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몰락
ㆍby 박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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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그때 비트코인 안 하고 뭐 했어?”
누군가 나에게 왜 비트코인을 시작했는지 묻는다면, 답은 간단하다. 먼 훗날 세상에 태어날 아이가 내게 저 물음을 던졌을 때 비참하지 않기 위해서였다. 미래에는 너무 당연하게 느껴질 기회를 놓쳤다는 후회를 내 아이 앞에서만큼은 하지 않기 위해.
1992년 10월 20일, 내가 태어나던 날 삼성전자의 종가는 334원이었다.(23.07.14 기준 73,400원) 왜 우리 부모님은 이렇게 뻔하게 우량한 삼성전자 주식을 그때 사두지 않았을까? 나였으면 그때 삼성전자는 샀을 거라고 오늘날 우리는 쉽게 얘기한다. 마치 20000%의 수익률이 내 것일 뻔했던 것처럼 입맛을 다시며. 기회란 먼 훗날 지나고 보면 너무나 뻔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인생은 멀리서 보면 풍경이고 가까이서 보면 전쟁이다’라는 말이 있지 않던가.
언젠가 암호화폐가 지금의 화폐처럼 통용되고, 그 암호화폐들을 ‘334원의 삼성전자처럼 살 수 있었다’고 이야기할 때쯤, 사람들은 쉽게 이야기할 것이다. “아니, 그때 안 사고 뭐 했어?” 그리고 미래의 나 또한 착각할지도 모른다. ‘그러게 나 안 사고 뭐 했더라?’ 그렇기에 나는 기록한다. 아니 기록해야만 한다. 언젠가 나 또한 이 시기가 너무 뻔하고 아름다운 기회였다고 착각하지 않도록. 먼 훗날 돌아보는 사람에겐 그저 아름다운 투자의 기회로 보일 그 풍경이, 실은 처절하고 격렬한 등락의 전쟁이었음을. 언제 세상에 나올지 모르는 아이에게 아빠도 노력했었음을 전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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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코로나19가 세계를 강타한 후, 모두가 돈이 복사된다고 말하던 시기가 찾아왔다. 코인 투자로 졸부가 된 파이어족의 이야기가 미디어를 채웠고, 모임에 나가면 ‘우리 회사 과장님도 몇억을 벌고 퇴사했다더라’ 하는 얘기를 쉬이 들을 수 있었다. 내 주변에서도 회계사 시험을 준비하던 친구가 시험공부를 하면서 코인에 투자해 3억 원을 벌었을 정도였다. 2년 차 사원인 내가 그동안 받은 연봉의 3배가 넘는 액수였다. 치과 의사인 지인이 그 시기에 했던 말을 잊을 수 없다. “문득, 내가 왜 이 사람들 입을 보고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 방에 들어가서 클릭 몇 번이면 훨씬 더 벌 수 있는데” 노동은 조롱 당했고 투기꾼들이 전문투자자를 무시했다. 하지만 투자에 있어서 겁이 많고 보수적인 나는 과도한 돈 복사 행렬에 뛰어들지는 않았다(뛰어들었어야 했는데……). 나는 과하게, 뜨겁게 타오르는 것은 그만큼 빠르게 식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그 시기는 예상보다 더 오래 더 뜨겁게 타올랐다.
나만 돈을 못 벌고 있는 것 같은 박탈감에 휩싸인 채 시간이 흘렀다. 언제 떨어질지 몰라서 사지 못하던 불안감은 점차 ‘나만 못 사서 어떡하나’ 하는 불안감으로 변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수에 뛰어들지 않았던 건 내가 목격한 기현상 덕분이었다. ‘주식을 모르던 부모가 어린아이를 둘러업고 증권사에 주식을 사달라고 나타나면 그때가 고점이니 도망쳐야 한다'는 말이 있다. 주식을 안 하던 사람까지 소문을 듣고 주식을 사려고 하는 때는 이미 너무 늦은 때라는 비유다.
강남의 한 스타벅스에 앉아있을 때였다. 아이를 업고 있는 부모는 없었지만, 테이블마다 정장을 입은 젊은 남성과 흔히 드라마에서 ‘사모님'으로 불릴 듯한 중년의 여성이 마주 앉아 있었다. 서로 닮은 여러 쌍의 남녀 조합은 번갈아 전화를 해대며 한참을 진지하게 토의하고 있었다. 그리고 의도치 않게 엿듣게 된 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는 주제는 다름 아닌 코인이었다. 생경하고 기이한 광경이었다. 그들이 흔히 말하는 스마트 머니의 주인공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내 눈에 그곳은 아이를 둘러업은 부모들이 득실거리는 증권사 지점으로 보였다. 그 광경이 선사한 충격 덕에 나는 매수를 참을 수 있었고, 신기하게도 그즈음이 주식과 암호화폐들의 고점이었다. 나는 그 붐이 조금 진정되고 워런 버핏의 말처럼 ‘수영장에 물이 빠지면 누가 발가벗고 있는지 보인다’는 시기를 기다렸다. 투자 열기가 식고 수영장에 물이 빠지면, 자산 가격들의 거품도 빠질 테니 말이다.
2022년 초 즈음이었다. 치솟았던 자산 가격들은 꺾이기 시작했고 ‘억’을 바라보던 비트코인도 5,000만 원 이하로 떨어졌다. 미친 듯이 달리던 마차가 잠시 멈춰도, 말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는 것처럼 비트코인의 가격은 비록 멈추어 있었지만 나의 심장은 미지의 비트코인 최고점을 향해 뛰고 있었다. 그러므로 하락은 다음 상승을 위해 쉬어가는 가격 조정처럼 보였고 모든 게 전보다 충분히 싸 보였다. 차분히 투자 대상 선별을 시작했다. 나는 가볍게 널뛰는 것보다는 묵직하게 움직이는 것들을 선호했다. (물론 암호화폐는 묵직하게도 널뛰지만) 주식도 삼성전자 위주로 보유하고 있던 만큼, 암호화폐도 시총 상위 화폐 중에서만 고려하기로 했다. 그 와중에 일말의 ‘안전’을 챙기기 위해.
그리고 1월 말, 나는 ‘루나’를 만났다. 암호화폐 루나에 대해 처음 들었던 건 삼성전자에 다니며, 컴퓨터 공학을 전공한 지인을 만났을 때였다. ‘한국에서도 루나라는 코인을 만들어 인정받고 있다’는 지나가는 말이었다. 그가 삼성전자에 다니고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기 때문이었을까? 지나가는 말일 뿐이었지만 쓸데없이 기회처럼 느껴졌고, 인터넷 뉴스가 아니라 검증된 신문 기사 같았다. 호기심에 찾아본 루나는 ‘국산’ 코인임에도 시총 상위 종목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리고 때마침 가장 객관적으로 시장을 분석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유튜브 채널에서도 루나의 안전함과 가능성에 대해 얘기하는 게 아닌가? 루나는 여타의 코인들과 다르게 폭락을 방지하기 위한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고 했다. 페깅이니 뭐니 복잡한 구조가 있었지만, 간단하게 보자면 루나가 떨어지면 루나를 만든 회사(테라폼랩스)가 보유한 비트코인 자본력을 통해 하락을 방어한다는 것이었다. ‘안전한 + 코인’이라니 이 얼마나 탐스러운 상상인가.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라 믿고 싶어진다. 결국 나는 1월 29일, 루나를 60,250원에 처음으로 매수했다.
처음에는 등락이 크다 보니 사고팔기를 반복하며 조금씩 돈을 벌었다. 루나는 ‘안정적인 코인’답게 다른 코인들이 사경을 헤맬 때 상승 탄력이 훨씬 좋았다. ‘모든 게 떨어지는 시기에 홀로 오르는 것이 다음 주도주가 된다’던 어느 전문가의 말이 떠올랐다. 그리고 정말 두 달도 채 되지 않아 3월 16일에 루나는 두 배가 되어 12만 원 가까이 껑충 올랐다. 고작 50일 만에 내 자산은 2배가 되었고, 세상은 루나가 폭락장에 방어가 가능하기 때문에 돋보인다 말했다. 그때 내 눈에 루나는 물이 빠져서 벌거벗은 사람들이 허우적대는 수영장 위에 번쩍 떠오른 보름달이었다. ‘이런 게 돈 복사구나’ 나는 촐싹맞은 매도를 멈추었다. 회전율이 높으면 수익이 작다 하지 않았던가. 자주 사고파는 사람이 오히려 많이 벌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는 말마따나 주도주에 힘을 실을 타이밍이라고 생각했다. 3월 31일 132,500원에 나는 추가로 매수를 감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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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마음처럼 더 높은 하늘을 향해 올라가진 않았다. 하지만 추가 매수 후에도 평균매수단가는 제법 낮았기 때문에 4월 내내 조금씩 흘러내리는 루나를 꾸준히 사모아갔다. 더 오르기 전에 살짝 하락하는, 소위 ‘눌림목’을 공략하기 위해. 그리고 회사 업무가 바빠지면서 나는 ‘주식을 사놓고 10년을 자고 일어나면 부자가 되어있을 것'이라는 말을 떠올리며, 팔지 않고 버티는 ‘엉덩이 매매’를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2022년 5월 9일.
“루나 이거 X됐네."
차를 타고 이동하던 중, 상사의 말에 내 귀를 의심했다. 루나는 직전 고점의 절반 이하인 7만 원 즈음에 위치하고 있었다. 내 평단가를 조금 하회하는 지점이었다. ‘팔아야 하나?’ 싶었지만 오히려 반대로 매수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투자를 해본 사람이라면 경험해본 적 있을 것이다. 내가 사면 떨어지고, 팔면 올라가는 신기한 현상. 많이 올라 고점에 있는 자산이 우리를 설레게 하고, 떨어져서 저점에 있는 것은 버리고 싶어하는 우리의 본능적인 심리 탓이다. 이 때문에 잔인하게도 투자계에서는 반대로 해야하는 기준으로서 대중의 심리를 ‘인간지표'라 부른다. 나는 팔고 싶은 나의 심리가 바로 그 인간지표라 생각했다. 5월 10일 루나는 54,300원으로 떨어졌고 나는 내 마음과 반대 방향으로 행동하기 위해 결국 추가 매수를 감행했다.
그리고 나서부터 신기한 일이 벌어졌다. 다음 날 아침(5월 11일) 잠을 자고 일어나니 루나는 반토막이 나 있었다. 쉬는 날이라 아내와 이마트에 갔다. 한 손은 쇼핑카트를 잡고, 한 손으로 앱을 열었다. 루나는 다시 반의 반토막이 되어있었다. 아마도 나는 웃었던 것 같다. 마치 한번 눈을 깜빡일 때마다 보이지 않는 손이 한 허리씩 내 자산을 움켜 가버리는 것 같았다. ‘저기요! 가져가지 마세요’라고 말하는 동안에도 그 손은 몇 번을 더 가져갔다. ‘왜 바로 팔지 않았어요?’라고 묻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낙하의 속도를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다. 그 질문은 마치 절벽에서 떨어지는 사람에게 ‘잠시 벽에 붙은 나뭇가지를 잡고, 더 떨어지면 위험하겠다고 생각해 보지 그랬어요?’라고 묻는 것과 같다. 그래도 장을 보고 나서 본능적으로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에 1차로 일부 매도를 했던 가격은 17,340원이었다. 그리고 그날 저녁 뮤지컬 공연을 보러 갔을 때 루나의 가격은 4,000원이었다.
‘어쩌면’ 루나가 13만 원을 넘었을 때 팔았을 수도 있다. ‘어쩌면’ 차에서 상사가 루나 얘기를 했을 때 도망쳤을 수도 있다. ‘어쩌면’ 아침에 장을 보러 가기 전에도 팔았을 수도 있다. 어쩌면, 어쩌면. 낙하하는 동안에도 루나는 이따금 수십 퍼센트씩 폭등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폭등은 4,000원이 6,000원이 되는 정도였다. 흔히 자산 증식의 유명한 방법으로 알려진 복리의 마법은 복리의 ‘늪’이 되어 수백 퍼센트가 폭등한다해도 나의 계좌는 일어설 수가 없었다. 30분의 1토막이 나버린 자산은 2배가 오른다 해도 아직 15배나 가야할 길이 남았기에, 아무리 4,000원 짜리 루나가 폭등을 해도 손실을 메꾸기에는 턱도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때라도 매도 했다면, 작은 돈이나마 건질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마지막 매도는 5월 13일, 1,209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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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나는 상장폐지 되었다. 대표는 도주했고, 사람들은 분노했다. 나는 1,209원에 모두 매도했으니 0원으로 수렴해 버리고만 사람들에 비해서는 엄청난 이득을 본 건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도주한 권 대표가 루나2를 만들어 기존 루나 보유자들에게 나누어주겠다고 얘기했을 때 ‘나는 다 팔아서 못 받으면 어떡하지’라고 생각하는 나를 발견했다. 이 와중에도 도주한 대표의 제안을 새로운 희망으로 여기다니. 그 썩은 동아줄에 흔들렸던 이유는 그것 말고 딱히 잡을 게 없어서였을 거다. 당연하게도 새로운 희망은 싹트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왜 1,209원이 되어서야 팔았을까. 돌아보면, 20만 원 가까이 가던 루나가 4,000원이 되었을 때, 나의 전체 자산은 정말이지 보잘것없고 작아 보였다. ‘이걸 팔아서 뭐 하나?’ 하지만 그 몇십만 원이라도 소중히 여겼더라면 이마트에서라도 사치를 했을 텐데. 모든 건 상대적이다. 무일푼에서 몇십만 원을 벌었다면 웬 횡재냐 싶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 나에게 남은 그 몇십만 원은 집을 통째로 빼앗긴 채 하릴없이 손에 쥐고 있는 현관문 열쇠인 셈이었다. 그리고 1,209원이 되었을 때가 되어서야 나는 손에 쇠 냄새만 배게 하는 그 열쇠를 엿 바꿔 먹는 심정으로 버렸던 것이다.
물이 빠진 수영장에서 홀로 높이 떠올랐던 달은, 혼자 떠올랐던 탓에 홀로 차가운 바닥에 떨어지며 산산이 부서졌다. 그러고 보니 텅 빈 수영장에 발가벗고 서 있는 건 나였다. 투자와 관련된 얄팍한 지식과 격언들을 자신의 무기인 양 어설프게 휘두르는 동안 내 옷이 벗겨지고 있는 줄은 몰랐다. 아, 가지고 있는 주식을 사랑하지 말라 하지 않았던가. 나는 루나를 사랑했을까? 루나에 대한 분석을 설파하며 찬양하던 유튜버들은 모두 사라졌다. 그들은 루나를 사랑했을까? 지구의 수많은 사람들이 각자 다른 곳에 서서 높이 떠오른 루나를 갖고 싶어 했다는 점에서 루나는 정말이지 달을 닮았다. 아니 어쩌면 달인 척을 했던 걸까.
시간이 또 한 움큼 흘러 도주 중이던 루나의 대표는 체포되었다. 뉴스에서 양팔을 붙들린 채 버스에서 내리는 그의 얼굴을 보았다. 그때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아 정의는 구현되어도, 내 계좌는 구원될 수 없겠구나.’ 저 대표의 주머니를 털어 비트코인이 우수수 나온다고 한들 손해 본 사람들에게 환원해 줄 리가 없다는 확신이 들었다. 끌려가고 있는 저 대표라는 작자도 선택에 대한 책임을 저렇게 지는 것이고, 나 또한 내 선택에 대한 책임으로써 돈을 잃은 것이다. 모든 투자 관련 유튜버들이 늘 강조하고 또 강조하지 않던가. ‘아무리 우리가 이 종목을 찬양해도, 모든 투자에 대한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억울하지만 결국 매수 버튼을 누른 건 나니까. 어쩌면 도주한 대표를 잡아야 한다고 목 놓아 외쳤던 사람들은 사실 대표가 아니라 루나 매수 버튼을 누르던 자신의 손을 잡고 싶었던 게 아닐까.
다시금 차가워진 마음으로 복기해 보면, 루나의 안정성에 대한 신뢰가 무너졌다고 했을 때 도망쳤어야 했다. 대표의 자신감이 지나치게 과하다 싶었을 때 의심했어야 했다. 아니 어쩌면 아직 태어나지도 않은 아이에게 할 말을 만들기 위해 무언가를 시작해서는 안 되었다. 하지만 일은 벌어졌고, 돌이킬 수 있는 것은 동전 한 닢도 없다. 솔직히 나도 돈을 복사하고 싶었다. 부자가 되고 싶었다기보단, 세상의 열광 속에 소외되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었다. 모두가 돈 복사 파티를 즐기는 동안 나만 하루하루를 성실히 노동하고 싶지 않았다. 그런 나에게 뒤늦게 파티의 달콤한 맛을 보여준 파트너가 루나였던 것이다. 짧게나마 나 또한 상상했으리라. 내가 아닌 내 돈이 돈을 벌어오는 삶. 다만 파티는 끝물이었고, 파트너는 사기꾼이었다. 돈은 돈을 벌어오지 못하고 그대로 집을 나갔다. 언제까지나 계속되는 파티는 없다. 그리고 비어버린 잔고는 나에게 말한다. ‘일해서 버는 게 짱이다.’
세상은 더 이상 루나를 얘기하지 않는다. 사라진 것은 잊히기 마련이다. 334원짜리 삼성전자 주식이 73,400원이 되는 동안에도 루나와 같은 셀 수 없이 많은 것들이 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 열광의 시대만큼은 루나의 이야기로 기억되길 바란다. 언젠가 다시 시작될 파티에 앞서 숙취해소제가 될 수 있도록. 짧지만 간절했던, 잔혹하게 사라져 버린 것에 대한 이야기. 누군가 나에게 그때 무얼 했냐고 묻는다면 전해줄 이야기.
“그녀가 좋아하던 저 달이 지네, 달이 몰락하고 있네” - 김현철 <달의 몰락> 중
P.S. 한때 루나를 들고 있었던 동지들에게 애도를 표합니다.
Edit 이지영 Graphic 조수희
해당 콘텐츠는 2023.8.23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