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하락하는 그래프

주식 빼고 다 잘해

by 현햇님

이런 이유로 주식 투자를 시작하는 사람도 있을까

나는 늦는 것이 싫어 약속 장소에 한 시간 일찍 가서 기다리는 타입이었다. 인사평가의 최고 등급은 날 위해 존재했고, 체중이 500그램이라도 늘면 아무리 늦은 밤이라도 한 시간 달리기를 하고 와야 마음 편히 잠들 수 있었다. 친구들은 너처럼 독하게 못 산다고 말했고, 상사는 “현 주임, 그렇게 살면 피곤하지 않아?”라면서도 믿고 맡길 수 있다며 더 많은 일을 주곤 했다.

이렇듯 내 일상은 엑셀 속 함수처럼 한 치의 오차 없는 삶을 이행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은 공허했다. 어린 날 아무리 손을 오므려도 손 틈 사이로 빠져나가던 유치원 앞 놀이터의 모래처럼 무언가 줄줄 새는 기분이었다. 괴리가 커질수록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걸 알았지만, 빡빡한 삶을 내려놓으면 모든 것이 백지인 세상이 펼쳐질까 봐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저 내 마음만 눈을 감으면 될 일이었다. 부디 원인 모를 누수가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끝나 주기를, 장마 앞둔 솜사탕 장수처럼 그렇게 막연하게 바랄 뿐이었다.

뭔가 잘못된 이 기분은 어디서부터 시작됐을까. 가까웠던 친구가 죽기 직전 마지막으로 걸었던 전화를 내가 무심결에 놓친 때부터였을까. 아니면 회사에서 지독한 일벌레로 유명해 서로 라이벌처럼 여기던 이 주임이 불현듯 더 넓은 세상 구경을 하겠다며 퇴사한 그때부터였을까. 이 주임이 떠날 때의 우려와는 다르게 매사에 덜렁거리는 후임자가 들어왔어도 그의 빈자리가 채워지고 회사가 잘 굴러가자 누수는 기어이 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귀금속이라도 질러서 금이 간 부분을 눈속임처럼 살짝 막아볼까. 회사 엘리베이터 세 개에 벨을 전부 누르고 초조하게 기다리다, 10층에서 내려오던 엘리베이터가 2층에서 내려오던 엘리베이터보다 빨리 도착하는 것을 보고, 마침내 나는 내가 아무리 강박적으로 완벽을 추구해도 누구의 인생이 먼저 잘 풀릴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깜깜한 어둠이 익숙한 퇴근길, 늘 이해가 가지 않았던 고전소설 속 B사감에게 처음으로 동질감을 느끼며, 오래 전 내가 신입사원일 때 ‘저 경리팀 직원은 왜 저렇게 웃음기 없이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일할까' 싶었던 의문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의문은 지금의 내 표정으로 인해 풀릴 것 같았다. 그러자 문득 손에 들린 커피가 눈에 들어왔다. 딱히 맛은 없지만 가깝고 익숙해서 습관처럼 마신 회사 근처 카페의 아메리카노를 보고 생각했다. ‘커피라도 바꿔볼까?’

그때 폭죽이 울리듯 휴대폰에서 적금이 자동 출금되었다는 알림이 울렸다. ‘이것부터 깨자.’ 지금 나에겐 최종 금액이 예상 가능한 적금 14회차보다, 새로운 삶에 대한 투자가 필요했다. 나의 흔들리는 마음을 가장 먼저 눈치 챈 건 주식으로 큰돈을 벌었다는 엄마를 둔 이른바 ‘주식수저’ 대학 동기였다.

“햇님아, 적금 말고 주식 한번 해봐. 돈 복사 제대로야.” 평소라면 고개 몇 번 젓고 말았을 일에 나는 눈동자를 반짝였다. 주식에 대해 이것저것 설명하던 친구는 갑자기 의욕적인 내가 이상한지 주식 투자를 잘못하면 전 재산을 다 날릴 수 있다고 경고했지만, 그건 실컷 보험의 중요성을 설명해놓고 약관에 따라 지원이 안 될 수도 있다고 알려주는, 깨알만 한 경고문일 뿐이었다.

시작은 200만 원이었다. 30대 후반 미혼 직장인이 죄책감을 갖지 않고 재테크라는 명목하에 투자할 수 있는 금액. 말기 암에 걸렸어도 끝까지 재기를 꿈꾸던 아빠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고 장롱 위에 숨겨둔 금액이기도 했고, 엄마 생일에 용돈으로 드리면 동네방네 그 집 딸 효녀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금액이기도 했다.

걱정 많은 인간이 못 먹어도 고를 외칠 때

나는 행여나 돈을 따면 누가 달라고 할까 봐, 돈을 잃으면 “똑똑한 척하더니 주식으로 돈 날렸다더라" 소리를 들을까봐 누구에게도 주식 투자를 하겠다고 알리지 않고, 비밀리에 가장 유명한 주식 토론방에 들어갔다. 그리고 최대한 겸손하게 글을 남겼다. “저 주린이인데요, 호재가 뭔가요?” 띠링, 댓글이 달렸다. “검색만 해보면 2초 만에 알 수 있는 걸, 떠먹여 줘야 하는 정신머리로 어떻게 주식을 하냐? 당장 손 떼라!” 그때의 난 몰랐다. 그 말이 사실은 정말 애정 어린 조언이었다는 것을 말이다.

결국 나는 내 자신에 의지해 투자할 종목을 골랐다. ‘곧 추워지니까 사람들도 영양가 넘치는 음식이 당기겠지, 옛말에도 먹는 게 남는 거라잖아. 음식 관련 주를 사보자.’ 물론 위에는 셔츠를 입고 아래에는 잠옷 바지를 입었을 것 같은 주식 유튜버들은 위험을 분산시키는 분할매수 분할매도를 추천했지만, 매일 저녁 한복을 곱게 차려 입고 화투판이 열리는 비닐하우스로 출근하시던 집안 어르신을 닮았는지 나는 ‘못 먹어도 고(go)’였다.

주식 시장이 열리는 아침 9시, 장이 열리자마자 망설임 없이 골라둔 주식을 200만 원어치나 매수해 버렸다. 월급 통장과 나만 존재하던 단출한 세상에, 나를 위해 돈을 벌어 주는 든든한 내 편이 생긴 기분이었다.

이윽고 내게도 ‘초심자의 행운’이 왔다. 선무당이 사람을 잡았는지 몰빵한 회사가 갑자기 예고도 없이 해외 수주를 따냈다는 게 아닌가. 수익률이 50퍼센트를 찍자 주식 투자를 반대했던 엄마도 세상에 이런 일도 있다며 싱글벙글이었다. 물론 작게 먹고 얼른 빼라고 난리였지만 어림없는 소리였다.

나는 보란 듯이 돈을 더 쏟아부었다. 만기가 얼마 안 남았다고 적금 해약을 말리는 은행원의 말에도 코웃음이 나올 뿐이었다. ‘지금 겨우 이자 요만큼이 문제가 아니거든요.’ 그러다 뒤돌아 또 생각했다. ‘이거 주식 투자 실패담에서 자주 보던 수순인데.’

하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마침 내 옆으로 크롭탑을 입은 대학생이 브레이크가 없기라도 한 것처럼 신나게 킥보드를 타고 지나갔다. 그래, 나는 쓸데없는 걱정이 너무 많다.

매일 아침 눈뜨는 게 어릴 적 소풍을 앞둔 기분이었다. 하필이면 장이 열리는 9시에 회의를 시작하자는 사장님에게 입사 이래 처음으로 더 빨리 8시에 하자고 반기를 들었지만, 걱정처럼 하늘이 두 쪽 나는 일은 없었다.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내 주식만 있을 뿐이었다.

어느 날은 주식창을 보느라 업무 전화를 급하게 내려놓자 눈치 없기로 소문난 직원이 기어이 한마디를 했다. “그 말이 정말 사실인가 봐요! 사람들이 현 주임님 로또에 당첨되었거나 수십억 오른 조상님 땅을 찾았거나 둘 중 하나라고 하던데.” 그 말이 이상하게 떼고 남은 스티커 찌꺼기처럼 마음에 남았다.

역사적인 그날은 새벽에 잠을 설쳐 아침에 일어나는 것이 영 힘들었다. 대학 입학을 앞뒀던 내 어머니와  ‘사고’를 쳤다는 이유로 평생 아빠와 나를 보지 않았던, 그래서 사진으로만 봤던 외할아버지가 꿈에 나타나 나를 호되게 혼냈던 것이다.

꿈을 깨고도 지워지지 않는 잔상에 습관처럼 하던 새벽 스트레칭 루틴도 잊어버린 채, 부랴부랴 투자한 종목 관련 오픈채팅방에 들어갔다. 늘 “가즈아!”를 외치며 많아야 10개 남짓 대화가 이어지던 채팅창이 +999개의 알림으로 난리도 아니었다.

“수출 협의 중 XX물질 기준 수치 미달로 인해 최종 협상 결렬"

등골이 오싹했다. 나이를 먹을수록 비속어를 쓰면 사람이 저렴해 보인다며 자제했지만, 그때만큼은 머릿속에 한 가지 단어만 떠오를 뿐이었다. X됐다. 후회가 몰려들었다. 진작 뺄걸…

채팅방은 이 사태가 이른바 ‘개미 털기’가 아니냐는 말들로 시끄러웠다. 주식 시장을 교란해서 이득을 얻는 세력들이 나 같은 개인 투자자들이 가짜 뉴스 등에 위기를 느끼고 싼값에 주식을 매도해 버리도록 유도한다는 것이다. 오픈채팅방은 개미 털기가 끝나면 제대로 주식이 올라갈 거라는 희망과, 가짜 뉴스고 뭐고 이럴 줄 알았다는 비아냥이 섞여 아수라장이 되어 있었다. 그리고 혹시나 했던 내 주식은 역시나 장이 열리자마자 바닥 무서운 줄 모르고 추락하기 시작했다. ‘설마, 설마’ 하면서 4일 내내 곤두박질치는 파란색 그래프만 지켜보던 나는 결국 마이너스 80퍼센트에서 손절하고 말았다.

주가가 처음 내려가던 첫날 매도했다면 마이너스 50퍼센트에서 그쳤을 텐데. 그 와중에도 4일 동안 지켜보느라 명품 가방 한 개 값을 더 날린 게 미치도록 아까웠다. 그렇게 손해만 잔뜩 본 채 헐값에 주식을 팔아 버리고 나는 옆에서 인형놀이를 하는 조카에게 물었다. “우리 공주, 이모 없이 살 수 있어?” 조카가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왜? 이모 죽어?” 그때는 코로나 예방접종 주사보다 주식을 떠올리는 게 더 아팠다.

오랜만에 사장실 문을 두드렸다. 사장님이 좋아하는 회사 근처 카페의 초코쿠키를 손에 든 채였다. 그동안 4대 보험의 안락함을 너무 등한시했다.

“사장님, 생각해보니 회의는 9시 시작이 딱이죠!”

누가 자꾸 개미약 뿌리니

정신을 차릴수록 본전 생각이 절실해졌다. 딱 한 번만 더 주식에 투자해서 본전만 찾고 빼자, 그 후엔 정말 주식이라면 손도 대지 말자는 생각으로 엄마를 꼬드겼다. 2주에 걸친 회유였다. 그렇게 얻어낸 투자금은 내가 결혼할 때 주려고 엄마가 청소일을 하며 모아둔 쌈짓돈 2000만 원이었다. 사탕 하나를 소중하게 이고 가는 개미처럼 엄마에게서 돈을 받아 들고 또다시 장이 열리길 기다렸다.

그리고 이번에는 신중하게 고르고 골라 안전한 대형주에 몰아 넣었다. 하지만 이후로 불어닥친 환율 급등, 빅 스텝, 최악의 실업률, 미국 소비자 물가 지수 급등.... 연일 최저가 알람이 울려댔고, 파란색 그래프와 함께 내 심장도 땅 밑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뉴스가 공포영화보다 더 무서울 수도 있는 거였다.

“햇님아, 조금만 수익 나면 그냥 팔아. 뉴스에서 보니까 코스피가 더 어려워진대.”

“시장에서 콩나물값 깎고, 빚이라는 말만 들어도 무서워서 공과금 나오면 연체될까 재깍 내버리는 엄마한테 내가 무슨 짓을 한 건지. 엄마 나 한강 갈까?”

“뭘 한강까지 가. 이 앞에 내심천도 있는데.”

자신의 돈이 어떻게 됐냐고 묻는 엄마의 흉흉한 감시 아래 엄마가 시키는 모든 집안일을 척척 해냈지만, 개미가 자주 출몰하는 부엌 구석구석에 개미약을 뿌리라는 건 조금 슬펐다. 이 약을 먹고 개미가 죽건 말건 나는 별 상관이 없었기 때문이다. 주식 판에서의 내 처지와 하등 다를 게 없었다.

나도 나지만, 딸이 나쁜 생각을 할까 걱정하는 엄마의 불면을 조금이라도 줄여주기 위해 주임 승진 후 처음으로 바깥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실수하는 게 싫어서 익숙한 것만 찾고 새로운 사람도 만나지 않던 내가 한 큰 결심이기도 했다.

마침 1년에 한 번 대답할까 말까였던 ‘엑셀 완벽 정복 동호회' 사람들의 단체카톡방이 눈에 들어왔다. 누군가 부모님 농장에서 고구마 캐는 주말 알바를 구한다는 말에 빛의 속도로 답장을 보냈다. “저 참석하겠습니다!” 하루 일당 6만 원, 새참 제공.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망설임은 중요하지 않았다.

피아노를 오래 쳤냐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굳은살 하나 없는 손이었다. 그런 손에 호미를 쥐고, 행여나 멋진 팔 근육을 가지고 있는 아주머니들에게 일자리를 빼앗길까 열과 성을 다해 호미를 놀렸다. 밭주인이 달리기 스타트 총성을 울리듯 커다란 낫으로 고구마순을 베어내면 나는 아주머니들과 함께 출발선에 앉아 고구마를 캤다. 한데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고구마가 상하지 않게 주변을 살살 파내야 했고, 간혹 혼자 멀리 떨어져 있는 사춘기 고구마를 놓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그 결과 일당뿐 아니라 젊은 사람이라 힘이 다르다는 칭찬과, 다른 일꾼들에게는 안 준다는 고구마 한 박스를 덤으로 받을 수 있었다. 쏟아지는 땀에 선크림이 다 지워져 어느새 시커메진 얼굴로 고구마 박스를 안고 나타난 나를 보고 엄마는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 거기다 대고 나는 다음에 양파 캐는 날도 함께해 달라는 밭주인의 문자를 당당히 내밀었다. 엄마가 말했다. “어휴, 주식 빼고 다 잘해 정말.”

다음은 오래전 눈물 콧물 빼며 싸우고 절교했다 극적으로 재회한, 이제는 속마음을 털어놔도 서로 비웃지 않는 베프가 내 마이너스 수익률을 듣고 물어온 일자리였다. 베프가 사는 원룸의 집주인이 주말마다 서울 자식네 집에 놀러 가는데 혼자 남는 강아지를 돌봐줄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내 태몽이 풍산개였다는 되도 않은 소리를 해가며 야심차게 우리 집 개의 냄새를 옷에 묻히고 고용주의 강아지님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집주인은 애견숍에 들러 강아지 사료를 사다 달라고 했는데, 회사 비품을 구매하던 실력을 살려 사료를 사갔지만 집주인이 말한 사료와 내가 사간 사료는 겉표지가 같지만 알맹이 크기가 다른 제품이었다. “어머나, 우리 애는 입이 작아서 이런 크기의 사료는 못 먹어요.” 이미 뜯어 교환도 안 되는 이 사료 가격은 내 하루 일당과 맞먹었다. “어머님, 방망이와 그릇 하나만 주시면 다녀오실 때까지 제가 먹기 좋은 크기로 다 부숴 놓겠습니다.” 순발력 덕분에 겨우 살았다. 그렇게 죽어라 사료를 부수는 내 옆으로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다가오는 치와와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그냥 주는 대로 먹으면 안 되겠냐.’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벌써 알바생을 네 번째 물어뜯었다는(!) 치와와는 나를 너무 좋아해서 집주인이 오는 순간까지도 내 다리를 잡고 놓아주질 않았고, 그것에 감복한 집주인은 당근마켓 시세로 8만 원이라는 항아리를 알바비에 더해 선물해주었다. 그러면서도 들고 갈 수 있겠냐며 말을 흐렸지만, 나는 중고거래의 꿈에 부풀어 당당히 항아리를 안고 지하철에 올라탔다.

며칠 뒤 혹시나 ‘지하철 항아리녀’로 사진이 올라오진 않았을까 검색해 봤지만 그런 건 없었고, 항아리는 엄마의 눈에 들어 예쁜 화분이 되었다. 팔면 8만 원이었지만, 나를 믿고 투자해준 엄마의 선택에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은 없었다. 엄마는 매일 아침 항아리를 흐뭇하게 닦으며 중얼거리셨다. “정말… 주식 빼고 다 잘하네…”

다음은 친구 동생이 하는 마카롱 가게의 주말 알바였다. 그곳은 수제 마카롱을 만들어 파는 곳으로 지역 내에서 꽤 유명했는데, 만들어놓은 마카롱을 포장하거나 배달 기사님의 손에 쥐어주면 되는 일로 꽤 수월했다. 짧게 만난 전 남자친구의 방문만 아니라면 말이다.

“...회사 다닌다더니 그만두고 가게 차린 거야?” “응.”

꿀리기 싫어 거짓말을 해버렸다.

“놀이동산 갈 때 귀찮다고 김밥을 김밥나라에서 사서 통만 옮겨 담아왔던 네가 마카롱을 직접  만든다고?” “법대 나온 네가 커피숍을 차린 것처럼 원래 세상은 요지경이야.” “그럼 우리 가게 와서 아르바이트 할래?” “얼마 줄 건데?”

물론 가진 않았지만 스카우트 제의도 받았다고 농담처럼 엄마에게 말하자, 엄마는 친구 동생이 알바비 7만 원과 함께 건네준 마카롱 꼬끄를 한입 바삭하게 베어 물며 속삭였다. “에휴 정말… 주식 빼고 다 잘해.”

물린 삶에도 해는 뜬다

대학 시절, 학교신문에 자신의 꿈을 위해서 지금 당장의 이익보다는 미래에 아낌없는 투자를 해야 한다는 글을 기고한 적이 있다. 돈이 얼마나 중요한데 꿈만 바라보고 사냐, 네가 학생이냐 교수냐라는 항의를 받은 적도 있었는데, 그때는 화가 났던 그 말이 시간 지나고 보니 세상 물정 모르는 학우를 깨우쳐 주려는 진실의 목소리였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 돈 참 중요하더라.

실력을 발휘해 상금이 있는 백일장에 응모했다. 다행히 수상도 했다. 그리고 실수도 했다. 시상식에서 몇 모금 들이킨 샴페인에 고민 많던 밤들이 떠올라 수상 소감으로 주최 측이 원하지 않을 말을 한 것이었다.

“사실 저는 주식 투자 실패로 공모전에 도전하게 되었어요.”

아무래도 오늘 밤은 하이킥을 차느라 잠 못 이루겠다고 생각하며 자리로 돌아왔는데 옆자리 수상자가 조용히 속삭였다. “괜찮아요, 저도 물렸어요. 이것도 인연인데 우리 같이 알바 할래요?”

그렇게 일개미처럼 회사와 집만 왔다 갔다 했던 일상에 갑작스레 많은 스토리들이 생겼고, 나는 무채색이었던 내 세상이 알록달록해지는 것을 느꼈다. 오늘 50원 오르고 내일 50원 내리는 삶 속에서 치열하고 처절하게 평범함을 만드는 것도, 총성 없는 난리통에서 깨달음을 얻는 것도 내 몫이었다. 물론 제대로 공부도 안 해보고 ‘뇌피셜’로 투자해 무책임하게 잃은 돈도 온전히 내 몫이었다.

오늘도 평소처럼 아침 출근길 지하철에 오른다. ‘마이너스 1000만 원? 존버하면 언젠가는 오른다! 나중에 관에 들어갈 때 1000만 원보다는 많은 경험을 한 게 더 소중하겠지!’라고 최면을 걸며, 신나는 노래까지 틀어젖히며 말이다.

그러다가도 오늘따라 사람들로 가득 찬 지하철에서 다리가 아파 ‘아 주식 대박 나서 퇴사했어야 되는데'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그 순간 눈에 들어오는 것이 있었다. 창문 밖 내심천의 잔잔한 물 위에 쏟아져 반짝거리는 햇살이었다. 편하게 앉아서 창문을 등지고 갈 때는 이런 아름다움을 미처 보지 못했다.

그래, 매일 햇살 쨍쨍한 날만 있으면 결국 가물 텐데, 흐린 날도 있고 비도 오고 그래야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으니 무겁게 짊어지고 있던 숫자도 두렵지 않았다. 나는 내가 과거에 했던 선택을 기대했던 모양새와는 조금 달라도 성공한 투자로 바꿀 능력이 충분히 있었다. 아직, 삶은 끝나지 않았다.


Edit 주소은 Graphic 조수희

해당 콘텐츠는 2023.09.06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우리에겐 더 많은 돈이 필요하다16편의 수상작, 책으로도 만나보세요
현햇님 에디터 이미지
현햇님

매일 회사에 다니며 가끔 작가 일을 한다. 서른이 넘으면 음식점에서 가격을 보지 않고 주문하는 날이 자연스레 올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달라진 게 없어 급하게 돈 모으기에 집중하고 있다. 42살 이전에 은행 지분 40% 본인 지분 60%의 건물주가 되어 출근길에도 방긋방긋 웃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다.

필진 글 더보기
0
0

추천 콘텐츠

연관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