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 그림이 그려진 문고리 카드 이미지

사심 가득 펫시터의 단짠단짠

by 우림

네덜란드 교환학생, 펫시팅으로 여행비 벌기

대학교 3학년, 네덜란드로 교환학생을 갔다. 유럽살이의 최대 장점은 비행기를 한두 시간만 타면 근사한 도시들을 여행할 수 있다는 점인데, 가고 싶은 곳은 많았으나 용돈이 빠듯했다. 처음 눈에 들어온 건 ‘딜리버루(Deliveroo)’ 배달 아르바이트였다. 딜리버루는 우리나라 ‘배달의민족’ 같은 음식 배달 플랫폼으로, 자전거를 타고 음식을 배달해주면 되는 거였다. 같은 기숙사 친구들 서넛이 만족스럽게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혹했는데 치명적인 불가 사유가 있었다. 내가 자전거를 잘 타지 못한다는 거였다. 내 한몸 가누기도 힘든데 피자까지 싣고 자전거라니… 사고 날 게 뻔해 보여 마음을 접었다.

다른 알바를 고민하던 중 브라질에서 온 친구가 자신이 배달 말고도 가끔 하는 일이 있다며 ‘펫시터' 아르바이트를 추천해줬다. 펫시터(pet sitter)는 베이비시터처럼 가족이 집을 비우는 사이 강아지나 고양이를 대신 돌봐주는 사람이다. 네덜란드에서는 ‘포셰이크(Pawshake)’라는 앱을 통해서 구인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일을 시작하고 싶다면 자기소개와 함께 서비스 항목별 금액을 올려놓으면 된다. 기본 서비스는 하루에 한 번 반려동물이 거주하는 공간에 방문해 사료와 물을 급여하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놀아주는 것이었다. 시세는 7~12유로(약 1만~1만 7000원) 정도? 거기에 산책을 가거나, 여러 마리이거나, 하루에 여러 차례 방문을 원하면 가격이 추가되는 방식이었다. 호텔링처럼 펫시터의 집에서 반려동물을 돌봐주는 옵션도 있었다. 보호자는 펫시터의 소개, 리뷰, 시급을 확인하고 원하는 일정과 옵션을 제안하고, 이를 수락하면 귀여운 동물 친구를 만나러 갈 준비 완료였다.

실은 펫시터 아르바이트에 대해 듣자마자 눈이 번쩍 뜨였다. 어릴 때부터 강아지, 고양이와 함께 사는 것이 소원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 빼고 모든 가족들이 알레르기가 있어, 항상 강아지 인형을 안고 아쉬움을 달래고는 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 더 이상 인형을 가지고 놀지는 않았지만 길을 가다가 멀리서부터 산책 중인 강아지가 보이면 마음이 설레고, 마주치는 수많은 털친구들에게 속으로 사랑을 고백하는 어른이 됐다. 어쩌다 강아지가 눈이라도 마주쳐주고 손을 핥아주면 최고로 행복했다. 나는 언제나 털친구들과의 만남을 갈망하고 있었다.

또한 펫시터가 되는 데 특별한 자격 요건이 없다는 점도 선택에 한몫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산 경험이 있으면 의뢰를 받을 때 유리할 수는 있지만 그런 경험이나 전문 지식, 혹은 자격증이 없어도 플랫폼에 펫시터로 등록할 수 있었다. 게다가 내가 머물고 있던 스키담(Schiedam)이라는 동네는 산책하면서 얼핏 봐도 반려인구가 많아서 수요가 많을 거 같았다. 그래서 그날 당장 포셰이크에 펫시터 프로필을 만들고 소개글을 올렸다.

일주일 뒤 처음으로 오퍼가 들어왔다. 루마니아에서 이주해온 부부로, 2박 3일 여행을 떠나는 동안 하루에 한 번씩 방문해 강아지 두 마리를 돌봐달라는 의뢰였다. 첫 경험이라 최저가로 올렸음에도 페이는 회당 10유로로, 30분에 약 14,000원 정도니까 아주 훌륭했다. 거리도 집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였다.

나는 설레는 마음을 안고 보호자와 사전 만남을 가지러 갔다. 내가 케어하게 된 아이들은 복실복실한 미색의 강아지 두 마리로, 이름은 ‘쿠키’와 ‘머핀’이었다. 달콤하고 포근한 이름처럼 초면인 나도 좋아해줘서 수월한 사흘을 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문제는 집에 들어가기도 전에 일어났지만.

전날 건네받은 임시 열쇠로 문을 열려고 하는데 너무 뻑뻑해서 어떻게 해도 열쇠가 돌아가지 않았다. 문앞에서 10분여를 씨름하고 있으니, 낯선 소리를 들은 쿠키와 머핀이 마구 짖기 시작했다.

‘나 지금 굉장히 도둑처럼 보이지 않나?'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거의 울먹거릴 때쯤 길을 지나던 더치 아저씨가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간절하게 끄덕이자 열쇠를 건네받은 아저씨는 프로페셔널한 솜씨로 3초 만에 문을 열어주고 빙긋 웃어 보였다. 연신 “당큐웰(Dankjewel, 네덜란드어로 ‘Thank you’)!”을 외치며 겨우 집안으로 들어갔다.

이후에는 아이들에게 밥을 주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공놀이도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위기는 다시 찾아왔다. 바로 머핀에게 약을 먹여야 하는 것이었다. 캡슐약을 급여해야 하는데 밥에 섞어줘도, 입을 손으로 벌리고 넣어도 연거푸 퉤퉤 뱉어버리는 것이었다. 어떻게든 먹이겠다는 일념으로 끈질기게 넣어주려 했더니 더 큰 위기가 찾아왔다. 머핀이 화가 나버린 것이었다…. 내가 가까이 가면 으르렁거리거나 왈왈 짖었고, 머핀이 짖으니 쿠키도 따라서 짖기 시작했다. 둘이 짖자 가구도 많지 않고 복층 구조라 그런지 온 집안이 쩌렁쩌렁 울렸다.

급기야 펄쩍펄쩍 뛰면서 흥분을 감추지 못하는 머핀을 보면서 이러다 혹시 나에게 달려드는 건 아닌가 두려워졌다. ‘강아지에게 물리면 누가 책임져주지?’ ‘유학생 보험이 이런 것도 커버되던가?’ 여러 생각이 순식간에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그러다 문득 발치에 놓인 삑삑이 장난감이 눈에 들어왔다. 재빨리 아이들 뒤쪽으로 멀리 장난감을 던졌다. 다행히 머핀과 쿠키는 장난감을 쫓아가 입에 물고 삑삑거리며 돌아왔다. 몇 번을 반복하며 신나게 뛰어놀다 보니 경계심이 풀린 것이 느껴졌다. 머핀이 혀를 길게 빼고 헥헥거릴 때 재빠르게 약을 입에 넣었고 꿀꺽 삼키는 것까지 확인할 수 있었다.

다음 날도 머핀과 쿠키와 함께 행복한 시간을 보냈고 첫 펫시팅을 무사히 마쳤다. 한국인의 인증샷 실력을 뽐내며 아이들 사진을 예쁘게 찍어 잘 지내고 있다는 메시지와 함께 보내기도 했다. 다행히 보호자 부부는 “우림은 매우 훌륭한 펫시터이며, 너무나 예쁜 베이비들 사진까지 보내줬다"고 좋은 리뷰를 남겨줬다. 게다가 커뮤니티에 나를 추천했는지 이후로도 루마니아 사람들의 펫시팅 의뢰가 이어졌다. 리뷰가 쌓이면서 일이 점점 많이 들어왔으나 본업인 공부도 해야 했고 틈틈이 여행을 다니느라 계속하지는 못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은 펫시팅 아르바이트가 보내준, 그토록 가고 싶던 바르셀로나 여행이었다.

펫시팅 생활의 첫 번째 미션, 머핀에게 약 먹이기는 의외로 쉽게 끝났지만 당시에는 정말 식은땀이 흘렀다.

한국의 비정규직, 탁묘로 커피값 벌기

졸업 후 한 회사에서 인턴생활을 시작한 나는 그날도 평소처럼 유튜브로 고양이 영상을 보며 출근하고 있었다. 이는 삭막한 출퇴근길 지하철을 버티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고양이가 집사의 눈을 마주치고 울며 애교를 부리는 모습을 보던 중, 문득 현실의 고양이가 보고 싶다는 강렬한 충동이 솟구쳤다. 그러고 보니 나는 점점 더 많은 멍냥이들의 랜선집사가 되어갔지만 실제로 그들을 만날 기회는 없었다. 마침 인턴 일이 익숙해지며 퇴근 후 저녁 때나 주말에 시간이 나던 때였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시작했더니 버는 돈보다 쓸 돈이 많은 기분이라 부수입에도 다시 관심이 생기던 참이었다.

두 가지 사심을 채웠던 네덜란드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당장 앱스토어를 뒤졌더니 한국에도 포셰이크처럼 강아지와 고양이 방문 케어 서비스를 중개하는 플랫폼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걸림돌이 있었다. 네덜란드에서보다 훨씬 많은 자격 요건이 있다는 점이었다. 일단 대부분 알바 가능한 최소 연령이 정해져 있어 대학교 졸업 전후 나이대는 신청 자체가 불가했다. 게다가 일주일에 최소 몇십 시간 이상 활동이 가능해야 했고, 평일 낮에 사전 교육 이수도 필요했다. 전업으로 펫시팅을 하는, 취업에 가까운 일이었다. 펫시터가 고프로로 펫시팅하는 전 과정을 중계해야 하는 곳도 있었다. 머핀에게 처음 약을 먹일 때 우왕좌왕했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보호자도 펫시터도 더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장치들이 많이 마련된 인상이었다. 다만 일을 구하는 입장에서는 진입 장벽이 너무 높아 난감했다.

검색 끝에 최소 연령 조건이 없는 업체를 어렵게 찾았다. 대신 몇십 개 영상으로 구성된 필수 교육을 수료해야만 지원할 수 있었다. 지하철 안에서 틈틈이 영상을 보면서 동물들의 건강 상태 확인법, 위급상황 발생 시 대처법 등을 공부했다. 다음 관문은 자기소개서. 네덜란드에서의 경험들과 반려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득 적어 제출을 마쳤다. 그리고 매일 가슴을 졸이며 기다리는 시간이 이어졌다.

일주일이 지나고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넘도록 연락이 오지 않았다. 떨어졌나 싶어 고객센터에 전화를 걸었다. 반려동물과 함께 살아본 경험이 없는 사람은 신청을 받지 않는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허무했다. 자격 요건에는 분명 적혀 있지 않은 말이었다.

이후에도 다른 경로를 찾아보았지만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펫시터가 집에 방문해 강아지를 돌보는 것보다는 전용 호텔에 맡기거나 지인에게 부탁하는 것이 더 일반적인 것 같았다. 그렇게 펫시팅은 좋은 추억으로 남기기로 하고 마음을 접었다.

그럼에도 털친구들을 돌보는 일은 언젠가 꼭 하고 싶었기에 임시보호처가 필요한 아이가 있는지 확인하러 온라인 커뮤니티에 들어갔다가 우연히 방문 탁묘 게시판을 발견했다. 여행이나 명절 때문에 자리를 비우는 보호자 대신 고양이가 거주하는 집에 방문해 고양이를 돌봐줄 사람을 찾는 곳이었다. 운이 좋으면 집 근처 일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카페에 들어가서 새로운 글이 올라왔는지 확인했다. 그리고 구인글이 뜨면 바로 보낼 수 있도록 집사님들에게 나를 어필할 문구를 준비했다. “네덜란드에서 방문 펫시터로 활동하며 고양이를 돌본 경험이 있습니다. 지인들의 고양이를 다수 탁묘해보았습니다. 제 아이라고 생각하고 돌보겠습니다.” 마침내 원하던 조건의 글이 올라왔고, 재빠르게 보호자의 번호로 문자를 보냈다.

집사님의 선택을 받으면 보통 탁묘하기 전날 사전 만남을 가진다. 직접 고양이를 만나보고 케어해야 할 사항을 현장에서 확인하기 위해서다. 또한 일종의 계약을 체결하는 자리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는 서로 주민번호 뒷자리를 가린 신분증 사진을 교환하고 마무리된다. 간혹 보호자에 따라 계약서를 작성하는데 어떤 철저한 분의 계약서에는 업무의 범위와 임금, 임금 지급 시기, 문제 발생 시 책임 소재까지 구체적으로 명시되어 있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 홈 CCTV가 있는 집이 많았는데 해당 사항에 대한 동의 여부가 포함된 경우도 있었다. 계약서 작성은 펫시터 경험을 통틀어 가장 엄중한 순간이었지만 흔한 일은 아니었다. 사전 만남 자리는 대부분 화기애애했고, 그러고 나면 아이와 함께할 며칠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어 올랐다.

몇 번 탁묘를 하자 보호자들의 좋은 후기가 또 쌓이기 시작했다. “원래 낯을 많이 가리는 아이인데 무릎에 올라가 있는 사진을 보내주셔서 깜짝 놀랐어요.” “너무 잘 챙겨주셔서 안심하고 다녀올 수 있었어요, 다음에 또 부탁드리고 싶어요.” 이런 후기들을 캡처해놓고 새로운 펫시터 모집글이 올라오면 바로 문자로 전송할 수 있도록 저장해 두었다. 그 사이 더 많은 동물 친구들을 만나면서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싶어 시작한 동물보호소 봉사활동도 자기소개에 추가했다. 이런 점이 신뢰를 얻었는지 이후에는 지역만 멀지 않으면 댓글을 늦게 달더라도 우선적으로 뽑혔다. 퇴근하고 난 저녁시간과 주말에 서울 방방곡곡으로 탁묘를 하러 다니는 생활이 이어졌다.

한 번 탁묘할 때 이동 시간 빼고 집에 머무는 시간은 30분에서 1시간 정도였다. 하는 일은 네덜란드에서의 기본 서비스처럼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화장실을 청소하고, 잠깐 놀아주는 것. 그러고 나서 버는 돈은 약 만 원 정도였다. 최저 시급을 간신히 넘는 정도였지만, 교통비를 빼면 최저 시급도 안 될지도 몰랐지만 돈이 적어서 아쉽다고 생각한 적은 없었다. 왜냐하면 충분히 사심을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탁묘를 맡기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사람을 좋아하는 고양이였다. 잠깐 가서 밥만 주고 놀아줄 뿐인데 마치 가족처럼 반겨주는 아이들을 보면 잠시나마 보호자의 기분을 느끼며 대리만족할 수 있었다. 그래서 종종 부탁받은 시간보다 조금 더 오래 머물다가 돌아오고는 했다. 아늑한 쇼파에 누워 있는 폭신 따끈한 냥이를 직접 바라보고 있노라면 랜선 집사의 마음은 한없이 녹아내릴 따름이었다. 아르바이트라기보다 사실상 최애 취미활동에 가까웠다.

물론 탁묘 아르바이트도 늘 평화롭기만 한 것은 아니었다. 한번은 설 연휴 기간에 ‘생강’이라는 고양이를 4일간 돌보게 되었다. 걸어갈 수 있는 거리는 처음이었고 아이가 너무 순해서 아주 즐거운 마음으로 다녔다. 홈 CCTV가 있는 집임에도 불구하고 “웅냥!”, “생강이가 세상 제일 귀여운 냥이지요! 궁팡냥이!” 해가면서 생강이와 끊임없이 대화했다. 생강이는 대답냥이라서 “앙냥!”하며 나에게 대답도 잘해주었다.

그렇게 셋째 날도 설거지를 하면서 생강이와 얘기를 하고 있었다. “언니 설거지만 하고 놀자요~ 아이 예쁘지요~” 하는데 누군가 벨을 눌렀다. 하던 일을 멈추고 현관문 앞 CCTV 화면을 보자 모자를 푹 눌러 쓰고 패딩을 겹겹이 껴입은 아저씨가 서 있었다. 아까 1층 현관에 들어올 때 경비실 근처를 서성이던 아저씨 같았다. 화면을 찍어서 보호자에게 지인분이냐고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고 소리를 죽여 아무도 없는 척을 했다. 모르는 사람이라는 답이 왔다. ‘아차, 환기시킨다고 복도쪽 창문 열어놨는데!’ 순간 소름이 끼치며 심장이 미친듯이 뛰었다. 벌벌 떨며 창문으로 걸어가 커튼을 살짝 젖혔다. 다행히 아무도 없었다.

잠시 후에 아파트 스피커로 방송이 나왔다. 베란다에서 물을 쓰지 말라는 민원이 들어왔다고 한다. 아마도 그것 때문에 아까 경비실에 방문했다가, 경비원 아저씨가 안 계시니까 해당 세대를 직접 찾아다닌 것 같았다. 겨우 안심하기는 했지만, 아직도 그 공포의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이 경험으로 보호자의 집에 방문해서 반려동물을 케어하는 아르바이트의 특성상 예상치 못한 상황을 감수해야 한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런 탁묘 방식은 주로 개인끼리 거래하다 보니 사건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하자는 논의가 없는 채로 펫시팅에 임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문득 무슨 일이 생기면 어떡하나 걱정이 됐다. 지금까지는 보호자가 계약서를 준비해주면 살펴보고 날인했지만, 이제 ‘내가 먼저 나를 보호할 수 있는 조항을 챙겨 계약서를 작성하자고 해야 하는 것일까' 싶었다. 하지만 표준화된 계약서가 없는 데다 계약이 필수는 아니다 보니 보호자에게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았고, 계속해서 위험을 감수한 채 탁묘 일을 해나가게 되었다.

사랑스러운 냥이들 덕분에 이 일은 아르바이트라기보다 사실상 최애 취미활동에 가까웠다.

강렬했던 여름날의 산책 아르바이트

지난여름, 탁묘보다 조금 더 정기적으로 할 수 있는 아르바이트를 생각하다가 강아지 산책 아르바이트를 떠올렸다. 강아지들은 주기적으로 산책을 해줘야 하니까, 고정적으로 방문하는 곳과 수입이 생길 터였다. ‘당근 알바’에서 구인 글을 봤던 게 생각나 찾아보니 집 근처에 강아지 산책 아르바이트 구인글이 딱 하나 있었다. 같이 산책을 할 강아지는 ‘록키’라는 이름의 셰퍼드로 25킬로그램 정도 되는 아이였다. 줄을 당기면 조금 힘들 것 같기는 했지만, 동물 보호소에서 15~20킬로그램쯤 나가는 아이들도 종종 산책을 시키다 보니 크게 무리가 있어 보이지는 않았다. 시급은 탁묘 아르바이트처럼 시간당 1만 원으로 통일되어 있는 것 같았다. 간략한 자기소개를 문자로 보냈고, 돌아오는 일요일에 테스트 삼아 산책을 같이 해보자는 록키 보호자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일요일 저녁, 약속한 장소에 도착해 보니 일반 가정집이 아닌 상가 건물이라 살짝 당황했다. 록키 보호자에게 전화를 걸자 일단 건물 위로 올라오라고 말했다. 조심스레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니, 그 건물의 옥탑방이 나왔고 록키 보호자로 보이는 아저씨가 녹슨 초록색 철문을 열었다. 문 안쪽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는 “안녕하세요, 이거 끼시죠” 하면서 나에게 장갑 한 쌍을 건네주었다. 얼떨떨하게 받아 들고 안쪽으로 들어가니 정자가 있었고, 그 밑에 강아지가 묶여 있었다. 철제 목줄을 차고 있는 강아지는 흥분해서 내 쪽으로 달려들다가 목이 줄에 걸리자 같은 자리를 빙빙 돌기 시작했다. 동물원에 있는 동물이 하는 것과 같은 정형행동인 듯했다. 보호자는 “록키! 앉아! 록키! 싯(sit)!” 하면서 록키를 컨트롤하려고 했다. 들은 체도 안 하던 록키는 보호자가 허리춤의 힙색에서 사료 몇 알을 꺼내자 재빠르게 앉았다. 보호자는 록키에게 철제 초크체인 목줄을 채웠다. 초크체인은 아이가 힘을 주어 당기면 목이 조여드는 목줄로, 아마 록키 무게가 많이 나가고 힘이 세서 제어하려고 사용하는 것 같았다. ‘초크체인, 저거 강형욱 선생님이 쓰지 말라고 했던 것 같은데.’ 록키 보호자가 목줄을 쥐고 우리는 함께 밖으로 나왔다.

“가시죠. 이 뒤에 산으로 갈 거예요." 예상대로 록키는 무지막지하게 줄을 당기며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보기 드문 큰 강아지라 많은 사람들이 록키를 쳐다보았다. 기분 탓인지 몰라도 어르신들의 시선에서는 약간의 적대감도 느껴졌다. 이때까지도 록키와 인사를 할 기회를 얻지 못한 나는 뻘쭘하게 웃으며 그들 뒤를 쫓아갔다. 아파트 단지 뒤쪽의 쪽문으로 들어가자 슬슬 경사진 길이 나오기 시작했다. 인적도 점차 드물어졌다. 그러다 평평한 길이 나오자, 록키 보호자는 또 한 번 “록키, 싯!” 해서 록키를 앉히더니 록키의 목줄을 완전히 풀어버렸다. 록키는 그대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어안이 벙벙해진 나는 “오프리쉬 하시면 안 되지 않나요…?” 하고 물었다. 사유지나 지정 구역이 아닌 곳에서 강아지에게 목줄을 착용시키지 않는 오프리쉬 행위는 명백한 불법이었다. “내가 부르면 바로 오니까 괜찮아요. 다른 개도 없고.”

한 1분이나 지났을까. 앞에 백구 한 마리와 보호자가 나타났다. 백구는 록키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꼬리를 번쩍 들고 몸이 뻣뻣이 굳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 백구의 보호자가 잠시 멈춰 있다가 한 발짝을 떼자마자 백구는 록키 쪽으로 달려들었으나 목줄에 걸려 제지당했다. 백구 보호자는 록키 보호자, 록키, 그리고 나를 번갈아서 흘겨보았다. 그러더니 뒤로 돌아 분이 안 풀린 듯한 백구의 줄을 잡아끌며 떠났다. 백구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록키 보호자가 말했다. “저번에 쟤가 록키를 물었어요. 사이 안 좋은 애예요.” ‘네? 그런데도 목줄을 안 맨다고요?’ 의문이 가득했지만 일단 우리는 계속 산길을 걸었다.

드라이브 도로와 산속 산책로를 지나자 배드민턴 코트가 나타났다. 록키 보호자는 다시 한 번 록키의 목줄을 풀더니 원반을 꺼냈다. “록키, 업!” 보호자가 원반을 공중에 띄우자 록키가 점프해서 원반을 잡았다. “록키, 레프트!” 옆으로 던진 원반도 록키는 멋지게 잡아냈다. “굿보이, 굿보이. 록키 굿보이. 록키가 에너지가 많아서 이렇게 하면서 힘을 좀 빼 주는 거예요. 자, 따라 해보세요.” 침범벅인 원반을 받아 들었다. ‘아, 이래서 장갑이 있었던 건가?’ 처음 던져본 원반은 잘 날아가지 않았고 그저 내 앞에 곤두박질칠 뿐이었다. “아니 이걸 세로로 해서 손목을 이렇게.” 오. 원 포인트 레슨으로 다음 것은 제법 멀리 날아갔다. 록키가 물고 온 원반을 잡아 다시 던지려고 했는데, 록키가 물고 놔주지 않았다. “착하지 록키, 언니 주세요!” 하면서 원반을 잡아당겼는데, 앗, 흥분한 록키가 그만 내 손을 콱 물어버렸다. “에이, 그렇게 하시면 안 돼요, 다쳐요!” 록키에게 물린 손을 붙잡고 있는 나에게 보호자가 말했다. 그렇게 원반 던지기 놀이는 끝이 났고, 다시 걸으며 장갑을 걷어 보니 그 부위가 빨갛게 부어오르고 있었다. 아마 멍이 들려는 것 같았다.

산에서 빠져나오는 길, 록키는 열심히 냄새를 맡더니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그날의 똥스팟을 정한 것 같았다. 잠시 후 역시 예상대로 거대한 볼일을 보았다. "비닐봉지는 어디 있어요?” 물어보니 보호자는 “아, 이거는...” 하더니 발로 풀숲 틈으로 똥을 밀어 넣었다. “거름 주는 거죠.” 그가 너무 당당해서 순간 ‘그런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하지만 개똥을 고의로 치우지 않는 행위도 과태료 부과 대상이다.

돌아가는 내리막길에는 내가 록키의 목줄을 잡았다. 록키가 무지막지하게 줄을 당기는 바람에 내 몸은 계속 팔랑팔랑 휘날렸고, 그러지 않기 위해 하체에 힘을 단단히 주어야 했다. 장갑을 꼈는데도 줄을 잡은 손이 쓸리며 실시간으로 부어오르는 게 느껴졌다. 애플워치에서 진동이 부르르 와서 보니 ‘지금 운동 중이신가요?’라는 알림이 떴다. 그렇게 의문 가득한 그날의 산책은 끝이 났다. 록키 보호자는 바로 나의 계좌로 만 원을 입금해 주었다. 다음 일정은 서로 상의하여 다음 주 토요일이나 일요일 중에 하기로 했다. 땀범벅이 되어 기진맥진한 채로 집에 돌아왔다.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나니 온몸이 욱신거렸다. ‘아, 그냥 하지 말까.’ 몸살 기운이 올라오는 듯했다. 온종일 누워있는 나에게 엄마는 “어제 뭘 했길래 그래?”라고 물어보셨다. 강아지랑 산책하는 아르바이트를 했다고 말씀드리자 “고작 만 원 벌려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나도 모르게 “그러게?” 하고 대답했다. 그렇다. 이 고생을 하고 번 돈은 단돈 만 원이었다. 무난하게 아무 일도 없었다면 만족할 수 있는 돈이었다. 하지만 록키에게 물린 부위의 치료를 받아야 했다면 병원비도 안 나왔을 액수였다. 펫시팅 거래에는 별도의 위험근무수당 같은 것이 없는 데다, 아이를 케어하다가 다치더라도 어느 쪽의 과실인지 따지기가 힘들다. 만약 더 큰 사고가 생긴다면 그 뒷감당은 온전히 나의 몫임을 뼈저리게 깨닫는 순간이었다.

‘과외 아르바이트 같은 걸 했다면 이렇게 고생하고 다칠 일이 없었을 텐데. 돈도 더 많이 벌고.’ 옅은 후회가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산책을 나갈 때 격하게 꼬리를 흔들며 행복하게 미소 짓는 듯했던 록키의 표정이 다시금 떠올랐다. 나로 인해 다른 존재가 순수하게 기뻐하는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펫시팅 아르바이트만이 가진 매력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하루가 더 지나자 원반 놀이를 할 때 물렸던 곳에 붉게 멍이 들었다. 그다음 날은 더욱 검붉게 멍이 들었다. 손이다 보니 뭐를 할 때마다 계속 그 멍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 다음에는 어떻게 다칠지 몰라. 이번에는 내가 물렸지만, 다음에는 다른 사람이 물리면 어떡해. 내가 아이를 컨트롤할 자신이 없다면 포기하는 게 맞아.’ 결국 나는 록키 보호자에게 아쉽지만 다시 하기 힘들 것 같다는 메시지를 보냈다. 록키와의 만남 이후 한동안은 산책이나 탁묘 아르바이트에 도전하지 못했다.

행복해하는 록키를 보는 건 좋았지만,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결국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통의 연락을 받았다. “우림님, 잘 지내시죠?” 이전에 탁묘를 했던 먼지네 집사님이었다. “다름이 아니라 이번에 저희가 여행을 가는데 탁묘가 가능하신지 궁금해서요. 저번에 너무 잘해주셔서 또 부탁드리고 싶어요.” 연락을 받고 핸드폰 사진첩의 ‘즐겨 찾는 사진’ 갤러리를 열었다. 먼지 사진 옆으로 펫시팅했던 아이들의 사진이 여러 장 보였다. 귀엽고도 사랑스러운, 그리운 얼굴들이었다. 거기다 나를 믿고 세상에 하나뿐인 소중한 존재를 맡겨주는 보호자님의 신뢰가 너무도 감사했다.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었다. 나의 대답은 “당연하죠!”였다. 이번 주에도 나는 또 이 취미 같은 아르바이트를 하러 간다. 앞으로는 또 어떤 친구들과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갈까. 어떻게 주말의 사심을 채워갈까. 두렵기보다는 설레고 기대된다.


Edit 주소은 Graphic 조수희, 우림(4컷만화)

해당 콘텐츠는 2023.8.30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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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림

그리고 쓰는 직장인. 인스타툰 ‘밍맹묭’을 연재하며, 브런치스토리에 정신 건강에 대한 글을 올린다. 털복숭이 친구와의 만남은 아직 알바에 그쳤지만, 꼭 함께 살며 유복하게 키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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