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위에서 여유롭게 쉬고 있는 노인

은퇴 계획의 큰 그림을 그려보는 법

by 영주 닐슨

은퇴가 코앞에 닥치지 않았더라도 사람들은 노후생활비가 얼마나 필요한지 궁금해한다. 일하러 나가기 싫을 때, 앞으로 몇년이나 더 일할 수 있을지 막막할 때면 그 궁금증은 더 커지지만, “매달 500만 원은 필요하다", “현금자산이 10억 원은 있어야 한다" 등 여러 매체가 제시하는 숫자를 보다 보면 해결하려는 의지가 이내 사그라들고 만다. 내 상황을 기준으로 도출된 숫자가 아니라서 막연하기 때문이다.

노후생활비 10억 원이라는 계산은 어디서 나왔을까?

당장 손에 쥘 수 있는 현금자산이 1억 원도 없고, 내 집 마련을 하지 못했거나 했어도 대출금이 잔뜩인 우리가 “노후 준비 자금은 10억 원"이라는 말 앞에 무기력해지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정말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큰 금액을 통장에 넣어두고 은퇴해야 할까? 그것이 가능할까? 전문가마다 이에 대한 의견은 갈리지만, 대체로 필요한 총액만 강조하는 것은 사람들의 불안감을 자극할 뿐이라는 데에 입을 모은다.

노후 이야기를 할 때 10억 원이라는 금액이 언급되는 배경을 생각해보자. 생활비, 그리고 노년기에 많이 들어가는 의료비 등을 합쳐서 매월 500만 원 정도를 준비하려면 1년에 6,000만 원이 필요하다. 60~65세 은퇴 후 평균 기대수명(2022년 기준)인 83세까지 산다고 가정하면 대략 20년 동안 10억 원 이상의 비용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이 계산은 지나치게 단순화된 면이 있고, 숫자를 내세워 여러 금융상품에 가입하도록 유인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지금부터는 실제로 필요한 돈을 따져보고, 목표금액과 현재 자산 사이의 간극을 어떻게 채워가면 좋을지 알아보려고 한다.

평균치 살펴보며 감 잡기

지금 쓰고 있는 식비, 통신비, 교통비, 보험료 등 한 달에 고정적으로 나가는 비용을 계산하고, 그다음으로는 비고정 지출을 살핀다. 만약 현재 월세 때문에 고정비가 많이 나간다면 은퇴할 즈음에는 내 집 마련에 성공해 월세 비용은 계산에서 빼겠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의료비나 외식비 또한 지금보다 줄어들 것을 기대할 수 있다. 이렇게 항목별로 재보아도 노후생활비 예측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참고할 수 있는 조사 결과들이 있다.

국민연금공단이 2023년 1월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1인 가구의 적정 노후생활비는 월 평균 177만 3,000원, 부부 등 2인 가구는 277만 원이라고 한다. 여기서 적정 생활비는 특별한 질병 없이 건강한 노년을 가정할 때 흡족하게 표준적인 생활을 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뜻한다. 국민연금공단에서 측정한 최소 생활비는 1인 가구 124만 3,000원, 2인 가구 198만 7,000원이다. 한편 통계청의 2022년 가계금융복지조사에서는 60세 이상 전국 은퇴가정의 평균 생활비가 월 170만 원이라는 결과를 내놓았다.

한 가지 더 고려해볼 수 있는 것은, 일반적으로 노후생활비를 계산할 때 현재 생활비의 70~75%를 잡는다는 것이다. 보통 은퇴 이후에는 5%가량 소비가 줄어들고, 돈을 버는 동안은 계속 저축을 하는데 은퇴 이후에는 하지 않기 때문에 평균적으로 8%를 제외한다. 또한 세금 역시 줄어드는데 종합해보면 대개 12% 정도 준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보다 나가는 돈이 25~30%는 줄어들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이다.

이렇게 계산해봐도 아주 정확한 숫자를 예측하기는 어렵다. 인생은 언제나 예상 밖의 변수가 생기기 때문에 어차피 더 쓰거나 덜 쓰게 될 거라는 생각도 들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대략 필요한 금액을 가늠하고 그를 충당하기 위해 어떻게 현금 흐름을 만들어둘 것인지 머릿속에 구조화해두는 일이다. 그러므로 당장 월 생활비를 모르겠다면 목표 은퇴자금을 가구 형태에 따라 평균치인 월 177만 원 혹은 277만 원을 기준으로 잡고 시작해도 좋다.

안심하고 은퇴하기 위한 기본기 다지기

1화에서 함께 알아본 3단계 연금 구조를 이해한 뒤, 다시 4단계에 걸쳐 나의 현황과 미래를 그려두면 더욱 수월하게 노후 대비의 틀을 잡을 수 있다.

1단계: 은퇴 이후 적정생활비 계산하기

돈이 얼마나 필요한지 모른 채 걱정부터 하지 말자. 앞서 살펴본 것처럼 카테고리별로 따져 매월 필요한 생활비, 은퇴 후 줄어들 비중, 통계가 알려주는 평균 노후생활비를 고려해 나의 적정생활비를 설정해둔다. 이것이 ‘은퇴자금으로 모을 목표치'이며, 추후 바뀌는 사항이 있으면 업데이트하면 된다.

2단계: 실제로 내가 은퇴 후 받을 수 있는 금액 확인하기

지금 하고 있는 대로 준비한다면 은퇴 시점에 내 자산이 얼마나 되는지 종류별로 살펴본다. 적금과 투자금, 국민연금·퇴직연금·개인연금 수령액✱, 투자 수익률을 고려한 배당금, 수익형 부동산에서 나오는 월세 등 예상되는 현금 파이프라인까지 따져보는 것이다. ✱토스 ‘내 연금' 등 여러 금융서비스에서 예상 수령액을 확인할 수 있다.

3단계: 2단계에서 나온 숫자로 내가 은퇴 이후에 어떻게 돈을 나눠 쓸지 계산하기

2단계에서 계산해본 숫자를 토대로 지금대로라면 노후에 월 얼마를 쓸 수 있는지도 계산해보자. 완벽하지는 않지만 대략 가늠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은퇴 시점에 가지고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금액의 3~5%를 은퇴 첫해에 쓴다고 가정해보는 것이다. 보수적으로 3%를 쓰겠다고 계획하고 전체 현금자산이 3억 원이라면 연간 900만 원, 월 75만 원을 쓸 수 있다. 이때는 대부분 1단계에서 설정한 목표 생활비보다 낮을 확률이 높다.

4단계: 간극 메우는 방법 파악하기

1단계와 3단계에서 계산한 금액의 차이는 ‘나의 노후 대비에 있어서 부족한 돈'이다. 이제 내가 확보하겠다고 생각하는 월 생활비와 지금 상태로 쓸 수 있는 월 생활비 사이의 간극을 메워 나가는 일만 남았다. 이때 세울 수 있는 대책은 은퇴 시기를 늦춰 일을 더 오래해서 돈을 추가로 버는 것, 또 하나는 지금부터 내가 직접 운용할 수 있는 개인연금의 납입금을 늘리고 수익률을 높이는 것이다.

여기까지 계산하면서 이런 질문을 던지는 독자도 있을 수 있다. 3단계의 계산대로라면 가지고 있는 자산을 쓸 계획만 하는 것인데, 그럼 은퇴 후에는 자산의 안정성을 위해 투자를 멈춰야 할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앞으로 이 시리즈를 통해 살펴볼 TDF의 포트폴리오 구성에서 찾을 수 있다.

국민연금과 퇴직연금만 잘 준비해도 은퇴 준비 절반은 성공

사람들은 흔히 공무원연금을 부러워한다. 실제로 공무원연금은 납입 비율이 높다. 국민연금은 개인이 소득의 9%를 내거나, 직장인의 경우 근로자가 4.5%, 회사가 4.5%를 부담해 총 9%를 내게 된다. 공무원연금은 본인이 9%, 국가가 9%를 납부해 소득의 총 18%를 내게 된다. 비율이 국민연금의 두 배인 셈이다.

하지만 여기에 퇴직연금을 더하면 결과는 달라진다. 보통 직장인의 경우 퇴직연금으로는 8.3% 정도를 납부하므로 국민연금과 합하면 17.3%가 되어 공무원연금과 0.7%의 차이를 보인다. 사실상 소득 대비 거의 비슷한 비율을 연금으로 넣는 것이다.

그런데 왜 공무원보다 직장인이 늘 노후를 더 불안해할까? 그것은 우리에게 든든한 노후자금이 되어줄 퇴직연금을 이직할 때 해지해 써버리거나, 전세자금 및 주택 구입 등의 비용으로 중간 정산을 받아 쓰는 경우가 많아서 은퇴 이후에는 손에 잡히는 돈이 없기 때문이다. 공무원은 재직하는 한 연금을 절대 해지하지 못하니까 나중에 큰 금액으로 돌려받을 뿐이다. 애초에 주어진 조건은 똑같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럼 공무원연금처럼 절대 해지하지 못하는 국민연금은 어떨까. 국민연금은 소득대체율 40%를 목표로 한다. 즉 100만 원을 벌던 사람이라면 은퇴 시 최소 40만 원의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준다.✱ 그런데 여기에는 한 가지 가정이 붙는다. 바로 40년 동안 꾸준히 납입해야 소득대체율을 충족시켜준다는 점이다. 다른 선진국의 경우 평균 근로기간이 40~45년인데 비해 우리나라는 평균 근로기간이 30~35년으로 국민연금에서 제시하는 40년을 채우지 못한다. 일을 시작하는 나이가 점점 늦어지고 있고, 은퇴는 빠르다 보니 국민연금만으로 은퇴 준비하기가 더더욱 어려운 것이다. ✱소득대체율은 생애평균소득 대비 노후에 받을 수 있는 연금 수령액의 비율을 뜻한다. 소득대체율이 60%이면 연금액이 연금 가입기간 평균 소득의 60% 된다는 의미다. OECD는 안정적인 노후를 위한 적정 소득대체율을 65∼75%로 권고하고 있고, 우리나라 국민연금 또한 소득대체율 높이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고 있다.

지금 벌고 있는 돈을 노후의 나에게 보내는 일

결국 국민연금과 퇴직연금으로 안전하게 노후자금을 마련하려면 근로기간을 최소 40년 채워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25세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면 65세, 30세에 사회생활을 시작했다면 무려 70세에나 은퇴할 수 있다. 실제로 한국의 2023년 60대 고용률은 58%를 넘기며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10명 가운데 6명이 근로를 지속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공적연금이 변화해오는 동안 현재 60대 이상인 국민에게는 소득대체율이 제대로 충족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분명한 것은 60대가 된다고 해서 사회활동을 그만두는 비율이 자의든 타의든 적다는 것이다. 60세에 은퇴하고 30~40년을 더 안정적으로 살아가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복지국가라고 일컬어지는 노르웨이는 대부분의 국민이 40년 동안 국민연금을 납부한다. 때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납부 비율도 한국의 9%보다 훨씬 높은 20%에 달한다. 그렇기에 은퇴 이후 삶은 풍요롭다. 지금 벌어들이는 소득에서 꽤 많은 비중을 노후의 나에게 미리 보내둬야 가능한 일이다. 다음 편부터는 노후의 나에게 보내두는 돈을 어떻게 굴려서 더 안정적으로 은퇴자금을 확보해나갈지 구체적인 방법을 알아보자.

✱이 콘텐츠는 은퇴자금 관리를 돕는 글라이드와 함께 만듭니다. 글라이드는 퇴직연금 투자, 관리, 인출 플랜 솔루션을 제공하는 아이랩의 소프트웨어 서비스입니다.


Edit 주소은, 김현미(아이랩) Graphic 조수희 해당 콘텐츠는 2024.05.03.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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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주 닐슨

모두가 인생 설계를 통해 안정적인 은퇴를 맞이하도록 투자, 관리, 인출 플랜을 돕는 아이랩을 설립하고 '글라이드(www.glide-path.org)'라는 소프트웨어 서비스를 만들었다. 미국에서 인공지능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고 미국 월가의 JP모건, 시티그룹 등에서 15년 이상 알고리즘 트레이딩 헤드와 헤지펀드 최고투자책임자로 일했다. 현재 성균관대학교 글로벌 경영전문대학원의 재무 분야 교수이자, AI MBA 학과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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