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이팝 성공의 주역
ㆍby 유진
덕질이 그 시절의 나를 살게 했지만
케이팝 아이돌 팬덤 시장 규모가 8조 원에 달한다고 한다. 이 정도 규모면 매체에서 누가 어떻게 쓰는지 자세히 조사할 법도 한데, 그저 ‘코어 팬덤이 앨범을 많이 산다.’는 한 문장으로 압축해서 설명한다. 아무래도 소비자가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겠지? 이 글은 시중에 유통되고 있는 ‘덕질이 우리를 구해줄 거예요.’ 부류의 글과는 정반대의 글이다. 물론 덕질이 그 시절의 나를 살게 했지만, 너무 몰입한 나머지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나는 중학생 때부터 케이팝을 사랑해 왔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다양한 팬덤과 함께했고, 이제는 ‘거의 다 해봤구나’라는 홀가분한 감정도 느낀다. 어떤 아이돌을 탈덕한 게 아니라, 케이팝 자체를 완덕*한 기분이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다들 눈을 빛낸다. “와 어떻게 그렇게까지 할 수 있어? 덕후는 정말 대단한 것 같아. 나도 무언가 하나를 그렇게까지 파 보고 싶어” 등등 대개 긍정적인 반응이다.
*완덕과 탈덕은 다르다. 탈덕은 그룹에 문제가 생겨서 타의로 덕질을 그만두게 되거나, 현실 생활이 바쁘거나 마음이 식어서 자의로 그만두게 될 때 쓴다. 반면 완덕은 보고싶은 것을 전부 봤고, 미련이 없고, 만족스러운 상태로 그만두는 상태를 이야기한다. 샤이니 태민 팬이 처음 사용한 단어다.
BTS의 성공과 함께 ‘아이돌 덕후’가 양지로 올라오게 되었는데, 그 이야기가 어쩐지 납작하다고 느껴진다. 물론 건강한 취미로써 가볍게 덕질하는 팬들도 많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어딘가에서 누군가는 희생적인 덕질을 하고 있다. 나 또한 그랬었기 때문에 속이 쓰리다. 그렇다고 그 시간을 자체를 전부 후회하지는 않는다. 좋은 친구들을 만났고, 잊지 못할 재밌는 경험도 많이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은 후회된다. 아, 그렇게까지 쓰지는 말걸…
학생 땐 돈을 별로 안 썼지
첫 덕질 대상은 동방신기다. 중학생 때 처음으로 ‘The way you are’ 싱글 앨범을 사고, 그 이후에도 발매되는 앨범을 1장씩 샀다.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는 인터넷 강의를 듣기 위해 PMP를 샀다. 그러나 PMP로 덕질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닫고, 동방신기의 일본 활동 영상들을 다운로드 해서 수백 번씩 돌려봤다. 그저 화면 속 대상을 좋아하고, 응원했다. 대학생 때는 동방신기가 소송으로 인해 2인조와 3인조로 나뉘어서 탈덕했다. 덕분에 대학 생활을 즐기고, 연합 대외 활동도 하고, 연애도 했다. 그렇게 나는 더 이상 덕후가 아닌 줄 알았다.
사랑한다고 말할 수 없다면, 선물로 마음을 표현하겠어
어느 날 친한 언니가 YG에서 진행하는 서바이벌 프로그램 ⟨WIN⟩*이 재밌다고 같이 보자고 했다. 그걸 보면 안 됐었다. 나는 ⟨WIN⟩에 속절없이 빠졌고, 그중 TEAM B팀을 응원하게 됐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TEAM B는 서바이벌에서 졌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내가 응원하는 팀이 졌구나, 마음이 아프다’ 하고 끝내지만, 덕후는 그렇지 않다. 갈 곳 없는 마음을 해소하기 위해 망령처럼 인터넷을 떠돌아다니기 시작했다.
*YG엔터테인먼트에서 새로운 아이돌 그룹을 만들기 위해 만든 프로그램이다. '슈퍼스타K2' 출신의 강승윤, 'K팝스타 시즌1' 출신의 이승훈 등 5명이 구성된 A팀과 가수 MC몽의 '인디언 보이'에서 12세 꼬마 래퍼로 활약한 B.I와 'K팝스타' 출신의 구준회 등 6명이 속한 B팀이 있었다.
TEAM B을 검색했더니 한 팬사이트가 나왔다. 덕후는 사랑하는 대상이 있는데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하면 그 마음을 어떤 방식으로든 전달하고자 하는 특징이 있는 건지, 계좌를 하나 만들고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자신의 커피값 4,000원을 매일 입금하는 사람부터 100만 원씩 통 크게 입금하는 사람까지 다양했다. 그 돈으로 다시 연습생이 된 TEAM B를 위해 연말 선물로 레고 모형 무대와 잡지 6권을 만들고, 다양한 선물을 사는 연말 서포트를 진행했다. 그 당시 나는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돈을 많이 쓸 수 없다는 점을 보완하기 위해, 전공인 디자인을 살려서 달력과 잡지 디자인에 참여했다. 최근 증권가 보고서에서 모든 덕후를 뼈 때린 ‘무보수 크리에이터’*의 시작이었다.
*최근 유안타증권 리서치센터에서 발행한 증권가 보고서에서 케이팝 팬덤 특이점 중 하나를 무보수 크리에이터 집단으로 정의했다. 팬들은 가수에 대한 충성도에 따라 기획사나 가수에게 돈을 받지 않고 콘텐츠를 생산해낸다는 특이점이 있다.
많은 팬이 익명으로 아이돌을 위해 자신의 재능을 펼친다. 요즘엔 팬들이 진행하는 아이돌 이벤트가 대학 졸업 전시 수준이라는 말도 나온다. 때로는 ‘기획사에서 진행해야 하지 않나?’ 싶은 규모의 스케일 있는 이벤트도 팬들의 노력과 사비로 진행되곤 한다.
서바이벌의 맛을 톡톡히 본 것인지 YG에서는 TEAM B를 데리고 ⟨MIX&MATCH⟩*라는 새로운 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TEAM B 6명의 데뷔만을 바라며 서포트를 해왔던 건데, 새로운 멤버가 투입된다고 하니 거부 반응이 생겼다. 또한 멤버의 꿈을 저당 잡아 또 새로운 서바이벌을 한다는 게 괴로웠다. 나는 그길로 지쳐서 탈덕했다.
*WIN에서 데뷔하지 못한 WIN B팀 멤버와 치열한 오디션 경쟁을 뚫고 합류한 새로운 연습생 3명을 포함한 총 9명이 실력, 매력, 개성을 믹스해서, 최상의 조합으로 매치하기 위해 YG엔터테인먼트에서 만든 새로운 서바이벌 프로그램.
나의 자양강장제, 나의 오쏘몰, 나의 아이돌
TEAM B를 탈덕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갔다. 이젠 정말 아이돌을 좋아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선을 다해 불태워서 덕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하고 취업을 했다. 사회생활은 쉽지 않았다. 원래 사회 초년생은 다 힘든 건데, 그땐 그걸 모르고 괴로워했다. 그러던 어느 날, 친구에게 연락이 왔다.
“얘 너 취향인데 한번 봐볼래?”
처음에는 남자 소개해 주는 줄 알았다. 하지만 카톡 사진 속에는 내 취향인 ‘남자 아이돌 A’가 있었다. 나는 A에게 첫눈에 반했다. 입덕하고 나서 허겁지겁 A의 활동을 챙겨보기 시작했다. 퇴근 후 새벽 3시까지 밀린 예능 떡밥을 보고, 일하다가 힘들 때면 3분짜리 무대 영상을 보고 기력을 충전했다. 이전에는 연습생을 좋아해서 몰랐던, 새로운 아이돌 덕질 문화에도 적응해야 했다. 그중 가장 새로웠던 문화는 바로 팬사인회였다. 특히 A의 팬사인회 영상은 보자마자 온몸이 짜릿해졌다.
듣지도 못하는 아이돌 앨범 수백 장 구매한 썰 푼다
팬사인회는 어떻게 가는 건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팬사인회는 아이돌이 팬을 대상으로 사인해 주고 일대일 소통을 하는 이벤트다. 앨범을 구매하면 생기는 응모권이 당첨되면 갈 수 있다. 앨범 1개당 응모권 1장이기 때문에, 앨범을 많이 살수록 응모권이 많이 생긴다. 추첨 시스템이지만 사실상 앨범을 산 수량에 따라 당첨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에 줄 세우기에 더 가깝다. 어떤 아이돌은 몇백 장을 사야지 갈 수 있다.
팬사인회에 가고 싶어서 매일 트위터를 들락날락했지만, 갑자기 100만 원 가까이 써야 한다고 생각하니 숨이 턱 막혔다. 그 시절의 나는 입사한 뒤로 큰돈을 써본 적 없는 신입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앨범을 많이 사도, 추첨 특성상 안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이 무서웠다. 그렇게 고민하는 동안 시간이 흘러서 마지막 팬사인회가 끝나있었다.
‘갈걸..’
같은 컨셉의 팬사인회는 돌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고, 다음 활동 땐 어떻게든 가야겠다고 다짐했다.
대망의 첫 팬사인회 응모가 찾아왔다. 몇 장을 사야 하지? 트위터에 검색했지만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팬사인회 당첨은 ‘경쟁’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나보다 1장이라도 더 사면 내가 떨어질 확률이 생긴다. 나는 덕메*의 도움으로 과거 A의 팬사인회 컷**을 어느 정도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불안해서 응모하는 음반점에 가서 3시간 정도 서성거리며 팬들이 앨범 몇 장씩 사는지 지켜봤다. 그러고도 모자라서 몇 장 더 얹어서 무리해서 총 60장(약 80만 원)을 구매했다.
*덕메: 덕질 메이트의 줄임말. 함께 덕질하는 친구를 뜻한다.
**팬사인회 컷: 몇 장을 구매해야지 팬사인회에 입장할 수 있는지를 뜻하는 단어.
큰돈을 쓰면서도 당첨이 된다는 확신이 없다는 사실이 불안했지만, 다행히 당첨되었다. 그런데 내가 산 앨범의 수량보다 1장이라도 덜 산 사람들은 다 떨어졌다. 59장 산 사람들은 몇 명일까? 그렇게 큰돈을 쓰고도 떨어질 수밖에 없는 팬사인회 문화가 아찔하고 무서웠다. 나는 이걸 몇 번이나 더 반복해야 할까? 두려움이 몰려오기 직전, 몇 박스의 앨범이 집에 도착했다.
팬사인회는 정신없이 진행되었다. 1분의 시간은 A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전달하기에 턱없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A의 실물은 기대만큼 잘생겼었다. 이런 미남을 가까이서 본 게 처음이라서 심장이 입 밖으로 나올까 봐 무서웠다. 손을 덜덜 떨면서도 말하고 싶은 문장을 차근차근 내뱉었다. 말하는 도중 뒤에 있던 경호원이 ‘지나가실게요.’라고 말해서 당황스러웠다. 아니. 80만 원을 쓰고 와서 1분밖에 이야기 못 하는 것도 어이없는데, 중간에 말을 끊는다고? 부조리한 관계가 마음에 안 들었지만, 방도가 없었다.
그렇게 못다 한 말을 해야 한다는 핑계로 팬사인회를 꾸준히 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보니 활동마다 수백 장의 앨범을 사게 됐다. 그렇게 생긴 앨범을 차마 버릴 수는 없어서 활동이 끝나면 월차를 내고 신촌 럭키 아파트가 보이는 모교에 앨범을 나눔하러 갔다. 그곳의 메인 계단에서 A에게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 전단지처럼 앨범을 나눠주며 홍보했다. 물론 좋아하는 마음에 가고 싶어서 가는 거였지만, 응모부터, 당첨을 기다리는 시간, 팬사인회 과정, 앨범을 처리하는 것까지 전부 큰 스트레스였다.
난 내가 한 살이라도 어릴 때 미친 사람처럼 덕질하면 나중엔 미련도 버리고 편한 마음으로 덕질 할 줄 알았는데, 해마다 새롭고 더 큰 스케일로 미쳐가는 나를 발견했을 때 뭔가 잘못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2017년 5월 15일 트위터에 남긴 글
사랑과 현실 도피 그사이
어느 여름날, A가 팀에서 유닛을 만들어 이전보다 좋은 앨범을 만들어 왔다. 그 모습에 자극을 받아, 나도 디자인 실력을 더 갈고닦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직을 했다. 하지만 내 욕심과 눈높이만큼 실력이 따라오지 못했다. 나도 분명 잘하는 게 있어서 이곳에 입사했을 텐데, 그런 것들은 잊고 내가 잘 못하는 것에만 신경 쓰다 보니 오히려 더 긴장해 실수를 자주 일으키고, 작업도 슬럼프에 빠졌다. 회사 내에서는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스스로 디자인을 못 한다는 생각에 빠져, 이 직업을 그만둬야 하나 생각했다.
새벽 공개방송이 끝나고 집에 돌아가는 길에, 어쩐 일인지 허무한 마음이 들었다. 하루 종일 회사 일로 괴로워하다가, A의 무대를 보는 10분 남짓의 시간만 행복하다는 점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하루의 10시간이 불행하고, 10분만 행복했다. 꼭 그들이 있어야지만 내가 행복할 수 있다는 게, 행복의 형태가 수동적이고 의존적이라고 느껴졌다.
또한 현실이 힘들면 덕질을 잠깐 쉴 수도 있는 건데, 멈출 수 없었다. 자극적인 팬 활동에 익숙해져서 무리해서라도 A의 팬 활동에 참여했다. 가면 좋긴 했지만, 이전 같지 않았다. 문득, ‘내가 습관처럼 가고 있구나.’ 깨달았다. 스스로 이 상황을 멈출 수 없었다.
덕질은 나에게 도피처였다. 괴로우면 왜 괴로운지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스스로를 위로하고 해결 방안에 대해 생각했어야 했는데, 현실을 회피하고 덕질로 도망갔다. 그렇게 도망간 곳에서 시간과 돈을 써서 행복을 샀지만, 해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나 모아놓은 돈이 하나도 없어”
A의 비활동 기간에 별생각 없이 들여다본 통장 잔고 잔액을 보고 깜짝 놀랐다. 직장인 4년 차가 되었는데 모아놓은 돈이 하나도 없었기 때문이다. 덕질로 도대체 얼마를 쓴 거지? 큰 지출로는 팬사인회와 해외 투어가 있었다. 그 외에도 국내 콘서트 3일 하면 3일 다 가야 하지, 공식 굿즈 나오면 다 사야 하지, 갖고 싶은 굿즈가 있는데 만들어주는 사람이 없으면 내가 직접 만들어야지, 홈마도 아닌 주제에 마음에 드는 생일 카페 컨셉 없다고 생일 카페 열어야지. 써야 할 돈이 자가 번식하듯 끝도 없었다. 하지만 사태의 심각성을 느끼고, 친한 덕메를 만나서 고민을 털어놓았다.
“어떡하지. 나 모아놓은 돈이 하나도 없어.. 이거 좀 심각한데?”
그 친구는 열렬하게 사랑해도, 지갑만큼은 잘 열지 않는 덕질을 하는 친구였다. 친구는 통장을 쪼개 생활비 외에 한 달에 덕질할 만큼의 돈을 정해서 그 예산 안에서만 쓰는 방식으로 절약하고 있었다. ‘나도 그렇게 해볼게’ 하고 헤어졌지만, 덕질을 그만두지 않는 이상 절약할 자신이 없었다. 그제야 시작부터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사회생활을 시작하자마자 적금이라도 들었어야 했는데, 적금조차 가입해본 적 없는 금융 문맹에 가까웠다. 그리고 평생 이 정도의 뜨거운 온도로 이들을 사랑할 것 같아 무서웠다.
“나 계속 이렇게 미친 사람처럼 살면 어떡해? 매일 A만 생각하고, A의 행복만을 바라고.. 나를 위해 살지 않고 A를 위해 살면 어떡하지? 근데 이게 행복해.. 하지만 그러다가 내 인생 망하면 어떡해?”
하지만 이 덕질에도 끝은 있었다. 그룹에 좋지 않은 일이 생겼고, 그 일로 덕메들과 나는 다 같이 탈덕했다. 10명 정도의 덕메들과 밤새 술을 마셨다. 자주 울었고, 기력이 없었다. 방치했던 현실의 문제도 적나라하게 보이기 시작하며 견디기 힘들었다. 이제는 더 이상 내 상황을 무시할 수 없고, 직면하고 돌봐야 할 시간이라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명상과 상담 등 다양한 방법을 통해 팬 활동 중독을 끊어내려고 노력했다.
‘내’가 있는 건강한 덕질
나의 안녕을 바라다 보니 통장 잔고부터 회복시켜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우선 돈과 관련된 서적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금융에 대해 공부하고, 저축도 하고, 적금도 2~3개씩 들었다. 누군가는 상실감에 돈을 더 쓰기도 한다지만, 나는 허한 마음을 돈 모으는 걸로 달랬다. 또한 페미니스트 디자이너 커뮤니티 FDSC에 가입해서 직업적 고민을 나누고, 성장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모색하고 실천했다.
물론 덕질에서 행복한 시간 또한 또렷이 존재한다. 얼굴로 입덕했지만 A가 만들어 내는 음악 또한 좋았다. 꾸준히 앨범에 자작곡을 넣었는데, 그게 단순히 ‘내가 좋아하는 가수가 곡도 써요’가 아니라 내 사랑과 응원에 대한 회신처럼 느껴졌다. 공개방송과 팬사인회를 다니며 부지런히 썼던 편지에 대한 답장을 자작곡으로 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 느낌은 덕질하는 내내 사랑을 마음 깊은 곳부터 꽉 채워줬다. 덕질이 대가를 바라고 하는 거는 아니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응답을 누가 싫어할까.
지금은 새로운 아이돌 C를 좋아하고 있지만 이전처럼 덕질하고 있진 않다. 스스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한 달에 평균 10만 원 이상 쓰지 말 것. 이 금액이면 1년에 콘서트와 팬미팅 1회씩 다녀오는 걸로도 빠듯하다. 이렇게 생각하면 C에게 미안하기도 하다. 하지만 예전처럼 돈과 시간을 쓰면서 좋아하기에는 이젠 내가 중요해졌다. 그렇다고 C를 응원하지 않는 건 아니다. 진심으로 C가 잘 됐으면 좋겠다. 최근에 C가 ‘당신이 행복하고 스트레스받지 않을 정도로만 나에게 사랑을 줬으면 좋겠어요.’라고 이야기했다. 이 말이 어쩐지 큰 위로와 힘이 되었다.
덕질로 인한 소비 생활의 실패를 인정하고, 뼈저린 후회를 동력 삼아서 돈을 허투루 쓰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게 가계부를 쓰기 시작했고, 어피티 연금 강의도 듣고, 재테크 책을 보며 올웨더 투자 포트폴리오도 만들었다. 또한 사이드 프로젝트를 하며 부수입을 만들어 과거에 쓴 돈을 만회하려고 노력했다. 덕분에 불가능할 것만 같았던 독립을 최근에서야 하게 되었다. 물론 덕질을 하지 않았더라면 2평 정도 더 넓은 곳에서 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길었던 ‘과몰입 오타쿠’라는 챕터가 막을 내리고, 이제는 취미 생활로 아이돌을 사랑하는, 능동적이고 독립적인 행복의 방법을 배워가고 있다.
Edit 이지영 Graphic 조수희
해당 콘텐츠는 2023.8.23 기준으로 작성되었습니다.
브랜드 디자이너로 스타트업과 스튜디오를 거쳐 현재 마음과 정신 건강을 위한 스튜디오 휴휴를 운영하고 있다. 디자인 외에 기획, 글쓰기 등 다양한 업무에 재미를 느껴, 수입처를 확장해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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