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일엔 직장인, 주말엔 카페 사장, 때때로 슈퍼호스트
ㆍby 돌리킴
나는 10년 넘게 재무팀에서 회계를 담당하고 있는 직장인이다. 회계라는 직무는 어느 회사에나 있기 때문에 이직하기 손쉬울 것 같았고, 실제로 몇 차례 이직을 거쳐 현재는 제약회사에 재직하고 있다. 3년마다 회사를 옮기며 안식년을 갖겠다는 생각으로 발을 들였지만, 요즘은, 아니 예전부터 자주 다른 직무를 선택할 걸 그랬다는 생각을 한다. 회계는 정말 재미가 없기 때문이다. MBTI 테스트를 해보면 망상을 즐기는 ENFP로 나오는데, 내 상상력이 회계 업무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쳇바퀴 돌 듯 반복적인 일을 하는 일상에서 유일한 기쁨은 새로운 장소와 맛있는 음식을 찾아다니는 것이었다. 마음에 든 공간은 왜 좋았는지 생각해보고, 인상 깊었던 음식은 집에서 비슷하게 따라 만들어 보았다. 그러고 있자면 문득 퇴사 욕구가 올라오기도 했다. ‘내가 직접 좋은 공간을 오픈하면 얼마나 재밌을까….’ 하지만 안정적인 회사를 그만두기에는 아쉽기도 하고 용기도 안 나서 주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주 5일 일하되 주말에는 좋아하는 공간을 부업 삼아 운영해 보는 것이다.
회사에서 열심히 돈을 벌고, 그 돈을 활용해 진짜로 하고 싶은 일을 하다 보니 내게도 어느새 부캐가 생겼다. 물론 월급이 그렇게 많은 것도 아니라서, 창업은 매번 1000만 원 이내로 했다. 이 이야기는 자본금은 적지만 실행력과 의지로 n개의 부캐를 만들었던, 그러다 보니 뜻밖의 소질을 발견하며 사장으로 성장 중인 나의 현재진행형 이야기다.
뜨거운 눈빛은 넣어두고
퇴근길, 9호선 염창역에 내려 집으로 가는 길에 눈에 보이는 카페의 개수를 세어보았다. 모두 다섯 개. 테이크아웃을 전문으로 하는 저가형 프랜차이즈 카페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가게에 손님이 없었다. 그중 한 카페는 지금껏 손님이 있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는데, 가게 사장님은 늘 간절한 눈빛으로 밖을 보고 있었다. 오늘도 마치 “들어오시라"고 말을 걸 것만 같아 퍼뜩 눈을 피하고 걸음을 재촉했다. ‘그런데 잠깐… 여기에 카페를 또 차린다고?’
일주일 전, 나는 내가 원하던 카페를 만들어보겠다고 자신만만하게 가게 계약을 했다. 왜 그전에는 보이지 않았는지 의문이지만, 계약을 하고 났더니 모든 걸음걸음 카페만 보였다. 그런데 볼 때마다 손님이 없었다! 일부러 찾아다니던 인스타그램 맛집에는 늘 손님이 바글바글 했는데, 이제야 비로소 내가 외면하고 있던 현실을 마주한 것 같았다. 갑자기 망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어쩌나, 이미 2년짜리 임대차 계약서에 사인을 한 상태인데…
그래도 임대료가 싸니까 ‘최악의 경우 임대료만 날리는 거지 뭐'라고 생각했다. 이제 와 생각하면 시설 투자금 회수는 생각도 안 하고 정말 아무것도 모른 채 호기롭게 저지른 일이었다. 그 당시에는 임대료쯤 날려도 되니까 행인들을 향해 뜨거운 눈빛을 보내는 카페는 되지 말자고 다짐했다. 어차피 3층이라서 바깥을 지나다니는 사람들과 눈도 못 마주치니까 차라리 잘된 건가? 나는 비상업 지역의 골목 초입에 위치한 오래된 건물 3층에 카페를 내기로 했다. 간판도 달지 않고 1층에 작은 입간판만 세워놓을 것이었다. 일부러 찾는 사람만 올 수 있는 재미있는 카페를 만들고 싶었다.
평일에는 쉬는 카페
회사는 우리 삶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쓰게 하고 착취에 가까운 일도 빈번하게 일어나지만, 출근만 한다면 딴짓을 하는 순간에도 월급을 주며, 연차를 써도 월급은 똑같이 나온다. 하지만 자영업자가 된다면? 내가 일하지 않으면 나에게 돌아오는 수익은 없고, 보통 휴일에 손님이 더 많으니까 남들이 쉴 때 쉴 수도 없다. “회사 때려치우고 카페나 해야지”라는 생각을 실제로 행하는 사람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회사를 때려치울 용기가 없었다. 회사에서 주는 월급이 달콤했고, 내가 문 연 카페가 혹시나 망한다면 빚을 지게 되는 것이 두려웠다. 그러면서도 카페는 꼭 해보고 싶었고, 만약에 대박이 나면 그때 회사를 그만두면 되니까 일단은 두 개를 병행하기로 했다. 평일에는 직장인으로, 주말에는 카페 사장으로 살아보는 거였다. 회사에 ‘겸직 불가 규정’은 없지만 혹시나 어떤 사정으로 업무 수행 능력이 떨어지면 나의 부업이 눈총을 받기 쉬울 것 같아서, 카페 오픈 소식은 정말 친한 사람들에게만 알렸다.
주말에만 가게 문을 열 수 있으니까 월 8회 장사만으로도 고정비를 충당할 수 있도록 임대료가 저렴한 곳에 들어가야 할 터였다. 처음에는 당연히 1층으로 자리를 알아보다가 작은 공간조차도 터무니없이 비싸서 포기했다. 1층을 포기하니 선택지가 넓어졌다. 내가 선택한 곳은 15평 정도로 나의 작업 공간과 손님을 위한 테이블 여섯 개를 놔도 될 정도로 널찍했고, 화장실도 내부에 있었다. 무엇보다도 보증금 1000만 원에 임대료가 30만 원으로 정말 저렴했다. 3층이라는 점을 제외하고는 내가 원하는 조건들에 모두 들어맞았다. 오랫동안 비어 있던 공간에 카페를 차리겠다고 하니까, 계약을 하러 온 건물주(나이가 지긋한 아주머니셨다)는 “누가 여기까지 커피를 마시러 오겠냐”며, 딸 같아서 하는 말이니 “돈 날리기 전에 계약을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 말에 또 오기가 생겨서 단숨에 계약을 했다. 이곳까지 꼭 손님이 찾아오게 하고 싶었다. 왠지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1000만 원으로 카페 차리기
잃어도 되는 돈 같은 건 없지만, 인생에서 1000만 원을 날린다고 죽고 싶을 것 같지는 않았다. 없어도 견딜 수 있을 돈의 마지노선이 나에게는 1000만 원이었다. “그래 1000만 원 한도로 카페를 차려보자!” 인테리어를 제외하고 카페 창업에서 가장 큰 비용이 들어가는 것은 ‘커피머신’ 구입이다. 에스프레소 샷 여러 개를 동시에 뽑을 수 있는 보일러를 장착한 3구짜리 커피머신은 1000만 원을 훌쩍 뛰어넘는다. 우리 가게는 3층이니까 포장 손님이 거의 없을 것이고, 커피뿐 아니라 에이드 종류도 팔 거니까 에스프레소 샷 하나만 뽑을 수 있는 1구짜리 머신으로도 충분할 것 같았다. 1구짜리는 크기도 크지 않아서 혹시나 카페가 망하면 집에 놓고 커피를 내려 마실 수 있다.
커피 박람회에 가서 내가 원하던 조건들의 제품들로 내린 커피를 모두 마셔보았고, 가장 마음에 들었던 엘로치오의 ‘자르’라는 머신을 구입했다. 카페에서 일해본 경험이 없으니 동네 커피집에서 커피 추출을 배워볼까도 싶었는데, 수업료로 200만 원을 부르기에 그냥 200만 원짜리 자르를 사서 유튜브를 보며 혼자 연습하기로 했다. 매일매일 연습 끝에 커피맛집을 그토록 찾아다닌 내가 마셔도 손색 없는 황금빛 에스프레소를 추출하고 얼마나 기뻤던지!
이제 800만 원이 남았다
손님들을 3층까지 오게 하려면 최소한 사진은 찍고 싶도록 인테리어가 예뻐야 할 것 같았다. 두 차례의 집 리모델링 경험을 떠올려 보면, 사실 인테리어는 벽, 바닥, 조명만 갖춰도 제법 훌륭해 보인다. 돈을 아끼기 위해 벽과 바닥에 직접 페인트칠을 하고 커다란 카펫을 깔았다. 화장실까지 손대면 일이 커질 것 같아서 화장실은 어두운 전구를 낮게 달아 낡음이 눈에 잘 띄지 않도록 했다. 카페를 계약한 즈음에는 이래저래 쉬는 날이 많아서 공휴일과 개인 휴가, 주말을 이용해 조금씩 꾸며 나갔다. 다시 하라고 하면 못할 것 같지만, 그 당시에는 공간을 하나씩 꾸미고 가구도 저렴하게 사서 직접 조립하는 것이 진심으로 재밌었다.
대부분의 가구는 이케아에서 구입했는데, 항상 카페가 망했을 경우를 생각하면서 나중에 집에서라도 쓸 수 있는 쇼파, 책장, 식탁 등으로 공간을 채웠다. 그래서 다 꾸미고 보니 가정집의 아늑한 응접실 같은 분위기의 공간이 완성되어 있었다. 카페 로고는 디자인을 전공한 친구네 언니에게 부탁해서 만들고, 소품은 동묘와 중고나라에서 구매하기도 했다. 주방기기가 많다 보니 콘센트가 부족해서 이 부분만 전기 시공업자를 불러 처리했고, 나머지는 모두 발품을 팔아 하나씩 마련해 나갔다. 개인 카페 창업에 최소 3000만 원 정도는 든다고 얘기를 많이 하는데 직접 해보니 1000만 원으로도 괜찮은 카페를 만들 수 있었다. 만약 드립커피 전문 카페라면 커피머신을 들이지 않아도 되니까 예산을 더 절약할 수 있었을 거다. 이렇게 나의 노동력을 갈아 넣어서, 임대차 계약을 한 지 한 달 만에 카페를 오픈할 수 있었다.
눈물의 오픈 당일
오픈 전날까지도 준비는 끝나지 않았다. 급하게 메뉴판을 만들고, 오픈 당일 새벽같이 일어나서 청소를 마무리했다. 손님들에게 기념으로 드릴 쿠키까지 굽고는 가게 문을 열었는데, 문제는 시간이 한참 지나도 아무도 카페에 들어오지 않는 것이었다. 1층에 위치했다면 누군가 지나가다가 우연히 들어올 수도 있겠지만, 3층에 위치한 우리 카페는 길에서 잘 보이지도 않아서 일부러 찾는 사람만이 올 수 있었다. 좋은 공간을 차리면 사람들이 알아서 찾아올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내가 만든 이 공간이 아무도 찾지 않는 숨은 공간으로만 남아버리면 어떡하나' 싶어 갑자기 두려워졌다.
문을 연 지 두 시간 만에 손님이 나타났다. 오픈 전부터 운영하고 있던 인스타그램 계정을 보고 오신 것 같았다. 너무 놀라고 긴장해서 하마터면 “누구세요, 여길 어떻게 오셨어요?”라고 물을 뻔했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카드를 받아서 계산하고, 주문받은 음료와 디저트를 만드는데 뒤에서 찰칵찰칵 소리가 났다. 공간을 찬찬히 둘러보며 예쁜 사진을 찍고 SNS에 올려서 카페를 홍보해주신 고마운 첫 손님. 그 뒤로도 새로운 메뉴가 나올 때마다 들러주시고, 크리스마스에는 선물도 건네준 감사한 분이었다.
결과적으로 오픈 첫날에는 그 첫 손님이 마지막 손님이기도 했다. 기약 없이 누가 안 오나 기다리던 시간을 보내고 난 퇴근길, 종일 긴장하기도 했고 준비하는 동안 쌓인 피로가 몰려와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가던 길에 눈물이 터져버렸다. 앞으로도 이렇게 마냥 손님을 기다리게 될까, 30만 원이라고 우습게 봤던 월세를 커피 팔아서 충당할 수나 있을까. 곧 날아올 청구서들을 생각하다 피곤에 젖은 채 잠이 들었다.
1000만 원쯤 날려도 괜찮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한 푼도 날리고 싶지 않았다. 잘나가는 카페 사장이 되어 지겨운 회사를 그만두고 싶었다. 그렇지만 실제로 가게를 열고 알게 된 것은 딱 한 가지였다. 내가 정말 무모했다는 것….
좋아하는 일을 업으로 삼는 것에 대하여
친구들을 집으로 초대해서 정성껏 만든 음식을 예쁘게 플레이팅해 대접하는 것은 내가 가장 즐겨 하는 취미생활이었다. 좋아하는 사람들이 식사 자리를 즐기며 기뻐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고 행복했다. 산더미만큼 쌓인 설거지도 기꺼이 감수할 정도로 말이다. 그렇다면 이 즐거운 대접을 돈 받고 한다면 어떨까? 음식점까지는 힘들고 카페라면 충분히 할 수 있지 않을까? 취미가 소득으로 연결되는 아름다운 그림! 이렇게 단순한 사고를 통해 카페를 차렸음을 이제 와 고백한다. 정신 차려보니 카페는 오픈되어 있었고 어찌 됐든 나는 이 공간을 운영해야만 했다. 둘째 날에는 하루 종일 손님을 기다리다가 문 닫기 직전에야 두 명의 손님을 맞았다. 암담한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첫날보다 찾아온 사람이 두 배로 늘었다고 내심 좋아했던 것 같다.
다시 월요일부터 5일간은 열심히 회사 일을 하고 주말을 맞았다. 3일 차 오픈을 위해 계단을 올라가는데 웅성웅성 소리가 났다. ‘설마 손님인가?’ 두근두근하면서 3층에 올라갔더니 무려 여섯 명이 줄을 서 있었다. 두 명씩 총 세 팀이었는데 말로만 듣던 가오픈 카페를 찾아다니는 힙스터들 같았다. 가게 문을 열자마자 모두들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기 바빴고, 음료와 디저트를 1인당 몇 개씩 시켜서 나는 더 바빴다. 오픈을 축하하러 왔던 친구는 놀라서 서빙을 도왔고, 재료가 부족해 시장에 가서 급히 장을 봐오기도 했다. 이대로면 내일은 손님이 열두 명쯤 올 것 같았고 다음 주에는 서른 명쯤…? 내적으로 기쁨의 비명을 지르는 동안 상상 속 나는 회사에 안녕을 고하고 있었다.
그날 마감 후, 다녀간 손님들이 혹시나 후기를 포스팅했을까 싶어서 틈날 때마다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 카페 이름을 검색했다. 피곤했지만 전혀 힘들지 않았다. 막상 게시물을 발견했을 때는 혹시 나쁜 평이 있을까봐 마음을 졸였는데 다행히 칭찬이 가득했고 예쁘게 찍은 사진들도 함께였다. 다음 날 카페로 출근하면서는 또 얼마나 많은 손님이 올지 상상하며 달리듯이 걷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출근길이 이렇게 즐거울 수도 있구나.’ 설레던 그 마음이 아주 오래가진 않았지만, 희망에 부풀어 행복하던 그 순간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기대와 달리 손님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지 않았다. 늘다가도 줄고, 너무 없다가 갑자기 몰리기도 하고, 초보 사장에게 장사는 정말 알 수 없는 것이었다. 손님이 예상보다 적은 날에는 남은 과일로 잼을 만들었다. 냄비에 눌러 붙지 않도록 잼을 열심히 젓고 있으면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다. 한편, 그래서 카페를 차려 너무나 좋았냐고 묻는다면 수입이 좀 애매했다. 워낙 저렴하게 들어와 일주일에 이틀만 운영하고도 임대료와 재료비 등을 충당할 수 있었지만 또 수익이 그렇게 많이 남지는 않았다. 굳이 카페를 차리지 않고 다른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만 해도 벌 수 있었을 최저 시급을 스스로에게 줄 수 있는 정도였다.
요즘 나는 그토록 좋아하던 지인들 불러서 대접하기를 더 이상 하지 않는다. 요리에서도 손을 뗀 지 오래되었다. 신나서 하던 취미가 의무적인 일이 된 순간 흥미를 잃은 것 같다. 해보니까 생각보다 돈을 적게 벌어서 이제 그 일이 신나지 않는 걸 수도 있다. 그래도 반짝이던 순간순간만큼은 기억에 남는다. 좋아하는 커피 향을 하루 종일 맡으면서 취향에 맞는 음악을 고르고 손님이 오지 않으면 책을 읽던 그 시간들은 정말 낭만적이었다.
내가 놓치고 있던 가장 중요한 것
3층에 위치했다는 핸디캡에도 불구하고, 나의 카페는 예쁘고 맛있는 디저트 메뉴로 제법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다. 웨이팅 손님이 생기는 날도 더러 있었고, 지역 신문사에서 취재를 요청받기도 했다. 정신 없이 손님이 몰아치는 날에는 한바탕 전쟁을 치렀고, 집에 와서 누우면 다리가 덜덜 떨렸다. 너무 피곤하면 잠을 자는 것도 쉽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회사의 업무 강도가 세지는 않았지만 평일에는 회사 일을 하고 주말에도 카페에서 일을 하다 보니 휴일 없이 주 7일 근무가 이어졌고, 쉬지 못하니까 점점 체력적으로 버거움을 느꼈다.
그렇게 8개월을 운영하고 났더니 더 이상 하다가는 정말 죽을 것 같았다. 고민 끝에 카페를 부동산에 내놨다. 좋아하는 일로 돈을 버는 것과 안정적인 직장에 다니는 것 모두 중요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나의 건강이었다. 건강해야 다른 재미있는 것에 또 도전할 기회를 가질 수 있으니까. 가게를 내놓고 한 달 만에 카페의 양도가 이루어졌다. 나름대로 인기를 얻은 상태였기 때문에 시설을 통째로 양도하고 수월하게 폐업할 수 있었다. 잘 키워놓은 브랜드의 가치를 조금은 실감하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영업일을 미리 공지하면 사람들이 너무 몰릴까 봐, 당일이 되어서야 SNS에 영업 종료 안내를 했다. 갑작스러운 공지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주었다. 과분한 사랑을 받은 카페였지만 나는 손님이 몰리는 것이 무서울 정도로 많이 지쳐 있었다. 부리나케 카페를 양도하던 당시에는 후련함이 컸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단골들에게도 카페를 운영하던 나 스스로에게도 제대로 작별을 고하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쉽다. 카페 일은 나의 오랜 로망 중 하나였으나 아무리 좋아하는 일이라도 균형 잡힌 환경에서 해야만 즐거운 마음을 오래 간직할 수 있다. 쉬지 못하는 도비에게 카페 운영은 또 다른 형태의 일일 뿐이었다.
카페 운영이 남긴 것
겁 없이 뛰어든 카페 창업이었지만, 운이 따라주기도 했고 트렌드를 잘 따른 덕분에 카페를 매각할 때 ‘권리금’이라는 것을 받게 되었다. 내가 쌓은 공간에 대한 인지도와, 카페 인테리어, 기물 등에 대한 종합적인 가치였다. 권리금으로 1300만 원을 받았으니 처음 차릴 때 투자한 1000만 원 대비 무려 30%의 수익을 낸 셈이었다. 거기에 임대 보증금 1000만 원까지 돌려 받으니 갑자기 부자가 된 느낌이었다. 들어갈 때는 오래 공실이었던 곳이라 권리금을 내지 않았고, 카페에 투자한 1000만 원은 영업 매출로 돌려받았다고 생각했는데 300만 원을 더 얹어서 받으니 공돈이 생긴 기분이었다. 수중에 갑작스럽게 생긴 돈을 잘 지키는 타입이 못 되어, 나는 이것을 영원히 남기기로 마음먹었다. 카페 문을 닫자마자 내게는 시계를, 도움을 많이 준 남편에게는 바이크를 선물했다. 직장인이라는 신분에 머무르지 않고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본 스스로에게 주는 상이었다.
카페 일을 병행하는 동안 회사 일을 소홀히 한 것도 아니었다. 팀을 옮기고 출장도 가고 승진도 했다. 승진을 하게 된 데에는 카페 운영의 덕도 있다고 자부한다. 사장이 되어 본 경험은 단순히 남의 돈을 받을 때와 다른 시선으로 일을 보게 했고, 어떻게 하면 더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을지 늘 궁리하게 했다. 가장 큰 변화는 내 마음가짐이었는데, 회사라는 존재가 너무나 고마웠다. 한 시간의 점심시간이 보장되는 것이 감사하고, 원하는 날에 쉴 수 있는 유급 휴가도 기뻤다. 이런 즐거운 기분은 6개월가량 지속된 것 같다. 코로나가 터지고 재택근무에 돌입했고, 집에서 늦게까지 과중한 업무를 하고 나면 착취를 당한다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회사의 안락함을 누리는 시기가 가고, 언제든 미련 없이 회사를 떠날 수 있도록 새로운 사업을 시작해볼 시점이 오고 있었다.
팬데믹이 준 기회
2023년 초에는 슈퍼호스트(에어비앤비에서 인기 많고 리뷰가 좋은 호스트를 지칭하는 말)가 되었다. 물론 회사는 10년째 근속 중이고, 그 사이 아이도 낳았다. 이렇게 적어놓으니 갓생 사는 사람처럼 보이는데 단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빠르게 실행해보는 편이고 주변에서 좋은 자극도 잘 받아들인다는 게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이번 아이디어는 언니에게서 시작됐다. 언니는 고시원이나 셰어 하우스 같은 공유 공간에 관심이 많았는데, 코로나가 터지고 나서 파티룸을 차렸다. 파티룸은 지인들끼리 각종 축하 파티 등 프라이빗한 모임을 갖기 위한 공간으로, 사회적 거리두기 탓에 불특정 다수가 모이는 곳에 가기가 꺼려지면 자연히 안전하게 모일 수 있는 공간에 대한 수요가 올라갈 거라는 판단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그리고 언니의 계산은 맞았다. 그 대박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나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간 예약 플랫폼으로 고객을 관리하고 하루 한두 시간 청소로 공간을 관리하는 일은 카페 운영보다 훨씬 쉬울 것 같았다. 그 무렵 코로나로 직장을 잃고 우울해하던 엄마가 청소를 맡고 싶다는 이야기에 또 한번 창업에 뛰어들었다.
카페 정리 후 3년이 지났지만 나의 사업자금 한도는 여전히 1000만 원이었다. 이 돈으로 파티룸 차리기가 시작되었다. 카페 자리로 구했던 곳처럼 네모반듯한 건물은 아니라서 인테리어 난이도가 높은 데다 내 체력도 예전 같지 않기에 필요한 곳에는 인테리어 업체를 썼다. 그런 와중에도 공간의 바탕이 되어줄 컬러와 소재를 선택하고, 파티룸뿐 아니라 촬영용 스튜디오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가구를 배치하고, 포인트를 주기 위한 소품을 구비하는 등 예쁘면서도 실용적인 공간을 완성하는 데 열중했다. 두 번째 창업이고 업체의 도움을 받아서 그런지 준비를 시작한 지 2주 만에 파티룸 영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유사 불로소득의 맛
에어비앤비에서 슈퍼호스트가 되려면 예약 건수와 평점이 기준치를 넘어야 한다. 예약 건수는 경쟁 공간들 대비 가격을 낮추면 많아질 수 있겠지만, 적당한 가격에 평점 4.8(5점 만점) 이상을 세 달 동안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다. 시작한 지 1년 만에 슈퍼호스트가 된 데는 엄마의 정성스러운 청소가 8할은 차지할 것이다. 갑작스럽게 해고를 당하고 쓸모 없는 존재가 된 것 같을 때, 하루에 한두 시간씩 하는 파티룸 청소는 엄마에게도 큰 위안이었다고 한다. 자신의 집처럼 쓸고 닦은 파티룸은 바닥에서 빛이 났다. 청소 업체를 썼다면 마음고생이 있었겠지만 믿고 맡길 수 있는 엄마가 그 영역을 맡아줘서 너무나 순조로웠고, 비교적 쉬운 돈벌이도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카페는 파트타이머를 쓰지 않는 한 내가 하루 종일 그 자리에서 일을 해야 돈을 벌 수 있지만, 공간 대여업은 공간만 잘 만들어 놓으면 내가 그곳에 있지 않아도 돈이 들어온다. 미국 배당주에 투자했을 때도 비슷한 기분을 느꼈는데, 투자한 돈이 내가 자고 있는 순간에도 열심히 굴려져 분기마다 배당을 주는 것처럼, 내가 만든 공간이 나와 엄마를 위해 열심히 돈을 벌어다 주는 느낌이었다. 파티룸을 시작할 때 엄마와 나는 각각 1000만 원씩 임대보증금과 시설 비용에 투자했고 수익을 절반씩 나누기로 했는데, 모임이 많은 연말이 가까워오자 반씩 나눠도 내게는 아주 짭짤한 부수입이 발생했다. 게다가 파티룸에 직접 가는 일도 드물다 보니 에어비앤비를 통해 정산되는 금액을 보며 불로소득이 이와 비슷한 느낌이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배당주도 공간 창업도 좋은 투자를 해야 소득이 따라오는 것이지만 말이다. 월급날이 다가오면 늘 통장 잔고가 텅 비어 있었는데 이제는 돈이 조금씩은 남아 있었다. 신기하고 기분이 좋아서 온라인뱅킹으로 매일 계좌 잔액을 들여다보는 날들이었다.
나의 그릇은 1300만 원
파티룸 운영 중에 아이가 태어났다. 다시 버거움을 느낀 나는 회사와 아이 양육에만 집중하기로 하고 파티룸 양도 글을 피터팬 카페에 올렸다. 밤새 우는 아기를 달래다 해가 뜨면 녹초인 몸을 이끌고 파티룸 매물을 보여주러 가기를 몇 차례 반복한 뒤에야 적당한 매수인이 나타났다. 경험상 매물을 보러오는 사람 중에 마음에 든다며 여기저기 사진을 찍는 사람보다는 건조한 표정으로 조용히 보고 가는 사람이 계약할 확률이 높았다. 아마 마음에 드는 티를 내면 가격 협상에 불리해질까봐 표정을 숨기는 것 같았다.
매수인이 깎아 달라고 할 것을 대비해 1500만 원의 권리금을 불렀고, 최종적으로 1300만 원에 모든 시설을 양도했다. 투자금의 30%에 달하는 돈을 벌었다는 사실은 기뻤지만, 한편으로 ‘왜 나는 늘 300만 원밖에 못 남기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부자의 그릇⟫이라는 책을 보면 사람마다 다룰 수 있는 돈의 크기가 다르다고 하는데, 리스크 지는 것을 끔찍이도 싫어하는 나는 다룰 수 있는 돈의 크기가 아쉽지만 그 정도인 것 같다. 다음 사업 아이템을 찾으면 좀 더 큰 금액을 과감히 투자할 수 있을까? 왠지 투자금을 높이면 마음이 조급해져서 잘 안 될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두 번의 창업 경험이지만 이쯤은 잃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자세가 스스로를 여유 있게 만들고, 그 여유가 손님들을 끌어 당긴 게 아닐까. 다음 번 창업 때는 본업에서 돈을 더 잘 벌어서 ‘3000만 원 정도는 잃어도 좋아’라고 생각할 수 있다면 좋겠다. 아참, 이번 권리금은 새 차를 사는 데 보태어 썼다.
뜻밖의 재능 발견
SNS에서 핫한 카페의 사장이 되어 보거나, 파티룸을 운영하는 슈퍼호스트가 되는 것은 줄곧 직장인으로 살던 내게는 전부 새로운 도전이었다. 익숙하지 않은 상황 속에서 분투하다 내가 덤으로 얻게 된 것은 나 자신을 좀 더 잘 알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낯설어서 피하고 싶은 일도 해보면 별거 아니라는 거였다. 예를 들면 두 번의 창업은 전혀 다른 업종이었지만, 인테리어를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나는 실내 인테리어 작업을 좋아하고 꽤 잘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카페와 파티룸이 지향하는 느낌을 표현해 낸 이미지를 핀터레스트에서 찾고, 머릿속으로 상상의 공간을 만들어 내는 작업은 너무나 재미있어서 밤새워 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 느낌을 뒷받침해줄 소품과 가구를 고르다 보면 어느새 새벽이었는데 힘들다는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물론 카페 경험을 통해 좋아하는 일도 힘들게 하면 재미가 반감된다는 걸 알게 되었으니까, 인테리어 업체를 직접 차리기보다는 창업 컨설턴트가 되어 인테리어 방향까지 조언한다면 꽤 괜찮은 돈벌이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 파티룸을 운영하면서 홈페이지도 처음으로 만들었는데, 네이버에서 운영하는 ‘modoo’라는 플랫폼을 통해서 10분 만에 뚝딱 완성할 수 있었다. 부동산 거래 경험도 쌓여 임대차 계약뿐 아니라 권리금에 대한 시설 양수양도 계약서도 직접 작성하여 직거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월급과 합산한 사업소득에 대한 종합소득세 신고와 분기별 부가세 신고까지도 이제는 제법 익숙하게 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한 회사의 임원이 되는 것은 어렵지만 내 사업의 사장이 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리고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처럼, 사장이 되기 전의 나와 이후의 나는 다른 생각을 하고 산다. 요즘 심각한 문제인 전세 사기 뉴스를 보다가도 ‘그러면 월세 선호 현상이 나타날 수 있으니 셰어하우스를 운영해볼까’ 하며 사업 생각을 한다. 친구를 만나러 번화가를 지나다가도 임대 딱지가 붙은 빈 상가를 보면 어떤 업종이 어울릴지 궁리해본다. 자주 가는 카페의 객단가를 계산해보고, 시간당 매출은 어느 정도 나올지 추측해본다. 일상에서 무심코 지나쳐 보내던 풍경 속에서 나의 주의를 끄는 것들이 많아졌다. 이런 호기심이 기회를 포착하고 돈을 벌 수 있는 또 다른 가능성을 열어줄 수도 있지 않을까? 같은 노력을 한다고 모두 같은 돈을 버는 것은 아니니까, 적게 노력하고 가급적이면 많이 벌 수 있는 새로운 사업 아이템을 발굴하고 싶다.
아직 30대인 주변 친구들과 대화하다 보면 가끔 기대 수명인 100살까지 사는 게 끔찍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아마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인 회사에서 은퇴하고 나면 그 이후의 긴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는 뜻도 섞여 있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 막막함에 공감하다가도 나의 경우 ‘그때도 뭐라도 하면 되지'라고 생각이 흘러가는데, 이 배경에는 소소한 창업 경험이 있는 것 같다. ‘아무도 나를 안 써주면 내가 일을 만들어서 하면 되지 뭐?’라는 가벼운 마음이 있다. 그리고 막상 저질러 보니 창업은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재미있는 경험이기도 하니까, 우리의 길어진 인생을 다양한 부캐로 채워가는 것도 신나는 일 아닐까.
Edit 주소은 Graphic 조수희, 함영범
해당 콘텐츠는 2023.09.13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회사원, 크리에이터, 집사, 엄마 그리고 브랜드 매니저. 쉽고 재밌는 돈벌이를 꿈꾸며 부업으로 카페와 파티룸을 운영한 경험이 있다. 원하는 것을 원하는 때에 할 수 있는 재력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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