 올려주려 했지만, 모자수는 버스비 외에는 받지 않았다. 파친코 장에 있는 직원 식당에서 밥을 먹었고 고로가 일할 때 입는 옷을 사주었기 때문에 돈이 별로 필요하지 않았다. 모자수는 일주일 내내 일했고 집에서 잤다. 일이 너무 늦게 끝날 때면 파친코 게임장에 있는 직원 숙소에서 잤다.

– 이민진, ⟪파친코⟫

모자수는 후일 파친코를 물려받아 사장이 됩니다. 모자수는 많은 돈을 벌었고, 자신의 아들 솔로몬을 미국으로 유학 보내죠. 파친코는 일종의 사행성 오락실인데요. 전후 일본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하나의 산업으로 성장했어요. 버블이 한창이던 1990년대 중반에는 산업 규모가 약 300조원에 달했다고 해요.

수만개에 이르는 파친코 업장의 70~80%를 지금도 모자수 같은 재일교포와 그 후손들이 운영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요. ‘마루한’의 한창우 회장처럼요. 그는 독학으로 도쿄 호세이대 경제학과에 들어간 수재였지만 받아주는 일본 회사가 없었어요. 결국 매형이 경영하던 파친코를 이어받아 일본 최대 파친코 기업으로 키워냈어요. 해방 이후 일본에 남은 한인들은 제대로 된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기 때문에, 위험을 무릅쓰고 사행성 짙은 파친코 업계에 뛰어든 것이죠.

1989년 솔로몬은 미국에서 만난 여자친구 피비와 함께 일본으로 돌아옵니다. 피비는 한국어에 익숙한 재미교포 2세입니다. 솔로몬은 영어와 일본어가 유창하지만 한국어엔 서툴지요. 풍파를 견뎌 내고 살아 남아 할머니가 된 선자는 피비의 어깨를 꼭 감싸며 한국말로 이야기합니다. “네가 와서 참말로 좋다.”

더 체어: 이민 2세가 마주한 삶

더 체어

/ 사진 : NETFLIX

해방 직후에는 수천명의 전쟁 고아, 미군과 결혼한 여성, 혼혈아 등이 미국, 캐나다 등으로 이주했습니다. 그 뒤로는 비로소 ‘정착’을 위한 이민이 시작되었죠. 북미 뿐 아니라 남미, 유럽 등 이주 대상 국가도 다양해졌어요. 유럽에서는 1960년대 독일로 파견된 간호사와 광부들, 유학생, 주재원 등이 한인 사회를 형성했고요. 1970~1980년대 미국의 동포들은 세탁소, 편의점, 주유소 등을 운영하며 근면성실을 자랑했습니다. 시간이 흘러 어느덧 재외교포 2세, 3세도 사회의 어엿한 일원으로 성장했습니다.

이제 작품 속 한국인들은 더이상 편의점 주인에만 머무르지 않아요. 법조인, 금융인, 정치인, 사업가, 예술가 등 역할이 무궁무진하지요.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체어(the Chair)’에는 대학 교수 김지윤이 주인공으로 등장해요. 이민 1.5세나 2세쯤 되는 그녀는 막 미국 펨브로크 대학 최초의 여성 영문학과장으로 승진한 참입니다. 최초의 유색인종 학과장이기도 하고요.

유서 깊은 명문대 영문학과장이라니! 재외 한인이 100여년 간 겪어온 고난의 역사는 막을 내리고, 자유롭게 꿈을 펼치는 시대가 찾아온 듯 보입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치 않지요.

“나도 노력 중이야. 내가 맡은 게 영문학과가 아니라 째깍거리는 시한폭탄 같아. 저들은 여자가 들고 있을 때 폭발하길 바라겠지. 빌과 나는 비슷한 시기에 이 학교 강단에 섰는데 엘리엇은 우리를 마주칠 때마다 빌의 등을 두드리고 저녁 식사에 초대했어. 난 안보이나 싶더라.”

–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더 체어> 4화

영문학과는 비인기 학과로 전락한지 오래죠. 지윤은 젊고 실력 있는 흑인 여성 야즈를 종신 교수로 임명하고 싶지만 남성 노교수 엘리엇의 반대에 부딪칩니다. 지윤이 학과장이 된 것도 어쩌면 ‘소수인종 여성’이라는 상징적인 이유가 작용했는지도 모릅니다. 학장은 연봉은 많이 받는데 수강생은 적은 원로 교수들을 구조조정하라는 압박을 가해오고요. 아내와 사별한 동료 교수 빌이 사건사고를 벌일 때마다 그 뒷수습도 지윤의 몫입니다. 나이 많은 여성 교수 조앤은 사무실에서 와이파이가 잡히지 않는다며 ‘힘 좀 써달라’고 지윤을 찾아와요.

지윤은 모두의 입장을 고려하고 중재하려고 노력하지만, 마음처럼 되지 않습니다. 야즈는 지윤에게 말합니다. “칼자루를 쥐고 흔들어야죠. 착한 사람 놀이(playing nice)에 전전긍긍하지 말구요.”

H마트에서 울다: 끝내 반짝이는

이민 2세들은 부모 세대와는 다른 고민을 마주하고 살아갑니다. 부모는 낯선 나라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면서도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을 결코 잊지 않았어요. 반면, 자녀들은 마음 한구석에 ‘나는 누구인가’하는 질문을 품고 살아가지요. ‘살아남기’를 넘어, 타인과 관계를 맺고, 자아를 실현하고, 새로운 성취를 향해 파도를 넘어야 합니다.

⟪H마트에서 울다⟫라는 에세이를 펴낸 미셸 자우너는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어요. 그리고 주변 사람들로부터 지겹도록 같은 질문을 듣습니다. “중국인이니?” “아니.” “그럼 넌 뭐야?” 미셸은 자기 자신이 한국에도 미국에도 제대로 속하지 않는 것 같은 공허를 느끼며 청소년기를 보냅니다. 그러다 음악과 사랑에 빠지게 되죠. 음악은 미셸의 ‘실존적 공포에 유일한 위안’이 되어줍니다.

“우리는 나머지 점심시간에 화이트 스트라이프스의 <우린 친구가 될거야>와 벨벳 언더그라운드의 <시간이 흘러>의 가사를 주거니 받거니 했고, 그 시간은 내 청소년기 인생에서 가장 낭만적인 기적처럼 느껴졌다.”

– 미셸 자우너, ⟪H마트에서 울다⟫, 문학동네

h마트

미셸 자우너가 공연하는 모습. / 사진 : David Lee

이 책은 세상을 떠난 엄마를 그리는 마음을 절절히 담은 에세이로 알려졌어요. 하지만 그런 한편 젊은 예술가의 성장기이기도 합니다. 흔한 부모의 반대, 기약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을 가감없이 그려내죠. 미셸은 투어 공연을 위해 악착같이 돈을 모아요. 일주일에 3일은 만화 가게에서 일하고, 나머지 4일은 영화사에서 마케팅 보조를 해요. 주말엔 술집 아르바이트도 하고요. 일이 끝나면 친구 집 소파에 구겨져 잠들기 일쑤입니다.

꼭 나처럼 생긴 가수 캐런 오는 내가 숭배한 음악 세계의 첫 아이콘이었다. 캐런 오는 절반은 한국인 절반은 백인으로, 유순한 아시아인이라는 고정관념을 깡그리 잊게 만드는 독보적인 쇼맨십을 선보였다. (중략) 처음 든 생각은 내가 저렇게 할 수 있을까였고, 두번째로 든 생각은 이런 걸 하는 아시아 여자가 이미 있으니 내가 설 자리는 이제 없겠다는 것이었다.

– 미셸 자우너, ⟪H마트에서 울다

미셸은 또한 미국에서 아시아계 혼혈 여성 예술가라는 여러 겹의 소수자로 살아가면서 맞닥뜨리는 혼란을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음악가가 되려는 헛된 노력’을 그만두고 광고 회사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해보려 애쓰기도 하고요.

그러다 ‘재패니즈 브렉퍼스트’라는 제목으로 발표한 미셸의 미니 음반이 뒤늦게 주목받아요. 오래 전 엄마가 찍은 서울 사진을 커버로 쓴 앨범이었죠. “자신을 닮은 예술가를 찾지 못한 혼혈 아이와 아시아계 미국인, 부모님을 잃은 아이들”이 미셸의 공연을 찾습니다. 그들은 미셸의 노래가 얼마나 큰 도움이 됐는지, 어떤 의미로 다가왔는지 말해줘요. 미셸은 끝내 반짝입니다. 그리고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나는 엄마가 김치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는 절대 사랑에 빠지지 말라고 주야장천 말했던 것을 떠올렸다. 너한테서 항상 김치 냄새가 날거야. 그 냄새가 네 땀구멍으로 배어나올 테니까. 엄마는 자기만의 방식으로 말했다.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이다.”

– 미셸 자우너, ⟪H마트에서 울다



Writer 정경화 Graphic 이은호 조수희

<참고 자료>

  1. 국가기록원 ‘재외한인의 역사’
  2. 김영하, 검은 꽃⟫, 문학동네
  3. 이민진, ⟪파친코, 인플루엔셜
  4. <파친코>, AppleTV+
  5. <더체어>, Netflix
  6. 미셸 자우너, ⟪H마트에서 울다, 문학동네

– 해당 콘텐츠는 2022. 12. 13.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의견 남기기
사소한 질문들

세상의 중요한 발견은 일상의 사소한 질문에서 태어납니다. 작고 익숙해서 지나칠 뻔한, 그러나 귀 기울여야 할 이야기를 조명하며 금융과 삶의 접점을 넓혀갑니다. 계절마다 주제를 선정해 금융 관점에서 풀어봅니다.

필진 글 더보기

사소한 질문들 겨울호 – 이방인으로 살아남기 다음 글

추천 컨텐츠

아티클

시리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