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약 당첨

20대 무지성 청약 당첨자의 영끌 생존기

by 김가영

27살, 주택 청약에 당첨됐다. 평균 경쟁률은 약 30:1. 모델하우스 직원의 말에 따르면 난 그 단지의 비공식적 최연소 당첨자였다.

아직 20대인데, 청약 당첨이 가능해?

당첨 사실을 주변에 알리자 가장 많이 돌아온 말이었다. 놀라워 하는 반응 중에는 그쪽 건설사에 무슨 빽(?) 있는 게 아니냐는 말도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내 스펙은 20대, 미혼, 무자녀, 게다가 청약 점수는 단 9점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청약 점수는 84점이 만점인데, 가점제는 무주택 기간, 청약통장 유지 기간, 부양 가족 수 등 다양한 조건을 따져서 점수를 매기고 높은 순으로 당첨자를 선발한다. 나는 청약통장 유지 기간도 짧고, 독립해서 부양 가족도 없어서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려웠다. 무엇보다 무주택 기간이 만 30세부터 산정되기 때문에 해당 항목의 점수는 아예 0점이었다.

가점제에서 조건상 최약체인 내가 청약을 뚫은 방법은 바로 ‘일반 공급 추첨제’, 일명 ‘뺑뺑이’였다. 높은 점수를 받기 까다로운 가점제와 다르게 추첨제는 당첨자를 무작위로 뽑는다. 한마디로 ‘운빨’이 전부다.

더는 이렇게 못 살아

청약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다소 서글프다. 직장과 집의 거리가 먼 탓에 취업 후 곧장 타지에서 자취 생활을 시작했다. 하지만 홀로서기는 쉽지 않았다. 집세도 부담이었지만, 툭 하면 집에 크고 작은 문제가 생겨서 집 주인과의 갈등이 다반사라 여러모로 스트레스가 커졌다.

혼자 사는 데다 퇴근이 늦을 때가 잦아서 집을 고를 때 건물 내외 CCTV 유무를 제일 중요하게 살폈는데, 공교롭게도 두 번째로 구한 집은 내가 이사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CCTV가 고장나 버렸다. 집주인과 가족 관계라는 빌라 관리인에게 몇 번이고 전화했지만 연락은 영 닿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복도 비상등도 고장나서 밤늦게 집에 들어갈 때마다 담력 훈련하는 기분이었다.

회사 동료들에게 이 일을 털어놓자, 내가 사회초년생이라 집주인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걸 수도 있다며 부모님께 연락해달라 부탁해보라는 현실적인(?) 조언이 나왔다. 나도 법적으로 엄연히 성인인데, 여기서 얼마나 더 어른이 되어야만 하는 걸까. 내 명의로 대출받아 정당하게 계약한 집인데, 왜 문제가 생길 때마다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떠안아야 하는 걸까.

이런 상황이 반복될수록 정신적 피로는 켜켜이 쌓여갔다. 게다가 빌라 전세 사기에 대한 뉴스도 자주 나오니 늘 막연한 불안을 안고 살아야 했고, 당장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주기적으로 등기부등본을 떼어보며 혹시 집에 문제가 없는지 확인하는 것 뿐이었다. 내가 살고 있는 집을 담보로 집주인이 갑자기 대출을 받을 수 있다는 불안감에 두려웠고, 혹시라도 그렇게 진 빚 때문에 제때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할까봐 겁이 났다.

그러던 어느 날, 야근중이었는데 빌라 관리인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30X호 맞으시죠? 빨리 좀 집에 와주셔야겠어요.’

급하게 집으로 달려간 난 입을 다물 수 없는 상황을 목격했다. 워터파크 마냥 거실 바닥에 물이 찰박이고 있었고, 천장에선 실시간으로 거센 물줄기가 쏟아내렸다. 4층에서 시작한 물 폭탄 때문에 3층 우리 집은 물론 2층 집까지 피해를 본 심각한 누수였다.

당시 누수 현장. 정신없는 현장이었지만 다시는 경험하지 않겠단 결심으로 사진을 남겼다.

난데없이 집이 물바다가 된 것도 황당한데, 응당한 보상도 받지 못했다. 아끼는 가전, 가구, 물건을 전부 못 쓰게 됐는데 집주인은 보상에 한없이 소극적이었다. 뒤늦게 낀 보험사도 손해 안 보려 애쓰는 건 마찬가지였다. 집주인이 임대인 배상책임보험에 가입하지 않아서 어쩔 수가 없단다. 집주인을 상대로 민사 소송을 거는 방법도 있지만 막상 실행하려니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 지난한 노력 끝에 보상받은 건 한 달 전에 산 고양이 캣타워값 삼십만 원이 전부였다.

집 계약 기간이 남았고 세 들어 사는 입장이니 자잘한 문제는 웬만하면 참고 살려 했는데, 누수 사건은 도무지 참을 수가 없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동안 참았던 서러움이 폭발했다. 아무리 세입자라 해도 난 이 집에서 살 권리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했는데, 정작 내 재산을 하나도 지킬 수 없다니. 또 이런 일이 발생한다면 그때도 속수무책으로 피해를 봐야 한단 말인가? 뒷수습 해준다면서 아직 다 마르지도 않는 천장에 새 벽지를 대충 붙이고 가는, 집주인이 고용한 야매 도배업자의 행동을 보고 집에 남은 정이 모조리 떨어졌다.

청약 접수, 이렇게 간단하다고? 아니 진짜 당첨됐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다행히 지금은 주택 청약 특별 공급 제도(일명 특공)이 개편돼서 1인 가구도 생애 최초 전형에 지원할 수 있지만, 이전에는 특공 지원 자격을 기혼 혹은 유자녀 가구로 한정했기 때문에 20대 미혼 청년의 당첨 확률은 거의 없다시피 한 수준이었다.

일반 공급 추첨제가 바늘 구멍 수준인 건 알지만 내가 시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고, 연금복권 사는 심정으로 생애 처음 청약홈 홈페이지에 접속했다. 그만큼 절박했다.

때마침 거주하는 시의 청약 공고가 떠 있었다. 특별공급제도의 다자녀, 신혼부부 전형 등이 아닌 일반공급 추첨제라서 그런가. 접수 절차는 생각보다 훨씬 간단했다. 당장 제출해야 하는 서류도 없고 무주택자가 맞는지, 세대주인지 등 몇 가지 항목만 체크하면 됐다. 매주 사는 연금복권 번호 여섯 자리를 고민하는 것보다도 더 빠르게 첫 청약 신청이 끝났다.

‘[Web발신] 김*영님 XX아파트 X동 X호에 당첨되셨습니다.(청약Home>당첨조회)’

몇 주 뒤 아침 8시, 청약 당첨 소식을 알리는 문자 메시지가 날아왔다. 잠결에 스팸 문자인가 싶어 무시했다. 30분 뒤 출근 준비를 하면서 다시 보니 진짜였다. 청약홈에서 보낸 문자가 맞았다. 또 몇 시간 뒤 은행에서는 축하 문자가 왔다. 청약에 당첨됐으니 기존 청약통장은 앞으로 쓸 수 없다는 친절한 설명과 함께였다.

신기하게도 반려묘 까꿍이에게 새 숨숨집을 사준 다음날에 청약이 당첨됐다. 고양이의 보은인걸까?

모델하우스 방문 일정을 예약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찾아갔다. 일반공급 1순위 당첨자 증빙 서류를 내기 위해서였다. 청약 신청 시 서류 제출 과정이 없어서 의아했는데, 원래 당첨된 후에 증빙을 한단다. (*신청 시 체크한 것과 실제 상황이 다르면 당첨 자격이 박탈되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 무주택자가 맞는지, 세대주인지, 해당 지역에 n년 이상 거주했는지 증명하는 서류를 제출하는 것으로 일반공급 추첨제 당첨자의 증빙 의무는 끝났다.

다음엔 아파트 옵션 계약을 할 차례였다. 나는 인테리어에 무지한 데다 미적 감각도 없어서, 옵션을 고르는 게 너무 어려웠다. 근 몇 년 안에 집을 살 것이란 생각도 못 했고, 부엌 싱크대를 어떤 제품으로 고르는 게 좋을지에 관한 살림 통찰력도 없었다. 안방 바닥 자재부터 부엌 수전, 거실 천장 모양까지. 직접 경험해보니 아파트 계약 옵션은 게임 캐릭터를 꾸미는 것만큼 자유도가 높았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모델하우스에 전시된 것과 똑같이 하고 싶은데 돈이 문제였다. 그래서 시스템 에어컨과 붙박이장 등 최소한의 옵션만 추가하기로 했다. 나름 고민을 많이 하고 결정한 건데, 한 가지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다. 바로 모든 방에 시스템 에어컨을 추가하지 않은 것이다. (옵션 상 시스템 에어컨은 각 방, 부엌, 거실 등 설치할 영역을 자유롭게 고를 수 있다.) 어차피 혼자 살 건데 모든 방에 에어컨을 설치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 싶어 가장 안 쓸 것 같은 방 하나를 제외했는데, 시스템 에어컨은 천장에 매립하는 구조라 추후 집을 팔 때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한단다. 당장 몇백만 원 아끼는 데 급급해서 놓친 부분이었다.

몇 억짜리 집을 사는데 왜 옵션값 몇백만 원 아끼려 절절매냐고? 당연하게도 그만한 돈이 당장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다. 자금 조달 계획도 제대로 안 세우고 무지성으로 청약 넣은 사람, 그 무모한 사람이 바로 나였다.

우당탕탕 자금 마련 분투기

아파트 청약에 당첨된 후 마련해야 하는 자금은 크게 세 파트로 나뉜다. : 계약금 10~20% + 중도금 대출 60% + 잔금 30%

당장 급한 건 계약금이었다. 3년간 직장생활을 하며 모은 돈과 내일채움공제에 참여해서 받은 돈을 합쳐 계약금을 지불했다. ‘내일채움공제’란 중소/중견 기업에 다니는 청년의 장기 근속을 위해 나라에서 운영하는 제도로, 2년 형에 참여할 경우 청년이 300만 원을 적립하면 기업이 300만 원을, 나라에서 600만 원을 더해 총 1,200만 원으로 돌려주는 고마운 제도다.

계약금 몇천만 원을 내고 나니 다음 단계인 중도금 대출이 기다리고 있었다. 중도금 대출은 계약금과 잔금을 제외한 금액을 입주 전 5~6회에 걸쳐서 나눠 내는 것으로, 통상 전체 금액의 50~60%를 차지한다. 분양사와 협의한 은행에서 진행하기 때문에 수분양자(아파트 분양을 받는 사람을 뜻함)가 따로 알아볼 필요는 없다. 금액이 큰 만큼 보통 집단 대출로 진행되는데, 신용불량자가 아닌 이상 웬만하면 대출은 다 나온단다. 계약금을 내고 통장에 돈이 하나도 없었는데 천만다행이었다.

또 나는 서민 실수요자 조건(무주택 세대주, 연 소득 9,000만 원 미만, 조정 대상 지역 기준 분양가 8억 원 이하)을 충족했기 때문에 중도금 대출을 기본 50% 아닌 60%로 받을 수 있었다. 중도금 대출 이자는 후불제이고, 잔금을 내는 건 입주할 때라 당장 내가 더 내야 하는 돈은 없었다. 실제로 계약금을 내고 4개월 뒤, 1차 중도금 대출이 무사히 실행됐다는 문자가 날아왔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무사히 진행된게 신기해서 읽고 또 읽은 기억이 난다.

그 후로 반 년에 한 번씩 분양가의 10%에 해당하는 금액이 차곡차곡 대출금으로 쌓여갔다. 코로나 시국이라 금리가 썩 만족스럽진 않았지만(중도금 대출 1회차 금리가 4.76%였다), 청약에 당첨된 건데 이 정도 이자는 기쁘게 감당하자 싶어 긍정적으로 마음 먹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여태 살아본 적 없는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에 입주할 생각에 마냥 들떠 있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서 우크라이나 - 러시아 전쟁이 발발했다. 전염병 사태에 전쟁이라는 악재가 겹치자 세계 각국의 경제 상황이 빠르게 악화되었다. 미국은 경기를 살리기 위해 시중에 돈을 풀었는데, 너무 많이 푼 탓에 인플레이션이 왔다. 치솟는 물가를 잡기 위해서 금리를 계속 올렸고 한국도 이 기조를 바싹 뒤따랐다.

내 중도금 대출 금리는 오르고 올라 6.86%를 찍었다. 1회차 때보다 2% 포인트 넘게 높아진 수치였다. 뭔가 잘못됐다는 직감이 정수리를 강타했다.

‘연준? 파월? 빅스텝은 또 뭐야?’

원래는 입주 전까지 분양가의 30%에 해당하는 잔금을 모으려 했으나,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도금 대출 금액을 가능한 한 많이 상환하는 쪽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강 건너 불구경하듯 가끔 보던 경제 뉴스를 매일 아침 확인하는 게 어느덧 자연스러운 일상이 됐다. 누군지도 모르던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제롬 파월 의장이 동네 아저씨처럼 익숙해졌고, 단어로만 존재하던 각종 개념이 비로소 손에 만져졌다. 대출 금리 7%를 앞둔 상황이 되니 나 같은 금융맹도 각성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에 월세에서 전세로 집을 갈아타면서 3천만 원 정도 신용대출을 받은 적 있는데, 그때는 솔직히 금리 0.1~0.2%에 크게 연연하지 않았다. 매달 이자를 낼 때도 큰 차이를 못 느꼈다. 하지만 총 대출 금액이 억대에 이르자 소수점 차이가 확실하게 와닿았다.

실수요자 조건 충족된다고 중도금 대출을 10% 더 받은 걸 좋아할 때가 아니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솟는 대출 금리 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출금 중도 상환을 하기로 했다. 가지고 있던 예금, 적금을 모조리 해지했다.

그중에선 전세 대출 받을 당시 은행원의 권유로 가입한 개인형 퇴직연금 IRP도 있었다. 매달 일정 금액을 적립하면 만 55세 이후부터 연금 형태로 받을 수 있는 상품이었다. 연간 700만 원까지 세액공제가 된다길래 뭐 좋은 거겠지, 하고 별 고민 없이 가입한 상품이었다. 끽해야 월 10~20만 원 정도 붓는데 이 정도는 당장 없어도 되는 돈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모은 몇백만 원이 몇 년 후 요긴하게 쓰일 줄도 모르고 말이다.

예상에 없던 중도 해지를 하게 되면서 결국 그간 받은 세액공제 혜택을 다 토해냈다. 2~30대는 목돈 필요한 일이 많으니 장기 저축 상품 가입엔 신중하라던 말이 이런 상황 때문에 나왔나 보다.

길게 보면 우상향이라고? 확실해?

시작은 무지성 청약이었지만, 솔직히 말하면 나름 믿는 구석이 있었다. 바로 영업이 잘 되던 시기에 회사로부터 무상 증여받은 주식. 원래는 3년 동안 잔금을 열심히 모은 뒤 부족한 금액은 이 주식을 팔아서 보태려고 했다.

하지만 여기에도 심각한 문제가 생겼다. 코로나 시국 미친 유동성의 시기는 생각보다 짧았고, 한때 잘 나갔던 회사 주식은 말 그대로 나락에 가 있었다. 증여받을 때만 해도 꽁돈 생겼다며 좋아했는데, 이제 내가 다니는 회사는 각종 주식 토론방에서 가장 욕을 많이 먹는 종목 중 하나가 됐다. 롤러코스터를 연상하게 하는 그래프에 헛웃음만 나왔다. 회사가 망한 것도 아닌데 이렇게 단기간에 훅 빠질 수 있는 걸까. 주식이 원래 이렇게 무서운 거였나.

공모가 기준 하락률이 -50%를 넘어가니 돈이 필요한 상황인데도 매도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길게 보면 우상향이겠지’라는 안일한 믿음으로 주식을 방치한 과거의 내 판단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됐다. 각종 자산 배분 전략에서 주식 외에 현금 보유 비중이 작게라도 꼭 들어가는 이유를 깨달았다.

더 나아가 그동안 신경 쓴 적 없던 우리 회사의 미래 먹거리를 주시하는 등 처음으로 투자자의 마인드를 갖게 됐다. 인터넷 쇼핑몰과 게임만 가득하던 집 PC 즐겨찾기에 네이버 금융과 금융감독원 전자 공시 시트 아이템(DART)이 새롭게 추가됐다. 눈에 익지 않는 용어를 시간 날 때마다 하나씩 공부하고, 동종업계 기업의 주식 차트를 펼쳐놓고 비교하면서 내가 대체 언제쯤 돈을 뺄 수 있을지 시뮬레이션을 돌려본다. 전에는 몰랐던 새로운 세계가 보인다.

영끌 시나리오의 끝, 어떤 배움이 기다리고 있을까

이런저런 공부는 계속 하지만 당장 돈을 마련할 뚜렷한 수는 없고, 영끌 시나리오에 남은 카드는 이제 단 하나. 바로 퇴직금 중도인출이다. 청약 당첨 전까진 단 한 번도 20대 때 시행하리라고 상상도 못 해본 일이었다.

그런데 퇴직금은 내가 원할 때 막 뺄 수 있는 게 아니라 중도 정산이 가능한 경우가 정해져 있다고 한다. 본인이나 부양 가족의 6개월 요양비, 개인파산, 개인회생, 본인의 전세 계약 등 제한된 사유로만 인출이 가능한데 다행히 그중엔 ‘무주택자의 주택자금 마련’이 있다.

DC/DB형 구분도 정확히 못 하면서, 회사에서 하라길래 그냥 가입한 퇴직연금 설명서를 뒤늦게 정독하는 밤이다. 주변에서 다들 퇴직금은 건드리는 것 아니라던데, 조금이라도 덜 후회할 선택을 하기 위해 이 고민은 현재진행형이다. 시장은 예측불허, 그리하여 금융 공부는 의미를 가진다.

중도금 대출이 한 회차씩 진행될 때마다 그동안 얼마나 금융에 무지했는지 반성하게 된다. 경제 분야 추천 도서도 집에 몇 권씩 있고 나름대로 관련 뉴스레터도 구독하는데 내가 아는 건 겉핥기에 불과했다. 사실 그들은 정확히 알려줬지만, 그걸 실전에 적용할 생각을 못 하고 막연하게만 받아들인 게 가장 큰 문제가 아니었나 싶다.

팔자에도 없던 자금 영끌 시나리오를 실천하는 건 버겁지만, 그래도 그 과정에서 배운 게 참 많다. 분명하게 하루하루 성장하는 기분은 내일의 나를 이끄는 원동력이 된다. 성공적인 내 집 마련이라는 뚜렷한 목표가 생긴 지금, 과정 때문에 머리 아픈 일이 생겨도 나름대로 즐기며 상황을 헤쳐나갈 자신감이 생겼다. 지금의 노력은 잔금 때 몰아서 지불할 이자보다는 분명 값질 테니.

입주까지 아직 1년 넘게 남았고, 여태까지 낸 중도금보다 앞으로 시행될 회차가 더 많이 남아 있다. 매일 아침 뉴스를 볼 때마다 살 떨리는 것도 여전하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등기를 치고 나면 또 어떤 배움이 기다리고 있을지 기대되기도 하는 요즘이다. 운 좋게 20대 후반에 튜토리얼을 겪었으니, 30대 땐 본게임을 지금보다 즐기며 플레이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Edit 금혜원 Graphic 조수희

해당 콘텐츠는 2023.8.30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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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가영 에디터 이미지
김가영

돈 많은 할머니가 꿈인 게임 개발자. 1인 가구로서 폼나게 사는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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